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글을 쓴다는 건 참으로 설레고 두려운 일이다.

글을 쓰며 설레는 이유는 단연코 무언가를 ‘생산’한다는 쾌감 때문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려준다. 내 마음과 머릿속, 어쩌면 영혼 일지 모르는 그 둘의 조합에서 꿈틀거리는 여러 가지 무언가. 그것들이 손을 통해 나오고 한 단어와 문장을 만들어 나갈 때, 나는 희열 한다. 내가 썼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문장과 이야기를 보고는, 자신의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누군가의 연락을 받을 때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기분 좋은 부끄러움이다. 더불어 보람이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홍익인간의 생산자’라는 삶의 지향점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기분. 사물 하나하나를 다시 보고 꿈틀대는 영감이 작은 세포 하나를 건드려 온 몸에 퍼져나갈 땐, 당장이라도 끄적거리고 싶은 손끝의 간질간질한 느낌이 일품이다.

설레는 마음과 사물 하나하나에서 무어라도 놓칠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여전한데, 영 자판 위에 손을 놓기가 쉽지 않다. 설레는 마음과 영감이 쌓이고 쌓이면 사람은 괴롭다. 그것들은 풀어줘야 한다. 발산해야 하고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무언가가 그것을 방해하고 나로 하여금 주춤하게 만든다. 주체하지 못하는 즐거움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에 손을 올려놓던 기억이 희미하다. 마음을 돌아본다. 왜 그럴까. 두려움 때문이다. ‘슬럼프’란 녀석은 사람과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친근하지만 무섭다.

올 것이 온 것이다.

두려움은 사람을 초라하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선물이 되기도 한다

태초에 사람이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공포’였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다. ‘두려움’은 그 ‘공포’에서 기인한다. ‘학습된 공포’가 내재화되어 ‘두려움’이 된다. 즉, 위험을 미리 알아차려 준비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면 소극적이 되고 초라해진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가끔은 그 ‘두려움’을 직시하는 것이 좋다. 그것을 피하기만 하다 많은 것들을 놓친 삶에서 오는 경험이다. 그 두려움을 직시하는 방법으로 나는 결국 또다시 글 쓰기를 택했다. 차분히 두려움을 불러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것과 차 한잔 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두려움’이란 감정은 그 테이블에서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애써 자리를 피했던 건 나였다.

그래, 잘 쓰지 못할까 두렵다. 예전엔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써내려 갔던 글이다. 나를 위해 썼던 글이다. 내가 살기 위해 적어 내려갔던 경험과 감정, 그리고 생각들. 이제는 그것이 자산이 되어 책을 쓰고, 글을 기고하고, 강의를 한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들이 점점 ‘해야 하는 일’이 되어간다. 일정에 맞추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 만족해서 쓴 글에 반응이 별로 없을 땐 어린아이와 같이 의기소침해진다. 주위에 같이 글을 써 내려간 사람들이 저만치 몇 걸음 더 먼저 간 것을 보며 조급해진다. 머릿속에 가득한 소재와 영감들을, 끄집어내거나 써 내려가지 못하면 나의 게으름을 탓하기도 한다.

초심을 떠올려야 할 때

슬럼프를 푸는 만능열쇠는 ‘초심’이다.

그것을 잊고 살 때 우리는 방황한다. ‘두려움’을 마주하고 앉아 차를 한잔 하는 것, 그리고 글로 그 감정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는 것이 ‘초심’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아, 그러고 보니 ‘두려움’이란 녀석 옆에는 ‘설렘’이라는 친구도 같이 앉아 있었다. 올 것이 왔다고는 하지만, 그 두 친구는 언제나 함께였다. 둘이 나란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두려움’이란 녀석을 피하려고만 하다 보니, 그 옆에 앉은 ‘설렘’이란 친구를 놓친 것이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부터 ‘두려움’은 있었다. 그리고 ‘설렘’이란 에너지로 써 내려갔다. ‘초심’을 떠올려 보니 변한 건 없는 것이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건 바람 때문일까. 아니, 흔들리는 건 내 마음이었던 것이다.

멋진 단어나 문장을 쓰려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깨우치려 안간하지 말자. ‘책’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써야 한다. 기한에 압도당하지 말고, 책상에 앉는 횟수를 늘려 그 과정을 즐겨야 한다.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누군지 생각하며 그들의 문제와 고민에 공감하는 것. 그래서 이야기하듯 써내려 가는 것이 필요한 때다.

테이블 위 커피가 식어 갈 때쯤.

나는 다시 앞에 앉은 ‘두려움’과 ‘설렘’이란 친구를 바라봤다. 요동이 없다. 변한 건 나의 다짐과 커피의 온도다. 가끔은 그 둘이 오기 전에, 아니 그 둘이 있었다는 걸 잊기 전에 내가 먼저 가 앉아 커피를 시켜놔야겠다. 요동하지 않는 그 둘을 보며 요동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겠다.

이 글의 첫 문장부터 지금까지, 정말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바뀐 건 나의 마음과 다짐, 글을 써 내려간 시간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