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1년전에 탱고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대회에 나갈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저 몇 년 먼저 시작한 선배들을 보며, 아- 저정도만 춰도 소원이 없겠다, 라고 생각을 했을 뿐. 그러나 중국 고사에 ‘느리게 가는 것을 두려워 말라, 멈춰 서는 것을 두려워 하라’ 고 했던가. 그저 하루하루 꾸준히 관두지만 않고 하다보니 어느새 이런 날이 오더라. 이제 파티에 가서 나름 재밌게 춤을 추다 올 정도의 실력도 되었으니 세상 참 모를 일이다. 춤이라곤 춰본적이 없는 내가 파티에 가서 춤을 추고 이젠 대회에 나가다니. 참고로 나도 어디가서 춤 더럽게 못추기로는 빠지지 않는 몸치였다. 멍석 깔아주면 나가서 하는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을 정도로 낯가림이 심했다. 장기자랑은 거의 고문이었다. 연극 시작하고 처음 한 연기는 정말 부끄러워 지금도 자다가 이불을 뻥뻥 찰 지경이다. 그런 나의 탱고 대회 도전기, 지금부터 시작한다.

한 반년 정도 전 쯤, 탱고 선생님이 슬슬 입질을 넣기 시작했다. 내년 6월초에 열리는 KITC, Korea International Tango Championship 에 우리 동호회에서도 나갈 건데 파트너 구해서 나갈 생각이 없느냐고.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거라며, 재밌을 거라며. 사실 춤을 배우는건 너무 재밌었지만 공연을 하거나 어디 대회에 나간다는 생각은 정말 해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정말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무슨 ‘챔피언십’ 이라니. 알고보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정식 대회의 아시아 공식 예선이라는 것이었다. 여기 챔피언은 무려 비행기표와 체류비를 지원해주면서 아르헨티나로 보내준다는. ‘제가 여기 나가도 됩니까?’ 라는 물음에 선생님은 ‘돈만 내면 다 나가는 대회에요’ 라며 쿨하게 웃어보였다. 어쨌거나 그래도 대회라니, 잘 와닿지가 않았다.

헌데 그때는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때문에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회 준비반’ 이라는 특강 반을 만들거라는 말에 좀더 밀착 교습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옆에서 같이 나가자고 부추기는 동호회원들 때문이었을까, 뭐에 홀린 듯이 오케이를 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파트너 없이 그냥 대회 준비반에서 특강을 일주일에 한번 열심히 듣는 수준으로 시작했다. 기대했던 것처럼 평소의 수업보다는 좀더 소수 정예로 밀착 교습을 받았기 때문에 기대보다도 훨씬더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았다. 그러다가 한달뒤에는 정말로 같이 대회에 나가보는게 어떠냐고 제안하는 파트너도 생기게 됐다. 그분도 탱고를 좀더 좋아해보기 위한 목표의식이 있으니 대회를 한번 나가보겠다고. 이때까지도 아직 5개월이 남아있었다. 평소에 워낙 친한 분이기도 했고, 나는 역시나 아무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석달이 흘렀다. 고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면 연애를 하게 됐고, 여자친구마저도 조금은 충동적으로 탱고 동호회에 같이 가입해서 춤을 추게 됐던 일. 그리고 스위스 친구가 6개월차 공연을 준비한다기에 파트너를 해준 일이었다. 특히 스위스 친구와의 6개월차 공연 준비를 한달간 하면서 대회특강반을 들었던 것 이상으로 집중 연습을 했었다. 이 친구도 승부욕이 있는 친구여서인지 대충이 없었고, 거의 한달 이상을 일주일에 2번이상 만나서 자정부터 새벽까지 온몸이 땀범벅이 되도록 안무를 짜고 춤을 연습했다. 평생에 다시 무대에 설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탱고가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공연 준비로 밤새는 일이 생각보다 익숙해서인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공연은 실수없이 잘 마쳤고 동호회원들도 스위스 친구가 6개월만에 이정도로 춤을 춘다는 데 놀라워했고, 역시 1년만에 이정도면 훌륭하다며 내게도 격려를 해줬다. 이때까진 별 일이 없었다. 근데 이 즈음에서 원래 대회에 나가기로 했던 파트너 분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회를 나가지 못하게 됬다며 미안하다고 알려왔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웠지만 크게 섭섭하거나 그런 건 없었다. 사실 이때까지도 별로 실감이 안나던 것도 있었고 뭣보다 개인 사정이라는데 이해못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같이 대회에 나가기로 했던 다른 커플들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 대회를 못나가게 되면서였다. 대회준비반에는 어느새 나만 남게 되었다. 사실 몇 분씩 오며가며 나오기는 했지만 이제 대회준비반은 이름과는 다르게 대회준비는 안하게 되었다. 이때쯤 선생님이 나와 공연을 같이 했던 스위스 친구와 대회에 나가보는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고, 스위스 친구도 재밌겠다며 흔쾌히 동의를 해왔다. 대회까지는 거의 한두달 남짓. 뭐 여까지 온거, 함 해보입시다! 공연 연습하면서 파트너쉽도 꽤 좋았기에 나도 크게 고민하지를 않았다.

그렇게 한 달 후, 이제 대회를 등록해야 할 시즌이 찾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멘붕에 빠졌다.

우리 동호회에서 외국인이 대회에 나간 사례가 그전까지 없었기 때문에 미처 규정을 제대로 체크를 못했던 것이었다. 스위스 친구는 아시아 소속이 아닌 유럽 소속이기 때문에 3년이상을 한국에서 거주하지 않으면 대회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멘붕.

멘붕도 멘붕이지만 이 친구에게 설명하기가 아주 난감했다. 우리 모두, 그야말로 동호회원 모두가 이 친구에게 미안해했고, 이 친구도 받아들였지만 몹시 아쉬워했다. 대회를 나가기 위해 정말 열심히 연습했고 기대가 컸는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이미 대회 등록은 이틀 앞인 상황. 나야 뭐 안나가도 그만이긴 했지만 이쯤되니 사실 조금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생각해보면 6개월동안 대회에 나가겠다고 그 난리를 폈는데. 선생님도 아쉬우셨는지 여기저기 대회에 나가고 싶으나 파트너가 없는 사람을 수배했다. 그리고 그때 우연찮게도 파트너를 구하는 분이 한분 계셨다. 대화 끝에, 서로 한번 열심히 해보기로 하고 파트너쉽을 맺었다. 그렇게 나는 대회에 등록했다. 마감 당일날에.

대회까지는 근데 일주일 조금 남은 상황이어서 시간이 없었다. 대회에 나가는 선생님네 팀과 나를 포함해 3팀이 일주일 동안 정말 미친 듯이 춤을 췄던 것 같다. 1년간 탱고를 배웠지만 사실 나도 이렇게 다른 사람과는 전혀 춤을 추지 않고 파트너쉽을 위해서 한 사람과 미친 듯이 의무적으로 또 간절하게 춤을 춰 본 적은 없었다. 공연을 준비할 때와는 또 다른 집중도가 있었고, 사실 이 일주일간 뭐에 홀린 듯 탱고를 췄던 그 순간들이 꽤 기억에 많이 남는다. 실제로 실력도 아주 많이 늘기도 했었고. 이때쯤에서야 선생님이 말했던 ‘대회에 나가는 건 생각보다 부담없고 재밌다’ 고 하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정말로 탱고를 좋아하고 있었다.

대회 전날의 웰컴 밀롱가에서는 심사위원으로 온 아르헨티나 본토 댄서의 공연도 봤다. 대단한 에너지였기에 정말 입을 쩍 벌리고 봤다. 왠지 자괴감 같은게 들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목표의식이 더 생겨서 신기했다. 언젠가 아르헨티나에 가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서 저런 댄서들과 춤을 춰보고 싶다는 생각. 공연 자체도 너무 멋졌다. 아마 올 상반기에 본 모든 연극 뮤지컬 콘서트를 통틀어서 가장 멋진 공연이 아니었나 싶다. 그 15분의 짧은 시간이. 탱고는 정말 멋진 춤 아니겠는가.

대회 당일엔 메이크업을 위해서 새벽같이 일어나 스튜디오에서 집합 한 뒤 대회장으로 향했다. 양천구에 위치한 양천 문화 회관은 아침부터 떠들썩했다. 가끔 파티에서도 뵙는 익숙한 얼굴들이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멋진 풀메이크업과 함께 복도와 폭염을 아랑곳 않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나도 생전 안해본 옆으로 넘기는 올백머리에 화장을 하고, 평소에 잘 입을일도 없는 정장을 입고 플로어 체크를 한 뒤 차례를 기다렸다. 경력 1년의 나를 빼고는 전부 3년에서 5년 이상의 베테랑 들이었다. 이미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는 차원이 다른 댄서들. 그게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어차피 내가 운이 아니고서야 이 사람들을 순수 실력이나 경력으로 뚫고 세미 파이널에 올라갈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긴장보다는 참가비 커플당 13만원을 생각해서라도 3곡을 정말 후회없이 미친 듯이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내가 속한 론다의 심사가 시작됐다. 어떻게 시작한지도 모르게 첫곡이 지나고 두곡이 지나고. 아쉬웠지만 최선을 다해서 후회는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3번째 곡이 나오는 순간 파트너 분의 표정은 생글생글 웃고 계셨다. 이래저래 부족한 나를 칭찬으로 아낌없이 격려해주시며 ‘그저 후회없이 즐기자’던 고마운 분. 아마 나도 세상 바보처럼 실실 웃으면서 그분에게 다가가 안았던 것 같다. 마지막 3번째 곡이 시작됐고, 이제는 심사위원이든 같이 론다에서 춤추며 경쟁하는 다른 커플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나의, 그리고 우리의 대회는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우리의 춤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대회 일정이 다 끝나고 심사 결과를 기다리며 스테이지 밀롱가가 열렸다. 대회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스탭과 선수, 심사위원을 떠나 서로 즐겁게 춤을 추며 즐기고 있었다. 나도 그 스테이지에서 대회에 참가했던 파트너님과 춤을 추며 대회를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다. 정말 즐거웠다. 이런 소속감, 이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있었구나 싶었다.

대회 결과는 꽤 고무적이었다. 선생님은 땅고 데 피스타에서는 3위, 발스 부문에서는 챔피언에 올라 동호회원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다른 참가 선생님들도 예상못하게 좋은 점수를 받았고, 나처럼 순수하게 대회를 즐겼던 사람에게도 엄청난 격려가 쏟아졌다. 그날밤의 맥주는 정말 달았던 기억이 난다. 대회가 끝나는 게 아쉬운 마음마저 들 줄은 몰랐지만, 그날은 그랬다.

나는 이제 다음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도 이제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을 분리시키지 않겠다는, 생활체육 시대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뭐 초기단계의 그야말로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온 수준이긴 하지만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이제 더 이상 명목상으로는 운동부라고 해서 1,2 교시엔 자고 3교시부터 빠따 맞아가며 하루종일 운동을 하는, 학생이 평범한 학창시절과는 담을 쌓고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도 갖추지 못하고 오로지 운동하는 기계로 길러지는 야만적이고 전근대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니까 말이다(현실에선 아직 과도기지만). 소수의 엘리트를 키워서 마치 국력을 과시하듯 올림픽에 내보내 경쟁시키는 건 의미가 없어졌고, 이제는 전국민이 의무교육을 이수하는 동안 취미로 동시에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각종 체육과 문화활동을 즐기는 시대로 이끌어나가겠다는 말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10년 전을 보고 싶거든 중국을 보고, 10년 후를 보고 싶거든 일본을 보라 했던가. 일본은 이미 지금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세대부터는 ‘완전 생활체육 세대’ 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이뤄냈다. 이 말이 뭣인고 하니 지금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세대는 자라면서 초중고 12년 내내 취미로 체육 및 문화 활동을 배우고 즐기게 되고(이미 12년간의 교육이라면 취미로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이후 대학,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클럽 및 동호회 활동을 통해 평생 체육과 문화생활을 최소 하나 이상은 영위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미 방과후 클럽 활동이 너무나도 활성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학교 끝나고 음악이든 연극이든 체육이든 클럽활동을 하지 않는 아이는 도태되어 이지메의 대상이 되는 예상외의 부작용까지 나타날 지경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교과에서 체육을 빼니 음악을 빼니 했던게 불과 몇 년 전에 논란이 됐던 한국을 생각하면 정말 격세지감이다. 물론 한국도 이제는 방과후 클럽 활동이나, 연극 및 무용을 포함한 10개 문화예술을 중학교 자유학기제 교과목 안에 정식으로 포함시키려는 등의 시범 단계를 보이고 있다. 그런 단계니 일본을 생각하면 늦어도 한참 늦는다는 생각을 지울수는 없는 법이다. 이게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이제 슬슬 국민 건강 지표 자체가 일본이 한국을 역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역전한지 꽤 되었다. 한국인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 남성은 군대를 다녀오기 때문에 일본 남성들에 비해 체력도 체격도 좋고 남자다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전국민 생활체육 시대를 겪어내고 있는 일본 남자 고교생들의 체력 점수만 비교해도 일본은 한국의 일반 고교생들을 그야말로 ‘압살’한다. 하루종일 교실에 틀어박히길 강요당하고 고3 교과목에 체육이 필요하니 마니 하는 논의가 오가던 한국의 고교생들이 기본 체력에서 일본 고교생들에게 떨어지는 건 사실 당연한 일이다. 이게 벌써 몇 년 전부터 나타나던 현상이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고생들의 경우는 더하다. 일본은 공립 초중고교에 수영장이 없는 학교가 전국에 10개 미만이다. 한국은 아마 서울 시내 안에서 수영장이 있는 학교를 10개 찾기가 더 힘들 것이다. 고작 군대 2년 다녀왔다고(그 2년의 개고생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나도 다녀왔고.) 평생 생활체육으로 단련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당연히’ 체력적으로 우위에 있을 거라는 생각은 근거없는 오만이다.

문화 생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이제 평생 할 줄 아는 운동이 하나 이상이거나, 그게 아니면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 이상이거나, 출 줄 아는 춤이 하나 이상인, 그런 세대가 되었다. 한국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냐 물어보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수능 공부하느라 못 했어요는 절대 행복한 대답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배움에 끝도 없는 것처럼 시작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내가 정확히 나이 30에 쭈뼛쭈뼛 동호회 문을 열고 들어가 ‘땅고’를 시작했고, 그게 대회 참가로까지 이어진 것처럼 말이다. 나의 목표는 죽을 때까지 땅고를 추는 것이다. 경력 50년의 땅게로라면, 나이 80이 되어도 어느 밀롱가에서도 환영받을 것 같다. 나의 뒤늦은 춤이 내게 가져다준 행복처럼, 당신들의 삶에도 그런 행복이 있기를 바란다.

예전, 학교에서 연기 수업을 들을 때, 그저 연기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어느 학생에게 선생님이 한 말이 기억이 난다.

“춤 하나 제대로 출 줄 모르고, 노래 한 곡 제대로 부를 줄 모르면, 그게 연기만 할 줄 안다고 배우냐?”

우리 모두의 삶에 춤 하나, 노래 한 곡이 깃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