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칼럼-장재영] 실패한 고백

 

부제:친구의 실패한 프러포즈와 뭔가 그럴듯한 새해 계획 사이 상관 관계

 

2002년 해맞이 때였나? 그 언저리 벌써 15~6년은 지난 과거지만 당시 상황은 꽤나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 시작 전에 친구S에게 사과를 먼저 건넨다.

이야기는 이렇다.

당시 해맞이 멤버는 나와 여자친구, 친구 커플, 그리고 바로 문제의 그 녀석S, 장소는 해운대 백사장
S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에 말도 못하고 몇 달을 속만 끓였다. 나를 포함한 친구 몇 명은 S옆에서 적극펌프질을 해댔다. 순전히 재미로 말이다. 어릴 적 사내놈 친구라는 것들은 원래가 이렇게 위험한 존재다.

그저 자기재미 있자고 장난이나 치려 끼어든 친구 놈들이 무슨 건설적이고 쓸모 있는 아이디어가 나오겠나? 그나마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때가 때이니만큼 해운대 새해맞이 고백 이벤트 였다.
심지어 트렁크에 풍선 가득 채워 날리며 반지와 꽃다발을 건넨다는 계획! 예나 지금이나 드라마는 특히 남자들에게 유해하다.

디데이 하루 전. 여느 때 같으면 벌써 술에 절어 해장국 한 사발씩 앞에 놓고 TV로 해맞이 했을 화상들이 맨 정신에 부지런도 했다. 차(그렌X)도 렌트하고 풍선에 가스 넣고, 꽃다발도 한아름 준비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참 적극적으로 말이다.

대망의 디데이

때가 때인지라 서두르지 않으면 자리도 없다며 새벽 두 시부터 해운대 한 켠 목 좋아 보이는 곳에서 자리잡고 대기했다. 칼바람부는 해변에서 연료는 남겨둬야 한다며 히터도 틀지 않은 채로. 그렇게 오들오들 살 떨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 오지랖 부릴 때의 재미와 기대는 날카로운 바다 바람과 함께 날아가고 그저 어디 따뜻한 곳에 들어가 뜨끈한 국물에 소주나 한 잔 하고픈 마음이 커졌다. 관심이라고는 1도없는 남자친구의 친구의 연애 사에 억지로 끌려나 온 내 여자친구는 슬슬 대놓고 신경질 부리기 시작했다. 실은 나도 벌써 실증이 나 버렸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루함과 짜증이 범벅 된 초조함은 더해갔다. 올 때가 지났는데 올 사람은 오지 않았다. 결국 사방이 훤 해질 때까지 차에 시동 한번 못 걸어 봤다. S의 그녀는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 답장도 없었다. 약속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기약 없는 기다림은 이어졌지만, 그녀는 S의 인연이 아니었다 보다.
우리는 S에게 ‘할 만큼 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거겠지~’ 하고 대충 위로를 건냈다. 어쨌든 차는 반납해야 하니 트렁크에 풍선을 날려 보내는데 내여친과 친구의 여친은 눈치없이 꺅꺅 거리며 연신 환호를 질렀다. 무심하게 날아가는 풍선을 바라보는 S의 눈동자는 그저 멍했다. 눈부신 일출 앞에 역광 맞은 녀석의 실루엣이 어찌나 진하게 다가오던지. 그제서야 나도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술 먹고 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그녀는 그 일에 대해 서로 그럴 사이도 아닌데 내가 왜 S와 일출을 봐야 하느냐 되물으며 말 그대로 무심하게 말했다.

S를 그저 나 재미있자고 부추긴 나와 친구들은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책임은 오롯이 S의 몫이었다. 관계는 쌓아가야 하는 것인데 대화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한 평소의 노력도 없이 뭔가 그럴듯한 이벤트 한 방에 해결될 거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정말 좋아했다면 굴하지 않고 꾸준하게 들이대는 것이 당연했겠지만 말했듯 S는 소심했다.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

1. 각자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것.
2. 내가 생각한 데로 될 거란 생각은 버릴 것.
3.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행동으로 보여 줄 것.
4.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는 듣지 말 것.
*특히, 듣고 싶은 이야기를 쏙쏙 해 주는 사람은 경계할 것.
5. 현실과 몽상의 차이를 반드시 인지 할 것
6. 마지막으로 꾸준히 노력할 것.

S의 꽃다발은 그녀 대신 쓰레기통이 받았고 반지는 환불 했다.
그저 새해라서 세운 준비 없는 계획이나 목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