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세계는 참 심오하다. 최근 미국에서 물 건너온 필*커피의 원두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커피를 마시는 기준이 별다방에만 묶여 있던 나는 페이스북의 저크버그가 최애한다는 필*커피의 향을 맡고서 제대로 꽂혀 버렸다. 내게 커피란 단순히 기능성 식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커피가 덮어버리는 피로감 제거를 위해서 커피를 마셨지, 딱히 커피의 맛과 향은 차후의 문제였다. 다만 커피의 신맛에만 유독 까다로운 지라, 신맛이 강한 타 브랜드 커피보단 별다방 커피만 마셔 왔다.

하지만 선물받은 원두 덕분에 나와 와이프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집에 에스프레소 머신을 두었고, 온갖 드립용품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더치를 뽑는 용품까지 구매했으니, 이건 그야말로 커피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꼴이라고나 할까. 팔자에도 없던 바리스타 공부를 하다보니, 커피는 참 까다로웠다.

아내는 내가 집에서 요리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는 만들어진 요리는 좋아하지만, 요리를 하면서 난장판이 되는 주방을 보기 싫어한다. 나의 요리 프로세스는 거의 호텔급 주방을 방불케 한다. 아내가 붙여준 별명은 방구석 고든램지다.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치고는, 꽤나 번잡스럽고 까다롭게 군다. 대충 대충 손맛으로 만드는 요리가 아니라 나만의 레시피, 나만의 계량, 나만의 타이밍을 철저하게 지키려는 편이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면서 그냥 대충 만들고 맛만 내면 되지 뭘 그렇게 번거롭게 하나하나 따지고 드냐고 타박할 때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요리를 만든 후의 뒷정리는 아내의 몫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만 한 말이긴 하다.

내가 이렇게 깐깐하게 요리를 만드는 이유는 최상의 것을 맛보여주기 위함이다. 물론 요리에 대한 선택적 결벽증이 작용한 요소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안엔 아내에 대한 사랑이 밑바탕으로 깔려 있을 것이다. 아내가 잔소리를 할 땐, 간혹 섭섭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주방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은 내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기도 한다. 또 아내가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볼때면 그런 잔소리마저도 사랑스러울 때가 있다.

한때는 커피를 두고 까다롭게 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커피를 드립해 먹는다는 친구를 두고, 그냥 대충 먹으면 되지 왠 사서 고생이냐고 비꼰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를 우습게 보았던 것 같고, 이른바 커피를 필두로한 허세병에 걸린 허영심이라고 치부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 미안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 글에서 공개적으로나마 사과하고 싶을 따름이다.

내가 스포이드 단위로 요리를 해댈 때, 그 친구도 아마 물방울 단위로 드립을 내렸을 것이다. 내가 팬 위에 고기를 놓을 타이밍을 재고 있을 때, 그 친구 또한 91도-93도 되는 물의 온도를 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커피를 배우면서 느낀 것은 요리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요리보다도 더 그 프로세스가 더욱 정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리는 여러가지 재료들이 복합적인 맛을 내기에, 어떤 재료 하나가 다른 재료를 커버할 수도 있다. 아주 아주 극강의 혀를 가진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맛이 ‘빵꾸’ 난 부분을 알아 차리기 힘들다.

하지만 커피는 단 하나의 재료만 가지고 만들어 낸다. 재료는 오직 원두 하나다. 원두의 분쇄크기에 따라, 물 온도에 따라, 탬핑의 압력에 따라, 기타 등등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러니까 바로 티가 날만큼 느껴진다. 늘 남이 만들어 먹던 커피만 마시던 내가 직접 만들어 먹어보니 하나하나 아쉬운 것들 천지다.

타인의 취미를 우습게 알던 나를 반성한다. 그에게는 커피가 취미 이상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존심’ 이었을 수도 있겠다. 내게 개판 친 주방보다 완성된 요리를 보는 것이 낙이라면, 커피성애자들에겐 나노 단위의 까탈스러움 보다 한 잔의 완벽한 맛이 낙일 게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커피를 만들어 먹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취미생활을 조금 더 완벽해지려 애쓰는 사람들을 존경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