그래서 지금 나보고 자네가 하는 말을 믿으라는건가? 끝이 하얗게 물들고 있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카르만이 삼샤라에게 따졌다. 주위는 온통 암흑에 둘러싸여 농염한 삼라만상의 경험자이자 땅과 하늘같은 혜안을 지닌 카르만조차 삼샤라를 볼 수가 없었지만 불꽃을 딛고 있던 카르만은 삼샤라에게 해파리처럼 잘 드러났다.

“그 불꽃으로 돌아가십시오”

카르만은 지척의 기개 어린 목소리만큼이나 젊음을 유지하던 뱃사람 시절의 무용담을 떠올렸다. 카르타고가 아직 바다를 품고 있을 무렵의 어슴프레한 새벽 선착장에서 시작한 일생일대의 여정은 카르만의 오른쪽 팔 상박과 왼손 엄지 손가락과 탁월한 항해술을, 오른쪽 눈알과 왼쪽 불알과 마다가스카르의 구타페르카를 능가하는 동물적 끈기를, 엄지발가락과 위엄있는 걸음걸이를, 그리고 젊음을 앗아갔다. 카르만은 처녀 승선을 앞두고 바실리카의 검은 마리아상을 찾아가 그가 여행하려는 푸른 등의 거대한 물고기에게 용서를 구하고 카르타고의 평화를 빌었다. 카르만의 영혼에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그러나 카르만이 너무 이른 시간에 그녀를 찾아간 탓에 바실리카의 마리아는 검은 새벽 깊숙히 잠들어 있었다. 카르만이 선착장으로 돌아와 배에 오르자 푸른 등의 거대한 물고기는 온데 간데 없고 그곳에는 이라수 화산의 용암이 들끓고 있었다. 연금술에 실패한 마법사처럼 어깨가 축 늘어진 카르만은 마떼 한 주걱 분량의 마그마가 얼굴에 튀어 오른쪽 눈알이 끈끈한 주황색 즙액으로 변해서 흐르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절규했다. 바다가 고원이 되다니! 그 시절 바다가 사라지는 일은 빈번했다. 많은 선원들이 바다를 항해하다 거대한 고원의 한 가운데에서 고립되어 해골이 될 때까지 늙어 버리고, 그 해골이 바람에 잘게 부서져 사막이 되는 일도 있었다. 카르만은 실망했으나 절망하지는 않았다. 푸른 등의 물고기가 없다면 나는 육지를 항해하겠다. 육지조차 나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나도 육지의 만물을 저주하겠다. 육지가 나를 받아 들인다면 나 카르만은 영원히 육지를 항해할 것이다. 그 때부터 카르만은 육십년동안 배를 타고 홀로 육지를 항해했다. 카르만은 십구년동안 이라수 화산 기슭의 센트랄 고원에서 배를 움직이려고 해보았지만 제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꿈 속에서 만난 바실리카의 마리아가 던지고 간 양피지 조각의 가르침으로 마침내 올바른 항법술을 터득했을 때 그가 알고 있는 바다는 모두 육지가 되었지만 육지는 바다를 품고 있었으므로 카르만을 허락했다. 카르만이 항해하는 바다는 그가 알고 있던 푸른 등의 물고기와는 전혀 달랐다. 인내를 시험하는 거친 파도의 횡포도 없었으며, 거대하고 등푸른 환영을 동반한 폭우도 없었다. 파렴치한 하늘은 육십년동안 비를 내리지 않았다. 배는 흔들림이 없는 대신 아주 천천히 나아갔고 카르타고를 떠나 삼십년이 지났을 때 겨우 지중해의 눈부신 모래더미에 다다랐다. 아마섬유로 만든 누리끼리한 돛이 배를 볼록 내밀며 팽팽하게 당겨졌을 때 카르만은 오른쪽 눈을 비벼 보았다. 가엾은 에꾸가 지중해의 모래더미 한 가운데서 신기루에 빠져들어 미쳐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퀭한 구멍 밖에 남지 않은 오른쪽 눈에 양피지를 쑤셔 넣어 잘 닦았지만 여전히 돛은 배를 내밀고 있었다. 카르만은 육지를 항해하는 동안 돛이 흩날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카리브해에서 불어오던 카르타고의 상쾌한 바람은 코흘리개 적의 망상이라 착각했고 카르만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성모 마리아님 ! 이 카르만을 … 까지 외친 카르만은 지중해 선원들의 수호성인 에라스무스를 보았다. 에라스무스는 돛대 위를 비행하다 작은 불꽃 하나를 집어 카르만에게 던졌다. 이것은 나 에라스무스의 불꽃이다. 그것이 카르만과 함께할 것이다. 신이나서 불꽃을 집어 들다가 엄지손가락이 날아간 이후로 카르만은 불꽃을 줄곧 밟고 서 있었다. 성 에라스무스의 불꽃은 성질 나쁜 가축처럼 자비 대신 굴욕을 즐겼다. 에라스무스가 사라지고 나서야 카르만은 삼십년만에 만난 인간(비록 그가 인간은 아닐지라도)에게 말한마디 못 걸어본 것이 후회스러웠다. 신성한 에라스무스의 불꽃 대신 말 잘 듣는 가축이나 쉴새없이 지껄이는 인간의 주둥이 같은 것을 던지고 갔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도 제대로 잠들지 못하게 계속 반짝거리기만 하는 에라스무스의 불꽃과 함께 삽십년을 더 지내니 카르만은 스스로가 측은해졌지만 자신이 세계의 실재를 증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깨달음과 함께 삶이란 온통 하얗게 빛나는 모래로 이루어진 무無의 집합체라는 진리를 터득했다. 지긋지긋한 불면의 원흉이기는 해도 에라스무스의 불꽃은 삼십년간의 굶주림을 잊게 해주었고 카르만은 더이상 모래를 퍼먹지 않아도 되었다. 불꽃을 떠넘기고 달아난 에라스무스는 그 이후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기 때문에 불꽃의 이름은 ‘카르만의 불꽃’으로 명명되었다. 카르타고의 젊은 카톨릭교도는 모래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푸석푸석한 늙은이가 되어 바실리카의 검은 마리아가 선물한 항법술이 적힌 양피지 조각을 배가 지나온 어느 모래의 둔덕에 파묻었다. 그리고 카르만은 그녀를 더이상 찾지 않게 되었다. 그가 아는 한 이 광활한 바다 위의 육지에서 살아 숨쉬는, 행위 그 자체의 인간이란 뱃사람 카르만 단 한명 뿐이었다.

“나는 삼샤라입니다”

카르만은 배 위에 있는동안 육지를 항해하거나 헤엄치는 인간을 만난적이 없었다. 모래에는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안도 없었고 선박장도 없었으며 시장도 없었고 군인들도 없었다. 카르만과 그의 불꽃 이외에는 생명이 없었다. 카르만의 불꽃 대신 카르만조차 활기를 잃어가고 있으니 세계의 끝이 멀지 않은듯 보였다. 그때 삼샤라가 나타났다. 삼샤라는 모래바다에 머리를 쑤셔넣고 죽어 있었다. 하늘에서 머리부터 떨어져 육지 위에 쳐박힌 것 같았다. 꼿꼿하게 솟은 그의 몸은 사막의 선인장처럼 고독한 열기를 내뿜었다. 카르만의 위대한 항해를 목격한 두번째 인간이 기묘한 방법으로 자살한 혹은 신으로부터 살해당한 괴짜라는 사실에 실망했지만 자신의 유일무이함을 증거하는 또다른 환영을 보면서 카르만은 희열을 느꼈다. 카르만이 시체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배를 가까이 댔을 때 거꾸로 박혀 있던 시체는 허리를 숙여 이내 바닥에서 머리를 뽑았다. 마녀처럼 길게 기른 검은 머리카락을 치렁대며 시체가 카르만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는 방금 환생하였습니다. 나는 삼샤라입니다. 카르만은 시체가 제 정신이 아닌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그에게서는 어린시절 어머니가 자주 데려가던 마르가오 숲의 대기에 짙게 배어있던 베고니아 꽃향기가 났다. 카르만은 실로 오랜만에 달콤한 추억을 떠올렸다. 마르가오 숲에는 아나나스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양치류의 작은 교목들, 우거진 덩굴풀과 바나나와 망고나무, 야생의 베고니아 꽃밭과 에스파냐의 탐험가들이 동양에서 가져온 느릅나무 모양의 두리안 나무가 있었다. 그것들이 만발할 때면 본연의 향기들은 서로 질투하지 않고 한데 어우러져 카리브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타고 사뿐사뿐 날아올라 카르타고를 흔들었고 고향사람들은 향기에 취해 모두 일손을 놓았다. 시체가 망자의 몸뚱이를 뜻하는 말이라면 삼샤라는 시체가 아니었다. 베고니아 꽃향기를 풍기는 시체란 없는 법이다. 하지만 고색이 창연한 삼샤라의 향기는 이제까지 카르만이 알고 있던 인간의 냄새도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곳곳 닿지 않은 곳이 없었던 뱃사람 카르만이 가보지 못한 심연의 차원의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보고 자네가 하는 말을 믿으라는건가?

“카르만이 믿건 안믿건 자연이란 그런겁니다. 카르만은 분명 이 세계의 유일한 현신이자 왕이었습니다. 카르만이 육지를 항해하는 동안 당신이 그 어떤 존재와도 마주칠 수 없었던 것은 당신도 깨달았듯이 카르만 이외의 모든 존재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불멸의 영웅들과 하늘의 신조차 전부 사라졌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할 카르타고 길섶의 들꽃조차 남아나지 못했습니다. 모두 죽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단지 사라졌을 뿐입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카르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밟고 있는 카르만의 불꽃 속에 들어있습니다. 심지어는 그 불꽃을 건네준 에라스무스조차 당신의 발 밑에 들어 있습니다. 카르만의 유일무이함은 사실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암흑은 내 말의 증거입니다. 이제 곧 당신은 카르만의 불꽃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되겠지요. 스바스띠까. 나의 카르만”

삼샤라가 말을 마치자 카르만은 성 에라스무스의 것이었다가 카르만의 것이 되어버린 발 밑의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그 안에는 카르만이 보아왔던 광대무변한 모래더미의 환영 대신에 바다를 품고 있는 고향 카르타고의 정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거칠게 눈을 비벼 보았더니 퀭했던 눈두덩을 채우고 있는 오른쪽 눈알이 쓰렸다. 사타구니에는 쭈글쭈글한 외짝 방울 대신 튼실하고 굵게 발기한 성기가 있었고, 몹시 피곤하긴 했지만 구타페르카의 질긴 근성이 되살아나 카르만을 바다로 이끌었다. 거대한 물고기가 푸른 등을 드러내며 요동쳤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카르만은 모래더미에 거꾸로 쳐박혀 있던 삼샤라가 베고니아 향기를 풍기며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 것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에꾸눈에 짝불알의 늙은 카르만, 건조한 모래바다가 감정을 앗아가버린 유일무이한 카르만, 세계의 현신이자 왕, 에라스무스의 불꽃, 하지만 모두가 생생한 기억이었다. 마구잡이의 총천연색이거나 단색의 꿈이 아닌 그것은 현실이었다. 손잡이에 바실리카의 검은 마리아상이 조각된 단검으로 뒤죽박죽 엉켜있는 생각의 실타래를 다 잘라버린 젊은 카르만이 바다로 몸을 던지기 직전에 하얀 포대자루 같은 것을 뒤집어 쓴 사람이 나타나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카르만은 그를 기억할 수 있었다. 그는 성인 에라스무스였다. 사람들은 이제 나를 엘모라고 부르지. 이보게 카르만, 삼샤라는 항해를 계속할 것이네. 걱정할 것 없네. 그리고 우리는 곧 그를 만날 수 있게 될 거야. 나와 함께 마르가오 숲에서 점심식사를 같이 들지 그래. 오늘은 화창한 일요일이라네. 자네도 이제 그만 쉬어야지 않겠나. 지저분한 포대자루를 뒤집어쓴 이 남자는 좀 수척하고 전혀 성스럽지 않게 보였지만 에라스무스가 틀림없었다. 이것이 꿈이든 현실이든 삼샤라가 한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나는 방금 환생하였습니다. 나는 삼샤라입니다. 나는 카르만의 환생입니다. 당신은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유일무이한 카르만의 항해는 계속될 것입니다. 카르만은 연금술에 실패한 마법사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하지만 에라스무스의 말을 듣자 엄청난 허기가 몰려왔고, 지칠대로 지친 팔과 다리는 바다를 헤엄칠 기운이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일무이한 카르만은 에라스무스와 저녁해가 질 때까지 식사를 함께 했고, 하얀 포대자루를 뒤집어 쓴 벗에게 미온의 정을 느꼈다. 그리고나서 베고니아 꽃을 한아름 꺾어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