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SPAF(서울 국제 공연 예술제)에서 하는 해외 작품 초청 공연을 매년 거의 빠지지 않고 보는 편이다. 일단 공연 예술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영화처럼 해외의 수준 높은 작품이 있다 한들 바로 접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공연이라는 것은 단순히 대본만 가져와서 한국어로 만든다고 비슷한 수준으로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연출과 배우는 물론 공연의 스태프, 크루들까지 같이 와서 작업을 해야만이 그나마 비슷한 수준으로 공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공연이 제대로 경제적으로 흑자를 낸다는 보장이 없으니 자주 내한할 수는 없다. 그러니 아무리 수준 높은 해외 공연 작품이라 할지라도 SPAF처럼 축제시즌에 한꺼번에 내한하는 게 아니라면 접하기 힘든 것이다.

SPAF에서 초청하는 해외작품은 보통 한번에 5작품 정도이다. 현대무용과 연극을 적절하게 반반씩 섞어 초청하는데, 어느 작품을 보아도 신선하고 수준이 높아 공부가 많이 된다. 재작년과 작년에 보았던 작품들은 모든 작품의 수준이 높아서 감동적일 정도였다. 무대에 신이 내려오는 종교적인 경험을 하게 한 아크람 칸 컴퍼니의 <언틸 더 라이온즈>부터, 작품을 창작하는 방식에 강한 충격과 영감을 준 <수브니르>, 현시대 가장 위대한 연출가 중 하나인 드미트리 파파이오아누의 걸작이자 대작인 <위대한 조련사>, 쉐익스피어의 작품을 정말 동시대성으로 살려 제대로 연출한 클루지 헝가리안 씨어터의 <줄리어스 시저> 까지. 하나같이 대단한 작품이었다. 그야말로 작가로서 연극인으로서 충격과 감동 그리고 공부와 고민할 지점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그 중에서도 특별했던 작품은 이란 작가인 낫심 술리만푸어의 <하얀 토끼 빨간 토끼> 였다. 낫심 술리만푸어는 이란에서 병역 거부로 출국 금지가 내려진 작가였다. 그런 그는 이란의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환경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전세계의 배우와 관객을 만나고 싶다.’ 그는 그 생각을 작품을 통해 실현하기로 결심을 한다. 그렇게 쓰여지게 된 작품 <하얀 토끼 빨간 토끼> 는 형식부터 아주 독특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리허설도 연습도 없다. 매 공연이 시작되면, 매번 다른 배우가 무대에 나와야 한다. 그 배우는 작품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들은 적이 없다. 공연이 시작되면 배우는 무대 위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관객과 인사를 하게 되고, 공연 관계자에게서 대본을 전해받게 된다. 배우는 그렇게 대본을 읽어나가며, 대본의 지시에 맞춰 관객과 함께 공연을 이어나가게 된다.

작년 SPAF 에서는 6명의 배우들, 손숙, 이호재, 예수정, 하성광, 김소희, 손상규 가 공연했고, 당시로든 지금 기준으로든 한국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 6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라인업이었다. 나는 하성광 배우의 공연으로 보았는데, 굉장히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즉석에서 대본을 받아 직접 읽어가며, 또 지시를 이행해나가며 하는 연극이기에 고전적인 방식으로서의 연기랄 것도 없는 형식이었지만, 그렇기에 어느 공연보다도 배우와 관객의 사이가 아주 가까웠던 공연이었다. 관객들은 하성광 배우가 너무 모든 지시문을 다 따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했고 실제로 그 마음을 직접 말로서 전달하기까지 했다. 하성광 배우 역시 관객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나가며 작품에 대한 토론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작품은 결말에서 어떠한 행동을 배우에게 요구하는데, 이때가 배우와 관객이 가장 밀착하면서 동시에 갈등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극이 모두 끝난 뒤 하성광 배우가 한 말이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 나 하성광이라는 사람, 그리고 배우 하성광이라는 사람의 진심이, 마지막 액팅이었다고. 또, 그는 전날의 손숙 선생님(하성광 배우는 2번째 배우였고, 첫 번째 배우가 손숙이었다.) 께서는 공연이 끝나고 1시간이 넘게 관객들과 이야기하며 여운을 가졌다고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연극은 그 여운을 모두 풀어놓지 않고 각자의 가슴에 안고 극장 문을 나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며 너무 많은 토론보다는 이 여운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괜찮겠지요?’ 하며 사람좋게, 그리고 진심어린 미소로 씩 웃는 그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난 그 말에 적극 동의했기에,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혼자의 여운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록 4호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이 꽤 외롭기는 했지만. (극단 혹은 예술집단을 차리는 많은 사람들의 동기가 ‘외로워서’임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하얀 토끼 빨간 토끼>에 대해 당시 개인 SNS 에다 이렇게 짧은 평을 남겼다.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모습의 유언장’

모르겠다. 그저 개인적으로 나는 낫심 술리만푸어가 아주 진지하고 진심으로 죽음을 마주보고있다고 느꼈다. 그때 극장문을 나서며, 또 집으로 가는 4호선 지하철 안에서 굳이 또 방정맞게 SNS 계정으로 평을 남긴 것은 그 생각과 느낌을 잊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 역시 그런 방식의 유언장을 꼭 쓰고, 남기고 싶었다. 대대손손 공연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관객과 배우와 만나는 나라는 작가의 유언장을.

 

그 인상깊었던 작품 <하얀 토끼 빨간 토끼> 가 두산 아트센터에서 연극 <낫심>이라는 제목으로, 한달간이나 기획 공연이 되고 있다. 4월 10일에서 4월 29일까지, 무려 21명의 배우다. 면면도 화려하다. 한번 작년에 공연했던 손상규 배우도 포함되어 있고, 평소 스크린이나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에서 모습을 보인 후로는 무대에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던 배우들도 많이 포함이 되어 있다. 한예리, 김꽃비, 권해효, 진선규, 박해수, 문소리, 오만석, 구교환, 유준상, 류덕환 등은 특히 그러하다.

작품의 파워였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무대에 나들이한 배우들, 슈퍼스타들의 힘이었는지 21회의 공연은 이미 일찌감치 전석 매진이었다. 나는 표를 구할 길도 없었을뿐더러, 여권이 몰수당해 해외여행 금지라고 들었던 낫심 술리만푸어가 내한해서 행사에 직접 참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기에, 예매할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아마 작가인 낫심이 직접 내한한다는 소식을 미리 들었다면, 어떻게든 표를 구해 누구의 공연이라도 상관없으니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꼭 해줬을 거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방식의 유언장을 쓰셨어요.’ 라고.

어찌됐든 연극 <낫심>은 그렇게 전석 매진이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살다보니 연극이 전석 매진이 돼서 못보는 경우도 있구나. 하고.

좋아해야 되는 일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저 씁쓸하게 또 웃을 뿐이다. 왜냐면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좋아해야 되는 일이지, 평소에 무대에서 볼 수 없는 슈퍼스타(솔직히 연기력과 인지도를 떠나서 고작 이만한 배우들의 라인업으로 슈퍼스타라고 하는 것도 민망한 수준이다.) 들의 무대 나들이로 이뤄낸 전석 매진은 그저 한국 연극판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줄 뿐이기 때문이다. 뭐 이미 미투와 그 후속파문들로 인해 드러날 대로 드러나긴 했지만 말이다.

최근 TV 드라마 <슬기로운 깜빵생활>에도 주연으로 발탁되며 인지도가 급상승한 배우 박해수의 경우는 연극을 오랫동안 하며 대학로에서 잔뼈가 아주 굵은 배우이다. 그런 박해수조차 작년에 연극 <남자충동>에서 류승범과 더블 캐스팅이 됐을 때는 거의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티켓 파워가 바닥을 치는 수준이었다. 류승범의 캐스팅이 전석 매진에 가깝게 되었을 때 박해수의 캐스팅이 티켓이 거의 남아도는 수준이었던 건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사람들은 작품도 아니고 박해수도 아닌 류승범을 보러왔던 것일 뿐이었다. 그 박해수가 이번 <낫심>공연에도 출연하는 걸 보니 그의 높아진 인지도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작년과 올해의 그 온도차에 여전히 씁쓸함은 감출수가 없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다 그렇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TV 드라마와 헐리우드 영화의 주연으로 여러 작품 캐스팅되며 굉장히 바쁜 작품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영국의 National Theatre(줄여서 보통 NT라고 한다.) 와의 협업으로 쉐익스피어의 <햄릿> 주연을 맡아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해리포터 역할로 유명한 다니엘 래드클리프 역시 무대 연기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며 연기력을 다듬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독 한국에서는 TV 드라마나 영상에서 얼굴을 비추는 배우들을 무대에서 마주할 기회가 적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솔직히 나는 연극 <낫심>이 그 독특하고 대단히 아름다운 작품의 형식과 이야기 때문에 전석 매진이라는 관객몰이를 한 것이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좀 삐뚫어진 생각이라 할지라도 어쩔수가 없다. 실제로 그만한, 솔직히 슈퍼스타라 부르기엔 조금 민망한 그정도 라인업으로, 무대에서 보기 힘든 그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그것도 1인극으로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 관객들이 보러간 이유가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슈퍼스타들을 보러 간 관객들과, 도대체가 영상매체로 한번 넘어가면 전남친 차버리듯 거들떠도 보지 않고 무대에는 도무지 코빼기를 비추지 않는 그 슈퍼스타 배우님들을 탓할 생각도 나는 없다. 그들이 연극을 다시 하지 않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고, 관객들이 그정도 배우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연극을 굳이 보러가지 않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국 연극은 그동안 특별한 경험을 주지 못했다. 관객들에게 주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고, 배우들에게도 물론인 것이다. 한국 연극은 영상매체로 넘어간 배우들이 다시 한번 무대를 동경하고, 저 작품을 저 캐릭터를 연기하고자 열망하도록 만드는 데 실패해 왔고, 역시 관객들이 무대를 동경하고 특별하고 거의 종교적이기까지 한 경험을 극장 안에서 찾도록 열망하게 만드는 데 실패해 왔다.

<낫심>의 관객 몰이를 보면 안다. 배우들과 관객들이 그동안 한국 연극에서 찾지 못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무언가를 찾아서 <낫심>을 공연하고 또 보러 왔는지 말이다.

내게 <낫심>의 전석 매진은 그렇기에 한국 연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편적인 현상이었다. 최근의 미투와 여러 가지 악폐습들 그리고 위계적 폭력들의 폭로는, 내게 연극적 스승이나 선배들따위는 정말 손에 꼽는 한둘 빼고는 없었구나를 깨닫게 했다. 아무리 연극이 인간이 좋아 시작해서 인간이 혐오스러워지는 예술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너무한다 싶은 시간들이었다. 스승도 선배도 없는 나라는 연극인이, 극작가가, 이제는 뭘 해야 할까를 고민하던 차였다. <낫심>의 감상평을, 다시 오랜만에 찾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