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해지지 말자.

휴, 치사해질 뻔 했다.

불과 3주 전, 예상치 못한 지출로 당장의 현금이 바닥날 상황에 처했다. 애초에 몇 백, 몇 천을 여유자금으로 굴릴만한 형편도 아니었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을 만큼 현금이 부족해졌다. ‘물이 너무 맑아서’가 아니라 ‘물이 너무 얕아서’ 바닥이 훤히 보이는 상황이랄까. 월세, 공과금, 통신비 등등 고정비용을 다 해결하고 나면, 한 순간에 라면을 주식으로 삼아야 할 처지였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들은 가장 간편하고, 무책임하고, 치사한 방법들이었다. 친한 친구에게 돈을 빌려볼까.(그런 적은 거의 없었는데.) 부모님께 손을 좀 벌려볼까.(나이 서른에 또?) 아니면, 2년째 하고 있는 초등학생 글짓기 과외비를 좀 올려볼까, 등등. 뭘 선택하든 간에, 모두 큰 노력 없이 말 몇 마디로 현금을 끌어오려는 수작들이었다. 친구에게 돈 빌리는 건, 차마 당장 아쉬운 몇 푼에 우정에 금 가는 꼴을 보기 싫어서 관뒀다. 부모님께 손 벌리는 것도 파렴치하긴 마찬가지라 패스. 정당한 이유 없이 당장 내 돈에 몇 만원 더 쥐어보겠다고 예정에도 없던 과외비 인상을 하는 것도 치사한 짓 같았다.

치사하지 않게 돈을 벌자. 그게 당연한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내가 생각하는 조건에 맞는 일을 검색했다. 가능하면 이른 아침에 시작에서 점심 즈음 끝나는 일로. 가능하면 단순한 작업으로. 가능하면 한 달에 적어도 100만원 정도는 벌 수 있는 걸로. 며칠을 찾다가(그 며칠 동안, 내 잔고는 점점 메말라갔다.) 정확히 내가 원하던 조건에 맞는 일을 찾았다.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택배 물류 일이고, 적어도 100만원을 더 벌 수 있는 일. 휴, 치사한 인간이 될 뻔한 상황을 겨우 모면했다.

야, 막둥아!

20살부터 대학 다니는 내내, 시쳇말로 ‘안 해본 일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었다. 카페 바리스타, 고깃집 서빙, 공장 청소 용역, 의류 브랜드 판매, 석산 발파 현장, 신문 배달, 무대 설치, 선거 사무소 철거, 학원 강사 등등. 그런 나도 해보지 못했던, 아니 일부러 피했던 일이 택배 물류 아르바이트와 조선소 현장이었다. 워낙 악명도 높고, 7년 전 수술했던 왼쪽 어깨가 신경 쓰이기도 했다.

다행히 내가 일하는 택배사는 일반 택배 물류와 달리 백화점 명품 브랜드 제품을 다루는 곳이었다. 때문에 무거운 물건은 많지 않고, 센터에서 분류하고 나면 모두 백화점 내에서만 배송을 했다. 쉽게 말해서, ‘꽤 할 만한 일’이다. (박스 하나에 몇 천 만원을 호가한다는 점은 부담스럽지만.)

내가 일하는 팀은 나까지 총 6명이다. ‘소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2명,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3명. ‘형님’ 중에선 2살 위인 진짜 형님도 있지만, 마흔 중반의 형님도 있다. (이쪽 업계에선 웬만하면 다 형님으로 퉁 치는 것 같다.) 다들 투박하고, 직설적이고, 과묵한 편이다. 그런데 다들 따뜻하다. 내가 가장 어려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지난 30년 동안을 장남, 애늙은이로 불리던 내가 처음으로 ‘막둥이’로 불린다. “야, 막둥아!”하고 부르는 말에 내가 돌아보면서도, 늘 부끄럽다.

친절과 성실이라는 동기부여

나를 막둥이라고 부르는 철두 소장님은 아침마다 냉정역 2번 출구에서 나를 태워 출근한다. 택배 화물용 1통 트럼 조수석에 타면 “반바지 입으면 안 춥나?” 라든가, “비가 오네.” 라든가, “작가 일이 먹고살기가 참 힘들제?”라든가 하는 말을 먼저 건넨다. 그러고 나면 센터까지 향하는 10분 동안 별 얘기는 없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조수석 앞쪽 고장난 글로브박스가 툭, 하고 열린다. 잠에서 덜 깬 하마가 하품하는 것처럼 툭, 하고. 그럴 때마다 철두 소장님은 민망한지 “야, 야, 야, 그만 좀 열려라잉.”이라고 말한다. 이제 겨우 3주째인데, 만약 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 툭, 하고 열리던 글로브박스가 오랫동안 추억이 될 것 같다.

지현 소장님과 병섭이 형님, 태성이 형님은 초짜인 나를 무척이나 츤데레처럼 배려해준다. 실수를 해도, 했던 질문을 또 해도, 식수 카드를 잃어버려도, 화를 내지 않는다. 입장을 바꿔 나라면 따끔하게 한 마디 할 법한 상황에서도 “처음엔 다 그럴 수 있다. 택배일 15년 째인 나도 가끔 실수하는데, 뭐.”라고 얘기한다. 그런 친절이 따끔한 한 마디보다 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걸, 나는 몸소 겪고 있다. 미안하고 고마워서라도, 더 일을 잘 해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누구 하나 대충 일하지 않고, 남에게 미루지 않는다. 거의 매일을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하면서도 성실함은 녹슬지 않는다. 지현 소장님은 이제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셔도 눈만 뜨면 5시 반이라고 했다. 철두 소장님은 가장이 되면, 직업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고, 매일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못 찾으면 택배든, 뭐든 괴로워서 못한다고 말했다. 성실한 사람들이 말하는 성실함에는 반박의 여지도, 치사한 변명도 필요 없다. 그저 나도 성실할 수밖에.

좋은 사람은 치사하지 않은 사람.

일단은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시간대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뭐 하나 불만스럽지 않은 일이고 글을 쓰기 위한 내 시간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틀 전, 금요일에 국장님께서 사내작가를 구한다는 부산의 한 벤처기업을 소개해주셨다.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국장님의 말씀에도 선택은 신중해야 하는 거니까, 월요일에 회사 대표님과 면접을 보기로 했다.

토요일에 냉정역 2번 출구에서 철두 소장님 차에 올라 사정을 말했다. 면접 이후에 그 벤처기업에서 일을 하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우선은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고. 일을 그만둘 거면 적어도 2주 전에는 알려달라던 철두 소장님이었다. 나로서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어쩔 수 없긴 했지만, 그리고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쨌거나 철두 소장님 입장에선 기분 나쁜 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과속방지턱도 넘지 않았는데, 글로브박스가 두어 번 열렸다. 철두 소장님은 “좋은 기회네. 가능하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면접도 많이 보고 해야지. 회사에 대해서 잘 알아보기도 하고. 여기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면접 잘 보고 와서 어떻게 됐는지만 빨리 연락주면 된다.”라고 말했다. 일했던 3주 동안 들었던 가장 긴 문장이었다. 마침표처럼, 글로브박스가 또 한 번 열렸고, 나는 조금 더 다정한 손길로 피곤한 하마의 입을 닫았다.

면접은 내일이다. 나도 회사가 마음에 들고, 회사도 내가 마음에 들어야 성사될 일이다. 어쩌면 나는 그 회사에 취직해서, 아침마다 툭하면 열렸던 고장 난 글로브박스가 추억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아니면 면접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나는 평소처럼 새벽 7시 10분까지 냉정역 2번 출구에 서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나는 이미 택배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걸 깨달았다. 좋은 사람이란, 치사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거. 치사하지 않으려면 성실하고 친절하면서도, 상대방 입장에서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 우린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거. 요즘 내가 나 스스로에게 자주 다짐하는 말이다.

치사해지지 말자, 치사해지지 말자.
절대 치사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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