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음식(소울푸드)의 역습

식구(食口)라는 말은 가족이라는 말보다 왠지 더 정겹다. 그러고 보면, 가족이라는 집단적 개념을 일컫는 단어를 둘 이상 사용하는 나라도 드물다. 동아시아인 중국문화권을 제외한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는 ‘식구’ 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한다. 예전에는 식솔(食率)이라는 표현도 종종 썼으나, 상하개념이나 가부장적 위계인식이 들어간 용어라 요즘은 자주 보이지 않는 듯 하다.

노예나 하인을 가리키던 ‘Familia’ 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서양문화권의 가족과는 식구의 그  어원이 사뭇 다른 것이 사실이다. 한자어를 보면 알 수 있 듯, ‘밥 식’ 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먹는 것을 공유하는, 함께 먹는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가족문화에서는 ‘먹는 행위’ 가 가족 혹은 더 나아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만큼 지역명과 음식을 짝짓는 문화가 성행하는 곳도 없다. 이천쌀, 제주감귤처럼 특산품(음식의 원재료)과 지역명을 연결시키는 현상은 보르도 포도, 캘리포니아 오렌지처럼 해외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대구 막창, 춘천 닭갈비처럼 지역명과 음식 그 자체를 페어링하는 현상은 해외사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보통 요리라고 하면, 어느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닌 그 나라 자체의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춘천 닭갈비도 바다를 건너면 ‘한식’ 이라는 카테고리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자국민들 사이에서 어떤 음식을 놓고 어디가 원조인지, 어느 지역이 어떤 음식을 잘하는 지를 따지는 것은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집중되는 현상이다. 미국 사람들은 버거나 핫도그를 놓고 L.A버거 혹은 뉴욕버거를 특성화 시키지 않는다. 물론 L.A 스타일의 버거, 뉴욕 스타일의 버거는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유럽 제국의 와해와 소련의 붕괴로 국가의 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이른바 민족요리, 국민요리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한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요리가 그 나라에 대한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 추상적인 어느 한 국가의 제도나 국가형성 이론보다는 다른 나라들과의 차별성을 만들어주는 거대한 유리벽이 바로 음식이었다.

때론 그 음식을 놓고 그 민족, 그 국가를 폄하하기도 했다. ‘애플파이처럼 미국적’ 이라는 말이라든지, 독일인들보고는 ‘크라우트’라고 부른다던지, 멕시코인들에게는 ‘콩 먹는 치들’ 이라는 표현처럼 말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김치’ 를 활용한 우리 스스로의 폄하표현도 있다.

어쨌든 그만큼 요리는 국가의 정체성을 만들어주고,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거나 여행객들을 끌어들여 외환을 획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리 역사에서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영토, 하나의 국민과 하나의 국민 요리를 등식으로 놓는 것 만큼 아이러니한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요리는 모든 국민에게 ‘친숙한 음식’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요즘 말로 소울푸드 개념인 것이다. 모든 국민이 자주 먹고, 지역적으로 조금씩 다르지만 전국에서 골고루 맛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국민 요리인 것이다. 그래서 국민 요리는 오랫동안 지속된 역사를 내포하고 있고, 국민성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울푸드는 대개 50년 혹은 6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지닌 음식이다. 또한 위계적인 서열에 의해 먹게 되는 요리, 즉 개인이 어떤 요리를 먹느냐는 어느 국가태생이냐가 아닌 어떤 신분이냐에 따라 결정되는, 그런 요리가 대부분이었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의 경우, 고급 요리를 로컬화 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파리 부르주아들에게 프라스 시골은 외국이나 다름 없었다. 그만큼이나 낯선 장소였고, 프랑스 인구의 50% 정도가 다른 지역 언어를 쓰며 살았다. 프랑스의 자동차 소유 수가 1920년대 말부터 급격히 상숭하면서 도시민들의 여객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고급 요리들이 지방 곳곳에 침투한다. 이때 나온 것이 바로 미슐랭이라는 타이어 회사가 만든 지역 음식을 소개하는 홍보용 잡지 ‘미슐랭 가이드’ 였다.

인도는 1947년 독립 이후 아예 어떤 음식이 국민 요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대적인 논의도 했다. 간디 또한 앞서서 ‘공통된 전국적인 음식이 인도 국민의 행복과 정치적 통일을 위해 필요하다’ 며 거듭 말했다. 힌두교 지도자였던 이들조차도 ‘음식이 카스트 제도의 해체를 불러온다 해도 국가적 음식이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확신할 것이다’ 며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인도에서 커져가는 도시 중산층은 카스트 제도의 엄격한 규범들을 버리기 시작했고 타 지역의 음식들을 실험하고 형편에 맞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거나 포장 음식을 사가기도 했다. 이때 대표적인 음식이 오늘날 파키스탄 펀자브 지방의 피난민들이 화덕에서 굽던 탄두리 치킨과 케밥이었다. 1960년대가 되자, 인도에서는 외식과 펀자브 요리는 같은 의미였다.

1940년대 태국에서는 값싼 야채와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팟타이가 인기를 끌었고, 그 요리법이 체계화 되었다. 이 때 태국 총리 또한 음식을 개선하는 동시에 태국적인 것을 창조하고자 국력을 모을때였다. 팟타이에는 중국 면이 쓰이고, 식재료를 기름에 튀기는 조리법 역시 중국식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인들은 이 음식을 가장 대표적인 태국의 국민 요리로 인식하고 있다.

이주민들이 운영하는 ‘민족적’ 식당이 종종 국민 음식으로 명성을 날릴 때도 있었다. 20세기 초 세계 인구의 2%는 이주민들이었다. 이탈리아 이주민들은 서양의 여러 도시에 식당을 차렸다. 중국 화교들 역시 ‘민족적’ 식당의 대표적인 사례다. 주로 가족기업 형태의 이런 식당은 이국적인 실내 장식과 지역 입맛에 맞춘 다양한 메뉴를 뽐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중국집의 모태가 되는 청요리집이 들어온 것도 바로 20세기 초 이 무렵쯤이었다.

식민지의 음식들이 식민지를 지배했던 열강의 국민 요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영국의커리 앤 치킨 티카 마살라가 대표적이다. 앞서 말한 영국이 지배했던 인도의 향신료 음식이었다. 정작 그 무렵 인도는 펀자브 지방의 요리가 소울푸드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알제리의 쿠스쿠스가 전형적인 부요리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세계적인 추세와 그 경향을 같이 한다. 사실 조선의 국민음식은 사대부의 음식과는 그 차원이 달랐다. 조선 역시도 위계적 서열에 의한 요리가 성행했던 시절이었다. 삼시세끼 그저 밥과 나물 정도면 족했던 평민들에게는 ‘요리’라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조선음식의 맥은 여지없이 끊어졌다. 왕실의 비기와 사대부의 음식 또한 많이 소실되었다. 그나마 개화시기와 일제강점기를 동안 들어온 중국 화교들의 청요리와 선교사들이 전해준 일부 음식들 정도가 다였다. 해방 이후, 미국의 밀가루와 옥수수 원조로 근근히 세끼를 떼우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여전히 국민음식, 소울푸드는 사치였다. 한국전쟁때는 대량의 피난민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북쪽에서 내려온 인구가 남한에 정착한다. 이때 그들이 정착한 곳에서는 조금씩 이북음식을 내다 팔았다.

조금 먹고 살만해지고 식탁이 풍성해지는 시점이 바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산업화가 지속되던 시기다. 밥상 위에 이따금씩 계란이 올라오고, 생선이라도 한 마리 올라오던 시절이었다. 그러면서 음식이 발전되고 교류하면서 전국적으로 흩어지게 된 시점이 자동차 증가 현상으로 나타난다.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잡은 1980년대, 박정희 정권의 장기간 산업화 전략으로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기를 누린다. 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울 1981년 5월, 전두환 정권이 전략적으로 ‘국풍81’이라는 대규모 예술제를 개최할만큼 국민들은 소비산업에 열광할 시기였다. 그리고 이때, 이 국풍81을 통해 ‘나주 곰탕’ 이 소개되고 그 외에도 많은 지역 음식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84년, 대구-광주를 잇는 ‘88올림픽고속도로’ 를 개통하면서 프랑스처럼 전라도 음식과 경상도 음식이 직접적으로 서로 교류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물론 대부분의 음식들은 이미 서울에서 다 소개가 되었지만, 그만큼 차량의 증가와 도로교통의 발전으로 음식문화도 함께 교류했다는 말이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에 들어서는 세계화의 바람이 불고, 남북간의 대화가 물꼬를 텄다. 맥도날드가 들어오고 피자헛이 들어왔으며,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IMF가 터지기 직전까지 국민들은 먹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때 각 지역마다의 이름을 붙인 음식들이 급격히 늘어난다. 2018년에 들어선 우리가 보았을 때 소울푸드라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근 50년도 채 안돼 형성된 것이다.

국민음식, 소울푸드는 사실 우리가 만들어 낸 허상에 가깝다. 김치찌개가 아무리 소울푸드라고 한들 역사를 들여다보면 돼지고기 혹은 참치가 들어간 현대식 김치찌개다. 된장찌개 역시 마찬가지다. 정말 조선의 백성들이 먹던 된장은 아마 찌개보다 소금물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역사와 전통성을 무시할 순 없겠으나 완성된 요리만 놓고 보았을 땐 완벽하게 다른 음식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다.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그러니 여행에서 만난 음식을 놓고 너무 앞서 나가지 말자. 그리고 역사와 전통성에 취해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다. 음식은 오로지 ‘맛’으로만 평가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