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어느새 탱고를 배우고 춘 지가 1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스포츠 댄스에서 배우는 컨티넨탈 탱고와 내가 지금 추고 있는 아르헨티나 탱고의 차이점도 모를 정도였지만, 어느새 2년차에 접어든 땅게로가 되었다. (땅게로라는 표현은 사실 탱고의 마에스트로-마스터 이자 챔피언에 근접한 혹은 이룩한 남자에게 쓰는 표현이지만, 어쨌든 탱고를 추는 남자라는 표현으로서는 어감이 썩 멋지기 때문에 한국의 탱고판에서는 자주 통용되고 있다. 여자는 땅게라.)

컨티넨탈 탱고는 스포츠 댄스 안에 있는 탱고로, 오리지날 아르헨티나 탱고와는 조금 다르다. 아르헨티나의 탱고가 유럽으로 건너가고, 유럽에서 유행하다가 스포츠 댄스의 한 종목으로 편입되면서 채점방식이 생기고 시합의 형식으로 변형되었기 때문에 형태도 다르고 본질적으로도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 탱고는 조금 더 파티나 클럽에서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어울려 즐기는 형태에 가깝고, 무엇보다 아르헨티나 탱고쪽이 더 관능적이고 끈적한 부분이 있다.

하나의 심장 네 개의 다리로 추는 춤이라든가, 그 어떤 춤보다도 파트너와 가깝게 안고 추는 춤이라든가, 하는 수식어에 이끌려 이 춤을 배우다 보면, 어느새 자괴감과 좌절감에 다 때려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춤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실제로 그랬다. 하루에 몇 번이고 때려칠까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밀롱가(파티를 이르는 말)에서 딱 한번이라도 정말 만족스러운 춤을 추고 나면 그 충만함에 세상사 모든 시름을 다 잊고 다시 춤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물론 다음날 다시 내 몸뚱이가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왜 서고 걷고 안고 비트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 동작이 되지 않는가 라는 절망에 휘감기지만 말이다.

나의 탱고 선생님은 늘 말씀하시기를, 탱고라는 춤은 속된 말로 ‘춤의 무덤’ 이라고까지 불린다고 한다. 이 춤 저 춤, 젊었을 때는 스윙이나 살사, 요즘에는 바차타에 키좀바에 주크까지 벼라별 끈적하고 힙하고 격렬한 사교 댄스들을 찾아 배우지만, 나이가 들어서 클럽에서도 점차로 밀려나고(사교댄스의 특성상 파트너와 같이 추기 때문에 춤을 아무리 잘 추더라도 위생이나 외모 혹은 매너같은 부분에서 마이너스라면 배척당하거나 밀려나기가 쉽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어쩔 수가 없는 부분 중 하나이다. 춤을 조금 못 추더라도 젊고 싱싱한 20, 30대의 남녀가 동호회에서 선호되고, 춤을 잘추더라도 나이대가 40을 넘어가면 가입이나 활동이 금지되는 동호회가 많은 것도 현실이다.), 격렬한 춤동작들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신체가 되면 그저 헌신적으로 안고 정성스럽게 같이 걷는 춤인 탱고로 모여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탱고판에 20대 초반을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내 나이가 서른하나지만 내 또래를 만나기도 어렵다. 동호회를 찾아왔던 젊은 남녀들도 어느덧 몇 달이 지나면 나오지 않고 다시 원래 추던 살사나 스윙 쪽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탱고는 늙어서 추기 좋은 춤인 것은 맞지만, 늙어서 시작하기엔 엄청난 무리가 따르는 춤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몸이 자기 맘대로 움직일 나이인 30대나 40대에 시작하는 게 좋고(20대나 10대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때에 시작해서 적어도 10년이나 20년 경력이 쌓여야 늙어서 대접받는 거지 다 늙어서 시작하려면 절대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탱고의 장점 중 하나라면 늙어서 하기 좋다는 것도 있지만, 다른 춤에 비해서 나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도 있다. 실력만 있다면, 그리고 거기에 상응하는 매너와 자기 관리가 있다면 나이가 80이더라도 밀롱가에서 꼬라존(스페인어로 심장) 가득한 춤을 출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르헨티나에 다녀온 선생님들 중에는 휠체어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밀롱가에 온 어느 90대 노신사분과 정말 만족스러운 춤을 췄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분들도 있었다.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지만 결국에 탱고를 추는 것은, 밀롱가가 열리는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시간대에 가서 그곳을 찾은 많은 땅게로, 땅게라들과 춤을 추려는 것이 목적이다. 춤과 음악의 장르, 그리고 애티튜드와 문화만 바꾼다면 홍대나 강남의 EDM 클럽을 찾는 것과 본질적으로 아예 다르지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클럽문화라는 점에서는 같은 것들을 공유하는 게 많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DJ 의 존재다.

탱고에도 DJ 가 존재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탱고는 탱고라는 특정 장르의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문화이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탱고의 곡들을 틀 DJ가 필요하다. 나는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이런저런 수업을 재미삼아 많이 듣는 편이었고, 우리 동호회에서 시작하는 DJ 연구반이라는 소모임에 들어가서 기초적인 공부를 하고 실습을 했다.

그러면서 배운 것들이 많았다. 밀롱가에서 틀게 되는 음악들은 지금 활동하는 밴드들의 음악을 트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보통은 20년대와 30년대, 탱고의 황금기라 불리는 시기에 활약했던 전설적 밴드들의 음원들을 트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 대목이 흥미로웠는데, 그런 연유로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탱고’ 하면 떠올리는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나 한국의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씨의 음악같은 건 밀롱가에서 틀기엔 무리가 많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지금의 음악가들은 콘서트장에서 객석에 앉은 사람들이 듣기 좋은 음악으로서 발전한 경우기 때문에 실제 밀롱가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기에는 굉장히 힘들고, 오히려 2, 30년대의 밴드들이 실제 밀롱가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는 것에 반주를 맞춰 활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DJ 공부를 하면서 피아졸라나 고상지씨의 음악을 더 들어볼 기회가 있을까 생각했던 나로서는 완전히 반대로 아주 옛날의 밴드들의 음악을 더 많이 듣는 경우가 많았다.

한 딴따는 몇 곡으로 구성되고, 한 개의 딴따를 짤 때는 어떻게 짜야하며, 어떻게 하면 안되는지, 딴따와 딴따 사이를 구분짓는 꼬르띠나는 어떻게 틀고 어느정도에 끊어야 하며 등등… 사실 DJ가 거의 공연 내내 즉흥적으로 곡을 믹싱하거나 편곡하는 수준에 이르는 전자음악 수준의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정성들여 밴드와 악단 마에스트로를 구분하고 음악의 스타일과 템포를 분류해서 사람들이 즐길수 있게 틀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이것을 강조했다.

‘결국 DJ의 최종적인 목적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오래, 그리고 만족스럽게 춤추게 하는 겁니다.‘

어째서인지 난 그 말이 참 좋았다. 뭔가 벤담의 공리주의적인 철학이 듬뿍 묻어있기 때문이었을까. 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추구라는 공리주의 철학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 DJ는 공리주의 철학의 실천자였어! 난 DJ 를 평생 업으로 삼거나 진지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탱고를 추는 사람으로서 DJ 를 조금은 공부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한번은 실습으로 왕초급(배운지 한달내지 석달 이내) 수준의 초보 동호회원들이 참가하는 밀롱가에서 DJ를 해본적이 있었다. 불과 10딴따를 짜는데도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고 음악을 듣다 듣다 나중에는 제대로 다 들을 새도 없이 엉터리로 딴따를 짜는 등 너무나도 혼돈의 카오스였다. 그래도 다행이었던건 밀롱가에 오는 사람들이 탱고 음악을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하는 수준의 정말 ‘왕초급’ 들이었던 것이었다. 원래는 중복으로 같은 음악을 틀거나, 같은 악단의 음악이 반복되거나, 보컬이 들어간 곡과 연주만 나오는 곡을 같은 딴따로 묶으면 안되는 일종의 불문율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솔직히 엉망이었다. 딴따는 10딴따 밖에 짜지 못해서 2시간이 안됐는데도 준비한 곡들은 다 떨어졌고, 이래저래 섞으면 안된다는 곡들은 나도 모르는 새 섞여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어차피 초급들이라 몰라요’ 하면서 태연하게 내가 준비한 곡들을 다시 처음부터 틀게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즐거워했으니, 나름의 묘한 즐거움과 충족감을 느꼈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이번달 말에 디제잉 준비해줄 수 있어요?’ 라는 말에 ‘아, 이번에도 초급 밀롱가구나’ 하고 가볍게 승낙했던 게 문제였다. 정확히 3일 있다 생각해보니 이번 달 말? 가만, 월말 파티잖아…?

나름 동호회에서 한달에 한 번 하는 월말 파티라 초급을 넘어선 모든 동호회원들이 모이는 파티인데, DJ 라고는 엉망으로 한번 해본게 다인 내가 디제잉이라니. 그날부터 정말 밥이 넘어가지를 않았다. 대체 멀쩡히 활동 잘 하시는 다른 디제이 분들 냅두고 왜 나를 지목하셨는지가 의문이었지만, 일단 하기로 한 거 무를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밤을 새서 음악을 듣고, 딴따를 짜고, 공연이 있는 팀에게서는 공연 곡까지 받고…

정말 진지하게 하다보니 파티 당일날이 되었을 때는 긴장감에 입맛이 싹 떨어질 지경이었다. 밥은 들어가지도 않고 커피만 계속 먹다보니 손발이 덜덜 떨리다못해 손 끝에 핏기가 가셔서 얼음장처럼 차가울 지경에, 하나둘 즐겁게 파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정말… DJ 라는게 보통 멘탈이나 준비성으로는 하지도 못하는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긴장 속에 첫 음악을 틀고, 원래는 준비해놓은 음악들이 자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딴따 중간중간에는 여유롭게 춤을 춰도 되고 밥을 먹어도 되지만, 초보 DJ 인 나는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계속해서 플로어를 주시하고, 사람들이 뭔가 흥미없어하면 딴따의 순서를 바꾸거나 하는 식으로 신경을 계속 곤두세우고 있었다. 다행히 별다른 실수는 없었고, 사람들은 어느새 밝은 표정으로 음악과 춤을 즐기고 있었다. 분명 내가 짠 딴따에 실수가 없을리는 없었건만,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고 나의 첫 디제잉을 응원해주듯 춤을 추었다. 사실 그 모습이 더 감동적이었다. 공연도 어찌저찌 잘 끝나고, 사람들이 내가 디제잉을 한다니 며칠전부터 하나둘씩 신청했던 신청곡들도 틀다보니 긴장도 풀리고, 나중에는 디제잉을 하는 중간중간 춤도 추는 여유가 생겼다.

최선을 다해 사람들이 오래오래 즐겁게 춤을 추도록 준비를 했고, 사람들이 그만큼 응원하고 호응을 해주니, 나로서는 더할나위가 없는 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긴장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는 않다. 다시 한다면 지금만큼 긴장하거나 고생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쨌건 꽤나 부담되는 건 사실이니까.

사교 댄스를 배우면서 처음 배우게 된 것들이 많았다. 사람의 외모에는 매너도 포함된다는 사실. 여자들이 준비하는 반만큼만 옷차림에 신경을 써도 매너있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 여름에는 땀냄새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 춤을 출 때도 서로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디제잉을 하면서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공리주의자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삶인지를 깨달았다. 더불어서 그런 순간을 사는 것이 얼마나 보람된 것인지도. 많은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엮이고,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며 원만히 잘 지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면서도 보람찬 일이었다.

자주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탱고를 향유하는 동안 아주 강렬한 꼬라존을 느끼게 되는 그 순간, 더 바랄 게 없는 만족스러운 충족감을 느낀다. 매일매일, 탱고를 추기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60이 되었을때 나의 춤은 어떨지, 나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