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되면 말고

안되면 되게 하라?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말은,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군대 용어(?)’로 풀이된다.

살아남아야 하는 전장에서 나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말은 꼭 군인에게 국한된 것 같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네 인생은 ‘전쟁’이요, 삶은 ‘전투’라는 것을. 이것을 좀 더 응축시키면 ‘직장생활’로 귀결된다는 것도 말이다. ‘직장은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야!’라는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살다 보면 ‘낭만’도 물론 존재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생존’해 있을 때 누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안 될 것도 되게 했던 수많은 경험이 떠오른다. 설대 설득되지 않을 것 같았던 상사, 좀처럼 바르게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았던 후배. 내가 바랐던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을 하다가, 결국 원하는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 해외 바이어가 들어와 급하게 찾은 음식이나 장소를 단 몇 분만에 마련한 순간들. 사람들은 극한에 다다랐을 때 슈퍼히어로가 된다. 자신도 모르던 기지와 지혜, 그리고 초인적인 힘이 생긴다. 안 되는 걸 되게 해야 하니 그 정도 힘은 필요하다.

결국, 살아남기 위한 일들이다!

특히나 우리네 한국 사람들은 좀 더 집요하다.

예로부터 침략을 많이 받았고, 근대까지 전쟁을 치렀으며 작은 땅덩이에 수출로 먹고살다 보니 빨리빨리 살아가야 한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무섭도록 결집하여 ‘공력(共力)’을 발휘하여 큰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개인의 금을 모아 나라를 일으키고, 잘못된 권력은 ‘정의’의 이름으로 끌어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들은 고스란히 집단 무의식으로 자리 잡아 역사라는 이름과 함께 우리들에게 아로새겨진다.

문제는 ‘피로감’이다. 극한에 다다랐을 때 나타나는 ‘초능력’은 한국인들의 장점이지만, 그 능력을 너무 자주 ‘강요’받는다. 쉴 틈 없이 쏟아내야 하는 초능력을 말이다. 직장에서 살아남는 과정은 참으로 노곤하다. 피로가 쌓이는 건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려는, 그러니까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 때문이다.

재밌는 건, 어느 높은 사람이 ‘지시’를 하거나 ‘강요’를 한 것도 있지만, 스스로를 다그치는 일도 많다는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한국인이라는 핏속에 자리 잡은 집단 무의식. 또는 자신이 용납할 수 없어 자존심을 걸고 덤벼드는 경우. 입사 때부터 CEO를 겨냥하며 열정을 불태우는 마음가짐 등이 스스로를 떠민다.

때론 안되어도 괜찮다.
‘안되면 말고’의 정신이 필요하다.

난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말이 싫지는 않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던 능력을 발견한 적도 많고, 정말로 안될 것 같은 일이 이루어졌을 때 느끼는 쾌감은 정말 짜릿하다.

하지만 그렇게 힘을 쓰고도 정말 안되었을 때, 또는 안될 것 같은 걸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시작부터 기진맥진해질 때. 극한에 다다랐는데도 원하는 능력이 나오지 않거나,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때.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낙심하곤 한다. 내가 수행했던 프로젝트가 상사에게 보기 좋게 까이고, 나보다 잘날 것 없는 동료가 더 잘 나가고, 나는 열심히 했는데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끝도 모를 정도로 초라해진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항상 ‘안 되는 것을 되게 해야 하는지?’, ‘왜 항상 극한에 다다라 초능력을 발휘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생존’이라 치자면, 우리는 왜 ‘생존’해야 하는가. 결국 ‘행복한 삶’이라는 궁극적인 지향점을 다시 상기했을 때,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는 ‘나’를 위해 그토록 격렬히 살아온 것인데, 그 과정에 ‘나’는 없던 것이다.

때론, ‘안되면 말고’의 정신이 필요한 이유다.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정신으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는 건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단 상황이나 상대가 이상한 것일 수 있다. 또는 내가 원하던 그것이 나와 맞지 않는 운명일 것이다. 그토록 노력해도 오지 않던 내가 원하던 업무도, 어느샌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나보다 잘 나간다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동료를 바라보는 옆으로의 시선은,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위를 바라보기로 했다.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선택했던 것들로 인해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떨어 버리기로 했다. 내가 행복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직장인에겐 초능력이 있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힘. 하지만, 정체성을 잃은 슈퍼히어로는 위험하다. ‘나’를 찾아야 한다. 때론 안되어도 그것이 나를 해칠 수는 없다는 안도감.

‘생존’이 항상 처절한 것만은 아니다. ‘생존’하는 법 속에는, 인류가 발전해온 비밀과 해법이 있다. ‘회사’도 이익을 추구하며 ‘생존’해야 하는 존재다.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은, ‘회사’가 존재할 때 성립된다. 그러니 상부상조해야 한다. 건전한 관계로 말이다. ‘회사’가 건전하지 않으면, ‘나’라도 건전해야 한다.

이야기가 좀 거창했다. 요약하자면 안 되는 것도 되게 할 만큼 열심히 잘하자는 말이다. 나를 위한 일이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두렵거나 최선을 다하고 나서도 일이 잘 안되었다면 마법의 주문을 읊조리자. 이 짧은 마법의 주문은 무언가를 시작할 때 전에 없던 대범함을 줄 것이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나를 지켜줄 것이다.

‘안되면 말고!’

그렇게 나는 괜찮은 것이다.


P.S

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마주한 굴다리 아래 적힌 그라피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자신을 알아차리고, ‘나’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것. 그리고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 우리에겐 ‘보물’일 것이다. 직장인도 행복할 수 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할 수도 있다. 물론, 안되면 말고 말이다.

생존이 목적이면 표류지만, 보물섬을 찾아가면 탐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