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화술(複笑術), 복소술(複笑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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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화술(複笑術), 복소술(複笑術)

지하철을 타면 보통 스마트폰을 본다. 스마트폰을 ‘한다’고 말하지 않고 굳이 ‘본다’는 표현을 쓴 건, 그 행동에선 그저 보는 것 이상의 능동성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쨌든 스마트폰을 본다. 고통스럽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시간의 안락사랄까. 킬링 타임용으론 스마트폰이 최적의 무기다.

그래도 가끔은 보는 대신 노래를 듣기도 한다. 요즘은 안녕의 온도와 폴킴 노래를 듣는다. 노래를 듣는 동안에는 스마트폰 화면 대신 지하철 안의 풍경을 속속들이 관찰할 수 있다. 술에 취했는지, 교회를 다니시는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쯤 됐는지, 염치나 교양이 얼마나 없는지… 그렇게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꽤 많은 걸 추측하게 된다. 물론 승객들 대부분은 보통의 내가 그랬듯이, 그저 스마트폰을 본다.

하루는 지하철에 승객이 많아 다들 잠든 갈치처럼 빽빽하게 서서 간 적이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한마음으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고, 서로의 사이가 너무 가까운 탓에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서로의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간혹 뉴스를 보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유튜브로 재미있는 영상을 보거나, 이름 모를 게임을 하거나, ㅋㅋㅋ를 연발하며 카톡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나는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어서 그런 화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폰 화면들은 우습고 흥미롭고 즐거운데, 그걸 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했다. 마치 책상 아래로 몰래 만화책을 보며 수업을 경청하는 척하는 학생처럼, 다들 굉장히 진지한 철학적 사유를 하는 척하고 있었다. 그래봐야 그들이 보고 있는 건 겨우 시간을 죽이고 있을 뿐인데. 좀 웃어도 될 것 같은데. 출입문 유리에 비친 45도쯤 숙인 머리 사이로 빠끔히 드러난 내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달달하고 기분 좋은 노랠 듣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지 못할 만큼 화난 표정이었다. (사납게 생긴 이목구비 탓도 있겠지만.) 마치, 저주의 노래라도 듣고 있는 듯한 표정.

조음 기관과 표정의 변화 없이 말하는 것을 ‘복화술(複話術)’이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말을 숨기는 기술’이다. 주로 1인 2역 또는 1인 多역을 해내는 인형극에서 볼 수 있는 기술이다. 실제로는 자문자답이지만, 연극을 위해 내가 아니라 인형이 말하는 척하는 거다. 복화술을 할 땐, 배역의 구분을 위해 가성을 쓰며 목소리도 변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포함한 지하철의 많은 사람들은 복화술이 아니라 ‘복소술(複笑術)’의 달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즐거워도 웃지 않는다. 행복하거나 편안해도 미소를 보이지 않는다. 다들 스마트폰을 보며 웃기거나 즐거운 자신을 감추고, 심각한 인형의 탈을 쓰고 있다. 간혹 복소술이 미숙한 누군가가 푸흡, 하고 웃음을 터뜨리면 다들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왜 그래, 아마추어 같이’하는 표정으로.

나도 그런 눈초리로 누굴 쏘아본 적 있다. 그냥 참 즐거운가 보다, 재미있나 보다, 생각하면 될 일이었는데. 웃자고 하는 일을 하면서 웃지 못하는 것, 그거야 말로 정말 웃기지도 않은 일 아닌가. 박장대소가 공공장소 예의에 어긋난다면, 미소 정도는 괜찮다. 슬플 땐 슬퍼하고, 즐거울 땐 즐거워하는 일. 그게 어려워지면 인간다운 생활도 어려워진다.

직접 인형극을 해야 한다거나, 극비 요원이 아니라면 우리에겐 복화술보다 정확한 발음이, 복소술보다는 솔직한 표현이 더 필요하다. 혼자 온 세상 근심을 짊어지고 살 게 아니라면 잘 울고, 잘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