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합시다

존버. 어디서 처음 나온진 모르지만 뜻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Jonna 버틴다 라는 속어의 줄임말인 이 용어는 인터넷을 통해서 각종 현상들에 무궁무진하게 적용되어 표현되고 있다. 비트코인 대란이 일어났을 때는 샀으면 무조건 버텨야 된다, 버티다 보면 언젠가 가격이 올라가게 돼있다며 코인을 매수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존버를 외쳤다. 또 요즘 글로벌하게 정말 핫한 인기를 끌고 있는 100인 동시 접속 생존 게임 <PUBG : Battle Ground> 에서는 풀숲이나 인적없는 건물 구석에 엎드려서 자기장이 좁혀질 때까지 그야말로 버티고 버티는 게릴라 같은 모습들이 연출되면서 유행을 타기도 했다.

비트코인은 안 했지만 배틀 그라운드는 꽤 많이 했는데, 실력이 상대적으로 꽤나 떨어지는 나는 그 게임이 재미는 있지만 도무지 실력 면에서 상대방들을 압도해서 이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메타는 역시 그 ‘존버’였다. 때로는 풀숲에서, 때로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서, 때로는 4층 빌라의 구석진 화장실 욕조안에서 엎드려 버티면서 누가 지나가면 심장이 쿵쿵거리면서 버텼다. 자기장이 좁혀지기 시작하면 역시 대로변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사람들과 맞서 싸울 실력이 안되는 나는, 정말 무슨 군대에서 훈련하던 것 마냥 산으로 숲으로 능선으로 그늘로 뛰어갔다 수그렸다 엎드렸다 반복했다. 가끔은 이게 게임인지 군대를 다시 간건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는건 그렇게 하면서 1등은 못해봤지만 100인이 동시 접속해서 그저 혼자 살아남겠다고 싸우는 이 아비규환의 게임에서 그래도 그 ‘존버’로 탑10안에는 꽤 자주 들었다는 것이다. 이게 생각보다 ‘존버’의 효율이 좋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탑 10안에 드는 게 자주 반복되다 보니, 나름대로 재미가 쏠쏠했다. 인간이 간사한게 결과 지향적인 동물이라서 존버의 과정이 아무리 이가 갈리고 심장이 쪼들리고 이게 사람이 사는건지, 게임을 하는건지, 이게 게임 속에서도 도대체가 뭐하는건지 알수가 없으면서도 탑10안에 들고, 그러다 정말 좋은 위치에서 좋은 장비로 탑5안에까지 들게 되는 순간에는 그야말로 ‘왔다’ 하는 느낌이 오고 심장이 터질 정도의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사실 존버란 말을 쓰기 전에는 그냥 ‘꾸역꾸역’ 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많이 쓰다보니 사실 ‘꾸역꾸역’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뭔가 이미지가 상상이 된다. 부모님이 밥은 자고로 골고루 먹어야 된다면서 맛이라곤 전혀 없는 그놈의 영양식 밥상을 차려줬을 때, 나는 눈은 티비에서 나오는 만화영화에 고정한 채로 그야말로 들어가지 않는 밥을 목구멍에 꾸역꾸역 쑤셔넣고 있었다. 어찌됐든 남기지 말라는 그 말 때문에 안 남기고 밥을 먹고 있다 보면 어느새 부모님은 또 ‘왜 그렇게 밥을 보기 싫게 먹으냐’며 한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꾸역꾸역 버티고 해내는 건 살면서 제일 잘하는 거기도 했지만 제일 적성에 안맞는 거기도 했다. 사람이 잘하는것과 좋아하는게 꼭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꾸역꾸역 해낸다는 말에는 어떻게든 끝이 난다는 이야기지 그 과정이나 결과가 꼭 충실하고 좋다는 보장따위는 없는 법이다. 가령 예를 들어서 내가 다니는 서울 디지털 대학교의 이번 학기 수업들은 정말 다들 힘들었다. 수업이 밀리기 일쑤여서 밤을 새서 인터넷 강의를 들었고, 과제는 제출일이 다되어서 벼락치기로 2시간만에 3개를 정말 부끄러운 수준으로 써서 내지를 않나, 심지어 몇 개는 하기로 했던 걸 못했고, 무엇보다 기말 시험은 거의 다 찍는 수준이었다. 살면서 최초로 대학교 학부 수업에서 F를 받아봤는데 이건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수업을 열심히 못 들었고, 내라는 것도 못 냈고, 제대로 따로 공부도 안했으며, 시험도 끔찍하게 못 봤으니까. 근데 어떻게든 학점 F를 받고 학기는 끝나고 마무리가 됐다. 이것도 일종의 ‘꾸역꾸역’이다. 뭐 끝나긴 끝난 거지만 개차반으로 끝이 나건 제대로 마무리를 못하건 끝만 난 거다.

근데 존버는 뭐랄까, 조금 다른 의미다. 뭔가 좀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이고 자기주도적이며 냉정한 느낌? 게임을 할 때도 존버를 많이 했지만, 꾸역꾸역 하는 기분은 아니었다. 어쩔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제대로 살아보려고 버티는 기분. 내가 비록 옷장에 숨어있지만 빈집인 줄 알고 누가 들어온다면 옷장을 부수고 나가서 제대로 뒤통수 한번 쳐주겠다는 마음.

 

 

얼마전에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연극을 안한지 너무 오래된거 아니냐고. 사실 맞는 말이다. 난 직업이 연극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졸업하고 3년간은 연극을 1편밖에 하지 않았다. 그것도 내가 쓴 작품은 아니었다. 작품은 쓰고 공모전은 냈지만 당선까진 안됐고, 지원금 사업도 떨어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작품을 올리려면 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때는 그러기가 싫었다. 추억만들기도 아니고 한번하고 말 그런 연극 하고 싶지가 않았다. 한번을 하면 그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고, 다시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는 그런 선순환. 뭔가 순환이 되는 연극을 하고 싶었다. 그때 당시에 어거지로 꾸역꾸역 연극을 했다면, 아마 그러고 그냥 끝났을 거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연극의 장르로 말이다. 바로 참가자들의 추억만들기 연극. 관객은 그 추억의 들러리가 되는.

작품을 쓰는것도 텀이 좀 길어지고 있다. 1년에 한편은 썼지만 글쎄, 요즘 생각으로는 조금 더 횟수에도 욕심을 내 보는게 어떨까 싶기도 하고, 아직 못 읽고 책장에 쌓여만 있는 책들을 보면 언제 날잡고 이 책들을 다 읽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다보면 그냥 다 때려치고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너무 오래 존버를 했기 때문일까, 요즘엔 사실 뭔가 본업으로 돌아가서 시도를 하는 것에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그리고 본업 뿐만이 아니라 매사에서 극도의 무기력증도 찾아왔다.

아마 번 아웃인 것 같다.

다 타고 재가 된 상태, 더 타오를 장작이 없는 상태.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글을 쓸 때 보통 나는 마른 걸레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막연히 글을 써야지 하면서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아이디어와 체력과 창의력과 의욕과 아무튼 총체적인 난국이 오게 된다. 근데 그때도 강박적으로 글을 써야돼! 하면서 글을 쓰다 보면 정말 어디에 쓸려고 해도 쓸데가 없는 글 같지 않은 글들이 계속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상태를 ‘마른 걸레를 쥐어짜서 걸레가 찢어지는 상태’라고 표현했다. 마른 걸레를 쥐어 짜봤자 아무것도 나오지가 않는 것이다. 걸레로 방바닥을 닦든 훔치든, 제일 좋은건 다양한 무언가에 흠뻑 적시는 것이다. 제대로만 적신다면 걸레는 제대로 비틀지 않아도 좌악 하고 품어왔던 것들을 토해내기 때문이다.

헌데 내 상태는 그런 것과는 조금 미묘하게 거리가 먼 것 같다.

걸레는 가득가득 젖어있는데, 뭔가 그 적셔놓은 걸레를 들어올리기가 힘든 느낌. 담가놓은 걸레를 그저 방치만 해두고, 그걸 쥐어짤 힘은 없는 상태.

이렇게만 보면 마른 걸레보다는, 번 아웃에 더 가까운 듯 하다.

 

 

예전에 프로 뮤지컬 작가의 특강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분이 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작가는 항상 꼴려있어야 한다.” 는 말이었다. 왜 꼴릴 때만 글을 쓰죠? 항상 꼴려 있어야죠. 작가지망생이었던 그때는 그말이 꽤 멋있다고 느껴졌는데, 이제와 보면 그마만큼이나 무책임한 말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꼴려있음 뭐하나, 그게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꼴려있다고 해서 항상 유의미한 과정과 결과를 얻지는 못하는 법이다.

때로는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개인적이든 외부적인 사정으로든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계속 칼만 갈아야 될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칼이 짧아지다 못해서 거의 바늘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혹은 마침내 뭔가 일을 벌여도 좋을 것 같다는 타이밍이 오더라도 막상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 그저 주저앉는 경우도 있다.

사람은 그래서 자신의 열정과 기분을 꼼꼼하게 살피고, 특히 자기자신에게 선물을 주어야 할 때는 과감하게 주어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이런 번아웃이 다시 찾아올 줄은 몰랐기에 상당히 당혹스러운 편이다. 아마 나는 내 열정을 제대로 관리하거나, 내 기분을 살펴서 내게 선물을 주거나, 준비를 너무 오래 하며 발산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뭐 다시 기분이 좋아지고 열정이 찾아온다고 해도, 또 피치못할 사정으로 또 주저앉아있어야 할 가능성이 낮지는 않다. 그럴 때는, 뭐 별 수가 있나. 그냥 존버해야지. 당장 탈조선을 할 마음의 여유도 계획도 자금도 없는 상황에서는, 대로변을 달리며 총을 빵빵 쏴댈 여유가 안된다면 몸을 웅크리고 숙이고 험난한 길을 찾아다니면서 존버를 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고 힘들지라도, 언젠가는 빈 집인줄 알고 찾아온 상대방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욕조속에서 일어날 때가 올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열정도, 착실한 준비도 잊어버리면 안되겠지만 말이다. 암만 존버를 해봤자 탑5에 든다고 한들 맨몸뚱이에 후라이팬 하나로는 중무장한 적을 이길수가 없는 법이니까.

오늘도 그러니, 존버합시다. Winner Winner Chicken Di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