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있다”

12월 31일부터 나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한해를 갈무리하는 지인들의 글들로 가득했다.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종종 글이 올라오곤 한다. 좋았다, 나빴다, 기뻤다, 슬펐다, 새해에는 이런 각오로 임한다 등의 내용을 자신의 말로 풀어 길게 혹은 짧게 쓴 그들의 글. 좋아요가 많이 달리기도 하고 또 적게 달리기도 한다. 한해간 있었던 주변 사람들과의 일을 추억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한다. 솔직한 감정 표현도 댓글창에서 이루어진다.

나 또한 2014년과 2015년의 12월 31일에 글을 올렸었다. 내가 얼마나 변하고 성장했나 되돌아볼 수 있는 연말의 감성 속에서 그 기쁨과 고마움을 나누지 않고선 좀처럼 가만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명 한명에게 이래서 좋았다, 이 일은 잊을 수가 없다며 인사를 전하고 댓글로 답장을 받는 과정에서 나 자신의 시간이 아름답게 조명되는 것이 참 좋았다.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비춰진 내 모습을 통해 얻는 자아도취감은 달콤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올해는 글을 올리지 않았다. 12월 31일에도, 1월 1일에도, 1월 2일에도, 심지어 지금까지도 글을 썼다 지우고 또 입력한 후에 업로드 버튼을 누를지 말지 고민하다가 관두는 상황이 여러번이다. 내가 어여삐 여기는 내 모습들을 보고 콧방구를 뀌고 기가 차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실수가 몇 번 있었던 2016년이다. 눈치를 보고 보다가 갈무리는 마음 속으로 하는 나를 보면 조금 가엽기도 하다.

글을 올리지 않고 16년을 떠나 보낸 나의 행동에서 시작한 생각. 연말 SNS에 글을 올리지 않는 이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올린다고 하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기척 없이 새해를 맞이한다. 그들의 1년과 그들의 일상은 조금의 조명도 받지 못한 채 지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 또한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고 또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주목 받는 삶과 주목 받지 않는 삶. 그것은 역사의 구성 요소다. 몇십개의 굵다란 사건들을 후루룩 읊다 보면 꽤 긴 시간의 역사가 묘사된다. 두꺼운 역사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소한 일들까지 치면 시간의 과정은 더 복잡해진다. 그 모든 것들은 그래도 “눈에 보이는” 역사다. 어제 오늘에나 있을 법한 시시콜콜한 사람들의 생활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혀지기도 쉽다.

가수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에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또다른 후보로 거론되었던 인도의 소설가 살만 루시디는 “그야말로 음유시인의 후계자이며, 그의 노래가 구술문학의 전통 속에 있다”고 옹호했다. 그의 가사가 심오한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헤밍웨이와 동급으로 취급할 작가는 아니라는 반대 여론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수상에 대한 합당성 여부를 떠나 포크송을 부르는 가수가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 자체다. 대중이 원하는 노래가 아닌, 자신의 삶 그 자체를 노래하는 포크송을 구사했던 밥 딜런이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두 가지의 큰 의미가 있다. 한 사람의 필름 같은 시간을 계승할 문학적 가치가 있는 이야기로 인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생활의 단면들을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는 것. 우리들이 과감히 놓친 그 중요한 것을 문학이 보듬었다는 느낌이 든다.

 

올해의 마무리는 편지로 하기로 한다. 내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 중 나의 심장으로 왔던 사람들, 그들에게 오랜 시간 공들여 손으로 쓴 편지를 부치는 것으로 SNS 글을 대체하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사람들의 일상을 응원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