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선 꿈을 모르고

벌써 7월

서른의 한 해가 벌써 절반이나 지나버렸다. 매년 그랬듯이 시간은 너무 빠르고, 뭔가 허무하고, 그래서 한편으론 불안한 느낌이 드는 7월이다. 그런데 중간 점검의 의미로 지난 6개월을 찬찬히 돌이켜 보니, 의외로 뭔가 많은 일이 일어났다. 작년, 재작년의 7월과는 달리 뭔가 ‘성과’라고 불러도 될 만한 일들이 있었다.

작년 연말부터 오래 묵혀뒀던 카카오 브런치 계정을 다시 활성화화면서 ‘서른이 벌써, 어른은 아직’, ‘편식왕의 음식일기’, ‘바트의 이름시’, ‘Typer, bart’ 등 4개의 매거진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노출과 구독률을 보다 높이고 책 출판까지 연결될 수 있는 ’위클리 매거진‘ 연재 신청을 3번 시도했다. 일단 한 번 신청하면 결과 발표까지 30일~50일 정도 걸리는데다가(거의 45일쯤은 기다려야 되더라.), 중복 신청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2번의 쓴 고배를 마시고 한 출판사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낸 3번째 신청 결과를 받아보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아직 원고 검토 중이라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 만약 계약이 성사된다면 내 이름으로 된 에세이를 한 권 낼 수 있을 것 같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부산문화재단과 청년단체가 프리랜서(프로젝트에서는 ‘독립러’라는 신조어를 사용한다.) 함께 꾸린 ‘일교차 줄이기 프로젝트’ 모임에 한번 참여한 적이 있었다. 나처럼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궁금하기도 했고, 협업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하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서. 이후 2번째, 3번째 모임은 라디오 취재일정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프로젝트 측에서 다음 주에 있을 4번째 모임에서 내게 글 쓰는 프리랜서로 사는 것과 관려내 강연을 요청했다. 강연이라니. 화려한 등단이나 유명세, 글로 벌어둔 많은 돈도 없는 상태에서 과연 내가 강연 같은 걸 해도 되는 걸까. 그런 염치가 없는 건 아니지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덜컥 하겠다고 해버렸다. 엉성한 PPT를 만들고 집에서 벽에다 대고 어버버, 하면서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새삼 또 가슴을 쓸어내린다. 세상에, 내가 강연이라니.

‘보편적 출생등록’을 주제로 제작 중인 라디오 다큐 작업, 벌써 햇수로 3년째 하고 있는 8F 필진 활동과 더불어 올해는 ‘논객닷컴’이라는 온라인 미디어 매체에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이 모든 일들이 지난 6개월 사이에 일어났다. 게을렀다고 하기엔 벌여둔 일이 많았고, 그렇다고 꽤 부지런했다고 말하기엔 느슨했던 것 같은 2018년이었는데, 오늘은 스스로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강연을 준비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넘치기보단 늘 조금 모자란 자존감을 지니고 살아온 탓에 무엇보다도 주제 넘는 말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넘을 주제도 별로 없긴 하지만) 강연을 위해 지난 6개월이 아닌 지난 이십대를 찬찬히 곱씹어봤다. 내가 쓴 시와 에세이, 부끄러운 잡문들을 몇 시간 동안 읽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 이십대를 이렇게 대책 없이 보냈던 걸까. 남들 다 챙기는 흔한 스펙도 챙길 생각 않고 과거 장원급제만 바라는 조선시대 사람처럼 글을 쓰고, 공모전에 열중했다. 남들만큼 불안해하면서도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체념과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오기로 똘똘 뭉쳐서 취업 준비 대신 글을 썼다. 너무 불안해서 공인중개사 공부도 하고(얼마 안가 때려치웠다), 유니클로 URC 공채 자소서도 합격했지만(인적성에서 광탈) 결국 그 경험들도 글감이 되고 말았다.

대체 이런 내가 강연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기억의 서랍들을 통째로 꺼내 뒤집어 탈탈 털어 긍정적인 기억을 뒤졌다. 다행히도, 거기엔 감사한 주변 사람들의 반짝이는 응원과 따뜻한 인정이 있었다.

내 글을 정성들여 읽어주는 가족과 아름이는 늘 나의 첫 독자이자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독자였다. 모난 성격 탓에 선배들과 교류가 없었는데도, 동민 선배는 나의 부끄러운 이력을 ‘거기서 거기인 스펙 사이에서 돋보이는 독특한 커리어’라고 말해줬다. 스스로를 ‘작가’라고 칭하는 일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그건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국장님, 기자님, 친구들 덕분이었다.

꿈속에선 꿈을 모르고

결국 그렇게 강연의 주제가 정해졌다. ‘쓰는 삶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우리는 결국 무엇인가를 써내야 하는 존재이며 그렇게 쓰고 나면 그게 다 내 삶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담았다. 산 속에선 산맥을 짚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꿈속에선 꿈을 모른다. 택배 일을 하고, 과외를 뛰고, 그런 와중에 칼럼이나 에세이, 시를 적는 내 생활이 누군가에게는 안쓰럽고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리고 적어도 나에게는 꿈속에서 살고 있다고, 꿈을 이루며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백영옥 작가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고통을 감수해낼 것인가’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고, 소설가 김훈은 물고기가 낚시 바늘을 물지 않고 낚싯밥을 먹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해,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해내는 고단한 일상은 내가 감수해내기로 결심한 고통이고 날카롭지만 매력적인 낚시 바늘인 셈이다. 이제 누군가가 내게 꿈을 이뤘냐고 물어보면, 꿈을 이루는 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꿈속에서 꿈을 모른다고 해도, 우리가 꿈속에 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일뿐이지만, 브런치를 통해 만난 출판사와 얘기가 잘 돼서 또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교차 줄이기 프로젝트에서 하게 될 내 인생 첫 강연이 후회 없었으면, 다른 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더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건강히, 다치지 않고 부지런히 택배 일을 하고,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10살 현수의 수업을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습작 중인 동화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책으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어린 아이들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계속 꿈속에 살면서, 돈도 잘 벌고, 내가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