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을 위한 변호

생각해보면 전 세계인들의 주식은 곡물이다. 따지고보면 곡물이라는 메인 베이스 요리 위에 육류, 해산물 등의 ‘사이드 메뉴’가 덧대어진 게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식탁의 모습이다. 그런 모습은 저 먼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아프리카 최남단)에서부터 저 북쪽 노르웨이 노르드킨 곳(유럽 본토의 최북단)까지 세계 어느 곳이든 동일한 형태를 지녔다. 이처럼 우리는 쌀을 베이스로 그에 걸맞는 요리를 해먹지만, 다른 나라들은 밀가루나 다른 곡물들에 의지해 살아간다. 

지구 구석구석을 뒤져보면 먹을 것은 참 넘쳐난다. 물론 아직도 굶어죽는 사람들이 배부른 사람들 보다 훨씬 많은 불평등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자본의 논리에 귀속된 인간의 결과다. 지구 그 자체는 많은 먹을 것들을 ‘뿜어대고’ 있다. (글쓴이가 말하는 것은 ‘미식’의 입장에서 맛있는 것을 뿜어낸다는 말이 아니다.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이렇게나 먹을 것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그리고 어떻게 곡물에 의지해서 살아가느냐 하는 점이다. 스테이크를 먹더라도 빵 한조각을 먹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불고기는 밥과 함께 먹어야 그 맛이 배가 되는 것 같다. 수많은 파스타들은 어떠하며 쌀국수도 곡류가 주원료다. 빠에야, 리조토에도 쌀이 빠지면 서운한 음식이고 미국인들이 사랑한다는 햄버거와 피자에도 빵이 없으면 성립할 수가 없다. 

요즘은 탄수화물 다이어트라 해서 인위적으로 탄수화물을 끊고 산다지만 사실 이는 인간의 음식 DNA의 입장에서 보면 극히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기본적으로 인류는 탄수화물에 중독된 상태다. 그러니까 아주 오랜 시간동안 역사적으로 그렇게 성장해왔다. 쌀과 곡식들이 인류의 기본적인 먹거리로 활용되던 신석기 시대때부터 누적되어온 인간의 오랜 식습관이다. 

영양학적이고 생리학적인 변별요소를 가려내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글쓴이는 우리가 왜 이토록 곡류에 의존하며 살게 되는지 전통적이고 문화사적인 요소를 알아보려 한다. 인간의 몸에 대한 의학적 접근과는 상충될 수도 있으니 그 점 양해바란다. 

곡물에는 많은 장점이 있다. 다음 세대가 스스로 나올 수 있게 자생적이면서도 칼로리가 높고 영양이 풍부하다. 곡물은 야생 상태에서도 잘 자라고, 노동력이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사냥으로 인한 부상과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것 보단 안전했고 그만큼 확실한 식량도 없었다. 또한 추위나 가뭄, 우기처럼 때마다 찾아오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대비하여 항아리 같은 곳에 보관해 놓을 수 있었다.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그토록 외워야 했던 빗살무늬토기 뭐 이런 곳들에 말이다. 

수렵과 채집은 인간에게는 사실 엄청난 리스크였다. 인간이 거의 발가벗은 맨몸으로 다니던 시절에는, 유일하게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집이나 거처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생존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 생존가능성은 식량획득성과 반비례해졌다. 어떤 한 인간이 한 지역에 정착을 했다고 치자. 처음에는 그 주변의 식량으로만 살아갈 수 있지만 그것은 점점 소멸된다. 그러면 더 멀리, 더 멀리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많은 식량을 획득하려면 생존가능성을 낮추는 모험을 했어야 한것이다. 

하지만 곡물은 그렇지 않았다. 곡물은 집 주변 하천가 혹은 나무가 빽빽한 지역에서도 나무를 잘라버리고 곡식을 기를 수 있는 터전만 만들어주면 어디서나 만들어 낼 수 있는 식량이었다. 그러니까 곡물의 등장 이전까지는 인간은 베어그릴스나 정글의 법칙보다 더 한 야생의 상태에 툭 하니 내던져진 존재였지만, 곡물의 등장은 인간이 먹거리를 최초로 ‘양식’에 성공한 사례였다. 

바나나를 비롯한 과일 등은 상당한 칼로리를 제공하지만 대부분 그 크기가 작거나 시고 맛이 썼으며, 한철에만 나고 금방 물러져 저장하기 힘들었다. 도토리, 호두, 잣, 코코넛, 헤이즐넛과 같은 견과류는 칼로리와 영양이 풍부했지만, 대개 기름이 많기 때문에 과다 섭취시 폭풍설사를 유발했다. 또한 견과류의 나무들은 열매를 맺기 까지 수년이 걸리므로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여 신속히 식량을 생산해야 하는 이주민들은 견과류 보다 곡물을 가지고 이동했다. 

하지만 사냥에 의존했던 최초의 인류가 생존가능성이라는 대가를 치뤄야 했듯이, 곡물 생산에도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것은 둘 다 딱딱하고, 날 것으로 소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곡물의 가장 큰 문제는 먹을 수 없는 섬유질 껍질층이 겉을 둘러 싸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메밀 같은 경우는 그 껍질에 심하면 피부염까지 일으킬 수 있는 독성분이 있어 매우 주의를 요하는 곡물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을 제거해야 했다. 예컨대, 밀을 가루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고된 노동이 필요했다. 

첫째, 두들기거나 짓밟거나, 톨곡판을 사용하여 탈곡한다. 

둘째, 갈퀴로 지푸라기들을 제거한다. 

셋째, 키질하여 나머지 지푸라기를 제거한다. 

넷째, 낟알이 달린 이삭들을 체질하여 다시 지푸라기와 잡초를 제거한다. 

다섯째,  다음 해에 뿌릴 씨앗으로 밀의 일부를 따로 떼어 놓는다.

여섯째, 나머지를 보관한다.

일곱째, 다시 일할 준비가 되었을 때, 잔이삭들을 말려 껍질이 부서지기 쉽게 만든다.

여덟째, 잔이삭들을 빻아 밀알에서 껍질을 벗겨낸다.

아홉째, 키질을 하여 껍질들을 제거한다.

열번째, 밀을 체로 쳐깨지지 않은 잔이삭과 잡초를 거른 뒤 기근을 대비해 일부 남겨둔다. 

열한번째, 밀을 좀 더 가는 체로 걸러 불순물을 제거한다.

열두번째, 밀을 물에 담가 훼손된 낟알이나 독보리, 야생 귀리를 없앤 후 말린다.

열세번째, 이렇게 만들어진 ‘빗살무늬토기(?)’에 보관한다.

빵을 만들려면 밀가루가 필요했고, 밀가루를 만들려면 딱딱한 밀알을 갈아야 한다. 곡식을 가는 것은 쉬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많은 양의 곡식을 가는 일은 엄청난 기술과 인내심, 육체적인 힘과 시간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여자가 무릎을 꿇고 곡식을 갈기 위해 젖가슴을 흔들어대는 모습은 민망하기도 하고, 너무 굴종적으로 보이게 하며, 때론 성적인 자극을 불러 일으킨다. 18세기와 19세기 삽화에 그려진 곡식을 가는 멕시코 여인들이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중노동 아닌 중노동은 그래서 여자, 죄수, 노예에게 주어졌다. 이런 노예를 ‘연마 노예’라 불렀는데 7세기 영국 법률문서에도 이 용어가 공식적으로 등장할 정도다. 

우리가 먹는 쌀 또한 엄청난 탈곡 과정을 거쳐야 했다. 지금이야 자동화된 기계로 털면 금방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또 지금이야 건강상의 이유로 현미를 먹지만 그때는 선택의 여지없이 어쩌면 지금의 현미보다 더 거친 야생에 가까운 쌀을 먹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곡식은 볶으면 갈기 쉽고 향긋한 냄새가 나며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된다. 간단히 물만 부어도 썩 괜찮은 요리가 되었고 거기에 고기나 채소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처음에는 죽의 형태로 만들어 먹었다. 연료가 귀했던 과거의 인류에게는 곡물만큼 좋은 연료효율성을 지닌 음식도 없었을 것이다. 식물은 질긴 섬유질 때문에 물에 푹 삶아야했고, 고기 또한 오래 익혀야 했다. <구약성서>에서는 이런 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장자의 권리까지 팔았는 걸 보면 곡물요리야 말로 인류의 가장 보편타당한 음식이었다. 더 나아가 인류는 이 곡물의 씨앗에 열이나 압력을 가하면 기름이나 당류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처럼 곡식이 인류 음식 문화사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성과 유연성 때문이었다. 

이렇듯 어디에나 넣어도 요리가 되는 이 곡물은 활용성이 매우 뛰어나고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다. 그러니까 인류의 음식문화사적으로 볼 때, 인류가 탄수화물을 빼놓고 살았던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인위적으로 곡기를 끊는 것이 영양학적으로나 생리학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구체적으로 잘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은 몇 만년을 곡기와 함께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그 곳에 의존하며 살아갔다. 오히려 과영양, 포화영양을 경계해야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인간의 모든 영양불균형의 근본원인을 탄수화물이나 곡물에 있다고 몰아가기엔  탄수화물은 몇 만년 동안이나 무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