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는 서럽다.

한민족이 사랑하는 뚝배기. 요즘은 사람의 머리를 깨는 행위를 ‘뚝배기 깬다’ 고들 하지만, 뚝배기의 어원은 사람의 머리와는 전혀 무관하고 아직까지 정설이 된 뚝배기의 어원은 없다. (다만 ‘뚝배기 깬다’의 어원은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헬멧모양이 뚝배기 모양이라서… 생략)

요즘은 애나멜로 코팅된 두꺼운 플라스틱 그릇을 보고 뚝배기라며 내놓는 국밥집이 많다. 조심하자. 애나멜 그릇은 견과류나 간식이나 샐러드 등 간단한 음식을 담기엔 가볍고 좋은 소재이지만, 펄펄 끓는 국물을 들이부은 애나멜 그릇은 뚝배기만큼의 보온성을 가지지도 못할 뿐더러 어떤 식으로든 애나멜과 플라스틱 성분이 소량씩 녹아나온다. 과다섭취시 건강상의 문제는 장담하지 못한다.

자 그럼 여기서 한가지 드는 의문이 있다. 보온성이 특별하지도 않고 건강에도 썩 좋지 않은 애나멜 그릇을 왜 굳이 사용하느냐의 문제이다. 사실 이 정도의 문제라면 그냥 일반 사기그릇에 국밥을 담아도 크게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이유는 뭘까? 그렇다. 비쥬얼이다. 뚝배기 모양과 비슷해야 국밥 먹을 맛이 난다는 게 그 이유다.

식문화는 알게 모르게 유전적인 학습요인이 매우 중요하다. TV 나 매체에서 어떤 음식이 어떻게 소비되고 어떻게 먹어지는 지를 접할수록 우리 DNA에 식문화 요인이 점점 학습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또 오래된 문화일수록 그 문화를 깨부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음식이 제공되는 그릇의 역사만 보아도 우리는 그 음식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는다.

예컨대 초등학교 때 학교 앞 떡볶이 집에서 자주 보았던 초록색 접시에 흰들이 박혀있는 그릇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떡볶이의 산 역사와 같은 그릇이었지만 요즘은 그 그릇을 찾아보기 힘들다. 떡볶이 집에서도 그 그릇은 잘 쓰지 않는 과거 유물이 되었다. 글쓴이에게는 불과 20여년전의 일인데도 말이다. 떡볶이에 담긴 그릇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했다. 요즘은 철판 떡볶이도 나올 정도다.

스테인리스 밥공기는 어떠한가. 식당에 가면 비쥬얼적으로 한참 뒤떨어진 잿빛의 그릇에 밥을 담아준다. 박정희 정권의 유물이다. 쌀이 부족했던 시기에 밥의 표준양을 정한 것이 바로 그 그릇인데, 어쨌든 그것만 보고 있자면 더럽게 밥맛이 뚝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식문화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감성. 그래서일까, 요즘 식당들은 하나둘씩 밥그릇을 바꾸고 있다. 재질도 재질이려니와 디자인적으로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럼 떡볶이와 밥그릇의 공통점은 뭘까. 떡볶이와 쌀밥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떡볶이와 쌀밥을 소비했던 주변 문화들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담는 그릇을 바꾸는데 주저함이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떡볶이와 밥의 역사는 1950년 해방 이후부터라고 보면 된다. 한민족과 아직 100년도 같이 지내지 못한 역사로 인해 우리에겐 사실 그 음식의 주변문화에 대한 DNA가 거의 없다. 문화적 변이가 빨리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다.

하지만, 뚝배기는 죽어도 안바뀐다. 오히려 어떤 경우는 뚝배기가 늘어나는 추세다. 요즘은 심지어 뚝배기 라면도 나온다. 뚝배기는 보온이 탁월하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현대사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뚝배기의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바로 무게감이다. 그래서 재질이 변했다. 가벼운 애나멜 플라스틱으로. 그런데 모양은 변함이 없다. 뚝배기의 두꺼운 듯한 모양, 그리고 흙이 생각나는 색깔까지. 그러니까, 그나마 바뀐 것이 재질정도이고 나머지는 다 그대로다. 떡볶이나 밥공기에 비하면 변이속도가 너무나 더디다.

그 이유는 뭘까. 아까 그릇만 보아도 음식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말에 힌트가 있다. 우리나라의 국밥문화는 실로 엄청난 역사를 자랑한다. 물론 돼지국밥, 소고기국밥은 해방 이후 만들어진 국밥이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어떤 식으로든 첨벙거리고 펄펄 끓는 그 무언가와 밥을 함께 먹었다. 여기서 밥이란 쌀밥이 아니다. 쌀은 해방 이후, 박정희 군사 정권이 지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국물이 없으면 도저히 삼키기 힘든 쌀이 아닌 까끌까끌한 곡식들을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소화를 시키는대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에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국물을 집어 넣어 불려야 했다. 먹을 것이 많지 않던 조상들은 반찬이란 개념이 없다시피할 정도로 빈약했으므로 밥의 양이 많았는데, 그 많은 양을 먹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국이나 탕의 보온성이 잘 유지되어야 했다.

이것이 국밥의 역사다. 사실 뚝배기 국밥 문화는 서민들의 서글픈 역사이기도 하다. 실제로 요즘의 애나멜 뚝배기가 아닌 오리지널 뚝배기는 고려시대부터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고려와 조선을 거칠 동안 뚝배기는 농민들의 일종의 보온밥통 혹은 보온도시락이었다. 양반과 사대부들이 자기그릇에 밥을 먹고 있을 때, 농민들은 저 투박한 뚝배기에다가 음식을 담아 먹었다.

우리 속에 담겨있는 국밥에 대한 DNA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것을 당장에 끊어낼 수가 없다. 마치 원래 그랬던 것 처럼, 우리 모두는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우리는 조상들이 보냈던 힘들었던 삶을 그대로 먹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