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할 용기

오늘 하루는 휴가(?)다

네덜란드에서 일할 때였다.

상상도 할 수 없이 바쁜 주재원 생활 중, 조금은 지쳐 하루 휴가를 냈었다. 그리고 가장 친한 네덜란드 동료에게 내일 하루 ‘휴가(Holiday)’ 니까, 나 없는 동안 issue가 생기면 연락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동료는 재밌다는 듯 크게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Charley, That’s not holiday, that’s just day off!”

듣고 보니 그랬다. 이건 단어나 문법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루를 쉰다는 것이 내겐 아주 큰 것이었는데, 그 동료에겐 모든 걸 내려놓고 2~3주는 쉬어야 ‘휴가’였던 것이다. 관점의 차이이자, 문화의 차이기도 하다. 숨 가쁘게 살아가는 한국인과 그렇지 않은 문화권에 사는 동료의 애잔한 대화이기도 하다.

과연 그렇다. 사실, 하루 쉰다고는 하지만 쉬는 게 아니다. 일은 쌓여가니까. 삽으로 큰 모래를 옮겨야 하는 걸 일이라고 표현한다면, 오늘 50번 삽질해야 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내일 150번을 하는 것이다. 왜 100번이 아닐까. 밤새 그 모래산엔 또 다른 모래가 쌓이고 쌓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쌓이는 속도와 양은, 나의 처지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변명과
시간이 주어져도 안 하는 나와의 갈등

한국으로 복귀한 지 이제 막 5개월이 되었다.

많은 것이 변했다. 주 40시간 시행이라고 회사에선 5시 30분에 퇴근하라고 난리다. 그렇다고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효율적으로 일 하는 법을 찾아야 하는 때다. 어찌 되었건 바람직한 변화라 생각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목적이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생기더라도, 어쨌든 그 방향으로 많은 것들이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일찍 퇴근한 후 남는 시간이 매우 낯설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은 좋다. 그런데, 시간이 많다고 해서 글이 써지는 건 아니다. 게다가,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니 그걸 어떻게 채울까를 고민하게 된다. 시간이 그저 흘러가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있으면 뭔가 죄를 짓는 기분이다. 예전엔 시간이 없어 못한다는 변명을 많이 했었는데, 시간이 주어져도 하지 않는 나를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기에, ‘해야 할 일’을 떠올린다.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결국, ‘하고 싶지 않은 일’로 마무리하고 시무룩해진다.

그래서 읊조려 본다. “아,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고는 그저 눕는다. 1분이나 지났을까. 손을 더듬어 휴대폰을 든다. 소비의 삼매경에 빠져든다. 누군가 생산한 콘텐츠를 소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뭘 할까를 고민한다. 글이라도 하나 쓸까? 그동안 밀렸던 일을 좀 할까?

나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가끔은 나만의 방법으로 멍 때리기를 하기로 했다.

이름을 지었는데, 그건 바로 ‘무의식 게임’이다.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는 건 어느 명상과 다름없다. 예전엔 그렇게 하고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지 했다. 하지만, ‘무의식 게임’은 반대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에 자유를 주는 것. 즉, 무의식이 머릿속에서 활개를 치게 하는 것이다. 가끔은 잊고 있던 기억이나 생각들이 떠올라 정말 재밌다. 어느 기억 하나가 떠오르면 거기에 다른 기억이나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렇게 저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무의식의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영혼의 산책이 되는 기분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그건 왜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일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원래 세상에서 가장 쉬워야 하는 일이 아닐까? 문장은 가벼워 보이는데, 실행하기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무겁다. 어쩌면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할 수 없는 존재로 설계되었는지 모른다. 아니, 숨 쉬는 생명체에게 주어진 운명일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도, 숨은 쉬어야 하는 걸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결국 돌아보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살아있는 한은 말이다. 다만, 생존에 관계된 일을 제외하고 또다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그건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한국 사람은 ‘멈추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뒤처질까 하는 공포다. 최근에 잠자는 것 빼고,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안 해본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아니, 잠은 잘 자고 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면 모든 걸 완벽하게 끝내 놔야 한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완벽하게 끝내지 못한 것들을 잠시 떠올리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루 밀린 일에 조마조마해지는 나와, 긴 휴가를 떠나며 모든 것을 잊는 네덜란드 친구. 태생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한국 사람의 근면성실과 빨리빨리는 우리의 생존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멈출 수 있는 용기는 내가 좀 더 가져야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멈출 수 있는 용기를 조금은 더 키워나갈 것이다. 바뀌어가는 세대와 시대의 정신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멈춘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멈추는 것에 대한 잔소리는 내 마음속에서 나온다. 시대가 바뀌어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힘든 이유다.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