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와 삶은 신념

구두 자체보다는, 구두가 필요할까를 먼저 생각해본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중력이 존재하는 한, 사람의 발과 지표면 사이에는 밀당을 조율하는 완충제가 필요하다. 모든 길이 부드러운 비단길이었다면 구두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는 비단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갈밭도 있고, 모래바닥도 있고,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길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길을 걷기에 발은 너무 예민하고 가냘프다. 그렇기 때문에 구두는 필요하다. 구두만 있다면, 험난한 길도, 부드러운 꽃길도 모두 갈 수 있기에. 동일선상의 관점에서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인생에 오르막길이 있는 반면에 내리막길도 있고, 평평한 길도 있다. 그런 삶을 헤쳐 나갈 때 필요한 것은 신념이 아닌가 싶다. 신념만 있다면,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평평한 길도 모두 씩씩하게 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신념과 구두는 매우 닮아있다. 구두를 신는다는 것은, 삶에 신념을 세운다는 것과 같다. 그렇게 때문에 오늘도 나는 집밖을 나서기 전에 구두를 신는다.

본가에서 신혼집으로 이사하던 날,
신발을 한 포대 버렸다. 아니 한 포대도 더 넘는다.

우리 집 현관에 들어서면 문이 하나 있다. 신발장으로 불리는 공간이다. 흡사 창고 같은 그곳에는 기나긴 서울 살이를 끝내고 본가로 회귀할 무렵, 아빠와 내가 함께 만든 신발장이 있다. 벽면의 3면을 가득 메운 찬넬 선반을 채운 건 부모님의 신발이 아닌 내 구두들이었다. 사실 본가로 내려올 때도 나는 신발을 꽤 많이 버렸다. 홍대에서 첫눈에 반해 두근대며 구입한 초록색 빈티지 구두도,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으로 큰맘 먹고 장만했던 수제화도.

단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산 구두들이 빛을 본건 겨우 한 두 번.
대게는 본디 생의 목적이 단 하나였던 것 마냥. 신겨지지 않은 채 진열만 되어있었다. 고급 쇼케이스에 가지런히 진열된 채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우아한 자태가 아닌. 그저 신발장 한구석에 냄새나는 신발들과 한데 섞여서.

다시 신을 일 없는 게 자명하지만, 언젠가 신을지도 모른다며 기어이 가져왔던 욕망의 구두들은 세 번째 독립이자, 새 집으로 이사 가는 날 모두 버렸다.

그 많던 구두들을 버린 이유는 단 하나.
불편했다.

갓 공장에서 출하된 날 선 구두로 인해 피딱지가 앉고 짓무른 기억이 셀 수없이 많다. 몇 번 신다 보면 내 발과 같이 길들여지는 구두가 있는가 하면, 신을 때마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구두들이 있다. 겉모습만 보고 산 구두들은 모두 신발장 쳐박템이 되어버렸고, 그야말로 예쁜 쓰레기를 산 격이었다.

보기 좋은 구두와 좋은 구두는 다르다.
보기에만 우아하고 세련된 구두는 하루를 망치고 만다. 허리를 꽃꽂이 세우고 걷는 게 아니라 헐떡이는 구두를 질질 끌거나 여기저기 피딱지가 앉아 어기적 거리며 걷곤 했다. 구두가 아니라 족쇄였다.

그 날 내가 버린 건 한 포대의 불 필요한 욕망이었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 구두의 정의는 달라졌다.
구두에 네비게이션이 달린 것도 아니고 방향감각을 탑재한 것도 아니니, 떠도는 속설처럼 좋은 신발이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고 믿지는 않지만.
나를 잘 아는 구두는 나의 하루에 힘을 실어준다는 걸 안다.

쉽게 길들여지는, 내 발에 꼭 맞는 편안한 구두.
어쩌면 우리가 찾는 인생 구두는 그런것이 아닐까.

 

사랑의 부메랑 (구두이야기)

직장인인데도 구두를 꺼려 하는 것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할아버지와 외출을 하는 것이 참으로 싫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뒷짐 지신 손에는 늘 곰방대가 쥐어져 있었고, 그 때문인지 할아버지에게는 다소 역한 노인 냄새가 항상 베어 나왔습니다.

출타를 하시는 날이면 툇마루 밑 댓돌에는 할머니가 정성스레 손질해 두신 할아버지의 구두가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구두는 돌아보지도 않으셨으며 누가 보기에도 영락없이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누르스름한 삼베로 만든 중절모를 챙겨 쓰시고, 풀 때를 한 껏 머금어 꼬질꼬질해진 모시 적삼을 차려 입으셨습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 외출의 정점은 비록 주름이 지고 뒷 축이 약간 닳긴 했지만 반짝반짝 윤이 나는 갈색 구두였습니다. 약간의 역함과 꼬질꼬질함에 반짝 반짝 빛나던 구두가 어찌나 낯설었던지 지금도 그 광택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동네를 한 바퀴 도시다가 시장입구에서 구두 수선을 하시는 할아버지의 친구 점포에 들르시는 날이면 근처의 막걸리 집에 가서 찌그러진 노란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사다 날라야 했고, 뜻도 모를 두 분의 지겨운 인생역정과 시국 얘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해질 무렵, 집으로 올 때쯤에는 할아버지의 구두는 예외 없이 잔에서 넘친 막걸리 얼룩과 안주였던 김치 국물이 비포장 길의 흙먼지와 범벅이 되어 묻어있었습니다.

광택을 잃은 할아버지 구두의 모습에 질렸던 것인지, 아니면 할아버지의 구두를 준비하시던 할머니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도 구두를 갖추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군대를 가게 되었는데 특수병과에서 복무를 하는 바람에 정장을 하고 구두를 갖추어야만  하도록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구두를 닦았듯이 매일 새벽 같이 일어나 구두를 닦고 근무복을 다림질 해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수고로움을 이 때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이 지긋지긋한 반복의 시간들을 어찌 보내셨던 것인지… 구두를 닦고 신고, 또 닦고 신고 할 때마다 할머니의 안쓰러움을 자꾸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리도 소중하게 쓸고 닦아 광을 내두었던 구두를 할아버지는 어찌 그리 생각 없이 매번 오물 범벅으로 만드셨던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복학 후에도 다른 복학생들은 구두를 즐겨 신었지만 저는 여전히 구두를 멀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소 무례할 수도 있지만 어느 자리에서나 운동화가 제 발의 주인공이었지만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한 후에는 어쩔 수 없이 구두를 신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혼 후의 어느 날, 출근을 하려는데 광택이 반짝반짝 광이 나는 구두가 현관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구둣솔로 대충 털고 출근하는 모습이 아내의 눈에는 거슬렸었거나 직장생활에 더러운 구두로 나서는 걸음이 걱정스러웠나 봅니다.그 날 이후로 아침마다 제 구두는 광택을 한껏 발하고 있었고 아주 가끔 구두 속에는 특별 용돈이 숨겨져 있기도 하였습니다. 신혼의 아내가 정성스레 닦아 놓은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길이 얼마나 힘이 되었을지는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겠지요. 종종 거래처와의 전쟁에 지쳐 힘이 없을 때에도, 때로는 잘나가는 친구와 술을 마실 때에도, 아내가 손 질 해 준 구두는 제 든든한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손질해 두셨던 할아버지의 구두와 제 아내가 손질 해 준 저의 구두… 그랬습니다. 아주 늦게서야 겨우 깨달았습니다. 할머니의 수고로움과 아내의 수고로움은 바로 남편에 대한 사랑이자 가장에 대한 존경과 후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비록 세월이 흐르고 구두의 품질과 가격도 달라졌지만 구두에 담긴 두 아내의 정성은 한결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사회라는 전쟁터에 뛰어드는 직장인들의 든든한 동맹군이기도 하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는 염원을 담은 사랑의 부메랑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댓돌에 놓여있던 할아버지의 주름진 갈색 구두를 볼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만 두 분의 가르침은 구두를 신을 때마다  늘 아로새겨지고 있습니다.

칸투칸의 신발들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하셨지요. 그 중에 얼마나 많은 비중을 구두들이 차지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할아버지의 구두 이야기가 많은 분들에게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구두를 기획하고, 구두를 만들고, 또 구두를 판매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 할머니와 같은 정성을, 제 아내와 같은 사랑을 담으시길 간절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냥 구두가 아니라 좋은 염원을 듬뿍 담은 사랑의 부메랑을 만드시길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