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무술에 의권이라는 무술이 있다. 왕향재라는 사람이 1900년대 초반에 창시한 근대 중국 무술이다.

왕향재가 10살 무렵이었을 때 워낙 몸이 약했기에, 그의 부모님은 어린 왕향재가 마을에 사는 고수에게 무술을 배우게 시켰다. 하필이면 그 고수는 형의권의 곽운심이었다. ‘반보붕권 타편천하’(반보의 붕권으로 천하를 때리다)의 그 곽운심 맞다. 일본 만화 <권아> 로도 알려진, 붕권만 연습해서 고수가 되었다는 그 곽운심이다.

곽운심에게서 ‘나의 진전을 모두 이어받았다’ 고 인정받을 정도로 왕향재는 권법에 출중해졌고, 나중에는 베이징에 가서 ‘무술로 친구를 사귄다’ 는 신문 광고를 내어 도전해오는 무술가들을 족족 두드려패서 이기는 무협지 같은 일을 실제로 벌여 유명해졌다.

왕향재는 나중에 신문에 직접 중국 무술의 단련법이나 자신의 견해를 칼럼으로 싣기도 했고, 말년에는 중화체육총회기획위원회의 무술팀 팀장, 보정시 하북성 중의 연구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런 왕향재가 만든 의권은 기존의 중국 무술들과는 꽤나 판이한 모양새를 보인다. 당장 유튜브에 검색만해도 무수한 영상들이 쏟아지겠지만, 일단 여타 중국 무술들처럼 투로(품새)를 하지 않는다. 마치 복싱에서처럼 스탠스를 잡고 기술을 연마하고 신체를 단련하는 모습이 전부이고, 상대방과 직접 손을 맞대는 대인 연습이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전까지의 중국 무술들이 상대방과의 실제 연습을 등한시하고, 오로지 투로에만 집착하거나, 신체단련에 게을리하는 모습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런 모습은 중국 무술의 진화이자 발전이라고까지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의권이 중국 무술의 전통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자부했고, 타인들도 모두 그것을 인정했다.

왕향재의 의권은 그 실전성으로 이름이 높았고, 실제 기록으로도 남아있는 것들이 많은데, 2차 대전이 한창인 시절 유도5단 검도3단의 사와이 켄이치가 그에게 도전했다. 왕향재는 아랑곳않고 이 일본인을 두들겨팼고, 사와이 켄이치는 맞다가 감동했는지 그에게 의권을 배웠다. 2차대전이 끝나고 사와이 켄이치는 일본으로 귀국했고, 자신이 배운 의권을 ‘태기권’ 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보급했다. 그 명맥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중국무술을 배우면서 관심있는 분들을 종종 페이스북에서 친구 추가 하다보니, 어느새 실제로 얼굴한번 마주친 적 없는 무술인 페친분들이 엄청 늘어났다. 그중에는 의권을 하시는 분도 있다. 앞에서 말했던 이 의권의 맥을 잇는 분인 것이다. 최근에 이분이 쓴 글 중에서 인상깊은 대목이 있었다.

자신이 배운 요씨 의권(계열에 따라 몇갈래로 나뉜다)의 요종훈 선생께서는 누가 묻지 않는 이상은 창시자인 왕향재 선생을 언급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왕향재까지 갈 것도 없이, 누가 묻지 않으면 역시 자신이 직접 무술을 배운 아버지의 이름조차도 언급하는 일이 없다고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 스스로가 그들만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술이란 후대로 갈수록 발전하고 더 강해지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창시자가 절대무적으로 제일 강하고, 그 이치가 너무 오묘하기 때문에 그 뒤로는 몇 대로 명맥을 이어오든지간에 창시자보다 강해질 수가 없다? 도대체 아무리 노력해도 강해질수가 없고 오히려 퇴보한다는 그딴 무술을 왜 배우고 앉아 있나?’

그분이 쓴 글의 마무리였다.

맞다.

우리는 진화해 왔다.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어떻든지간에 뛰어나다.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이라는 말은 그냥 수사나 거짓이 아니다. 그럼에도 취업난인건 이전 세대가 아직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일 뿐이지, 우리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못해서가 아니다. 우리 세대는 이미 이전 세대를 한참 전에, 그것도 아득히 뛰어넘었다.

88올림픽 전에는 해외여행도 자유화가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우리는 20대에 해외 여행을 다녀오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 세대가 되었다. 해외 여행에 나가서도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고추장에 김치를 싸들고 다니고, 민폐를 끼치며 어글리 코리안의 명성을 쌓았던 이전세대와는 다르다.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별 여행 자금 없이 전세계를 배낭여행 하는 젊은이를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단순히 여행이나, 스펙이나, 학력에서만 그러한가.

70년대, 최고의 체력장 등급 세대라며 이전 세대가 자랑하지만, 그 체력장 최고 등급의 넘치는 체력으로 그들이 만들어 남긴 것은 폭력적 군대문화의 전 사회에 걸친 확장, 폐해만 남은 가부장제, 그 진보적이라는 학생 운동에서조차 뿌리 깊게 박아놓은 여성차별이다. 잠깐 그들이 정말로 우리 세대보다 잘했던 것은 베트남 전쟁에서 실전을 쌓은 것뿐이다. 그마저도 현대화된 우리 세대의 군이 더 덜 부조리하고, 더 효율적인 훈련을 소화해내며, 더 최신의 장비로 무장하고 있으며, 더 강하다.

우리의 감성은, 우리의 문학은 어떠한가.

전 세대의 문학인들이 남긴 최대의 성과가 고은의 노벨상 도전이라면, 사양하겠다. 전 세대 문학인들이 남긴 최대의 유산이 고은의 성추행이라면, 사양하겠다. 이미 2000년대 초반에 “이 무시무시한 신인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 시인으로서의 믿음과 비평가로서의 안목 둘 다를 걸고 말하건대, 이 시집은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다”(권혁웅), 라거나 “불가능한 감수성”이라고까지 찬사를 받은 <나는 이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의 시인 김경주가 더 높이 평가받을만하다. 그 김경주의 데뷔조차 10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의 문학인들이, 미투를 기점으로 전 세대의 악습을 뿌리뽑겠다는 지금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더 나음이다.

라디오 방송을 테이프에 녹화하고, 닳고 닳을때까지 들었다는 이전 세대의 감수성이 지금보다 나을 것도 없다. 우리 세대는 감히 말하건데 MP3 의 축복과 세례를 받은 세대이다. 매일 이렇듯 손쉽게, 그것도 폭발적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수용하여 감상하고 내면화하는 세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전 세대는 PUNK 조차 제때 수입되지 않아 반항의 감수성을 전혀 내재화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약하고 아픈 지점이기까지 한걸 보면, 고등학교때 헤비메탈 한번 쯤은 광적으로 듣는 시기가 있고, 또 실제로 시도해보지 않는 이가 없는 우리 세대가 더 자유로운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송골매의 배철수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평생을 이렇게 말해왔다. 정치적인 말은 단한번도 해본적이 없고, 정치적인 노래를 단한번도 해본적이 없다고. 그렇게 배철수는 지금까지 버텨왔고 살아남았다. 그를 가수라고 할 수는 있을 지언정 진정 락커Rocker라고 할 수 있을것인가. 스스로를 회색인임을 자처하는, 군사독재 시절 반항다운 반항, 들이받음 다운 들이받음 한번 해보지 않은 락커를 락커라 부를 수 있는가. 그런 이를 락커라 불러야 한다면 나는 민망하다. Rock 이란 모름지기 자유와 저항, 반항의 상징 아니었는가. 평생 저항이나 반항없이 ‘안전하게’ 자유를 노래해온 그를 Rocker 라 해야한다면, 지금 세대의 인디 가수들은 Rock의 신이요, 인디씬은 신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놈의 디지털 치매 역시 사실 무근으로 드러난지가 오래다. 뇌가 퇴화한다? 전혀, 뇌는 진화할 뿐이다. 너무 많은 스마트기기와 정보들로 인해 디지털 치매에 걸린다? 전혀, 뇌는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해 정보들을 처리한다. 우리는 더 똑똑해졌고, 더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뿐이다. 지금 세대가 책을 읽지 않는다? 이전 세대는 책을 많이 읽었나? 자신할 수 있나?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쳐다도 볼 수 없었던 유럽리그에서 한국인이 공을 차고, 챔피언 결정전 이름이 무려 ‘월드 시리즈’인 메이저 리그에서 한국인이 배트를 휘두른다. 교실과 공부에서 강제로 추방당하고, 무식하다는 손가락질까지 당해가며 밥먹고 운동만 한 엘리트 체육인을 길러내고, 그런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못따면 역적인 마냥 손가락질하고, 또 선수는 주저앉아 울고 국민들의 지탄을 받던 세대에서, 이제는 전국민 생활 스포츠의 시대가 열렸다. 올림픽에서도 이제는 2등이나 3등이 억울해하지 않는다. 올림픽이라는 축제를, 순수하게 축제로서 즐길 수 있게 된 첫 세대가 우리 세대이다.

우리의 육체와 감성은 당신들을 뛰어넘었고, 우리의 예술은 당신들의 예술을 뛰어넘었다. 우리의 노래도 마찬가지요, 우리의 아이돌조차도 당신들의 아이돌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진정 아이돌 취급을 받고 있다. 우리의 관능미와 섹시함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의 패션도, 우리의 철학도 마찬가지다.

요즘 애들이 예전만 못하다고? 더 나아지지 않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 믿는 그대여, 그런 삶을 대체 뭣하러 살고 있는가?

우리는 진화했다.

우리는, 당신들을 뛰어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