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한 끼의 풍요로움

특별할 것 없는 설 연휴의 소중함

별 특별할 것 없는 설 연휴가 끝나간다. 사실 우리나라의 명절 특성 상, ‘별 특별할 것 없는’이란 표현이 가장 특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설이나 추석만 되면 국가적으로는 교통대란이, 가족적으로는 친척대첩이 벌어지니까. 간만에 만난 친척들 사이엔 뭐 그리 서운하고 억울한 일들이 많은지. 거기다 ‘간만에 다 같이 모였으니까…’하면서 술까지 거나하게 드시고 나면, 꼭 볼썽사나운 꼴을 보게 되기도 한다. 맞다, 그건 내 어릴 적의 명절 풍경이기도 했다. 세뱃돈, 맛있는 음식, 또래 친척들과의 놀이 같은 즐거운 기억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사소한 즐거움 따위 어른들이 소리 지르고 싸우기 시작하면 금방 날아가 버리곤 했으니까.

어른들끼리는 서운한 일이겠지만, 어쨌든 우리 가족은 수년 전부터 친가의 큰아버지 댁에 가서 ‘특별한 명절’을 보내지 않는다. 부모님께서 친가 쪽 어른들과 따로 연락 주고받으시고,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찾아뵙기는 하지만 직접적인 왕래는 하지 않은 지 오래다. 대신 외가와는 관계가 돈독하다. 7남매 중 맏이인 엄마 덕에 이모나 외삼촌들과도 교류가 많았고, 지금은 홀로 계신 외할아버지를 우리 부모님이 모시고 지내기도 해서 명절이면 어디 갈 필요 없이 우리 집에 외가 친척들이 모두 모인다. 모여서 음식 솜씨 좋은 엄마의 요리, 내가 튀긴 튀김과 외삼촌이 부친 각종 전을 나눠 먹고,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시고, 다 같이 점 100원 짜리 고스톱을 친다. 어린 사촌 동생들은 저들끼리 신나게 뛰어논다. 그러니까 적어도 제사 음식을 누가 무엇을 할 건지, 음식을 못하면 돈은 얼마나 보탤 건지를 두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남자들은 저들끼리 앉아 시답잖은 얘길 하는 동안 여자들만 등골이 휘는, 그런 명절을 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런 명절이 너무 소중하고 좋다.

친정 엄마

아주 개인적으로는, 주로 음식점이나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다가 간만에 아주 든든한 ‘집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명절이기도 하다. 우리 엄마는 ‘음식이란 자고로 남는 건 나중에 또 먹으면 되지만, 부족한 건 용납할 수 없다.’주의여서 평소에도 푸짐한 밥상을 차리시지만, 명절 땐 그 종류까지 더 다양해진다. 이번 설에는 본가에서 각종 전과 튀김, 칠리 새우, 문어숙회, 돼지고기 김치찜, 떡국, 그리고 6가지 정도의 밑반찬으로 식사를 했다. 사실 쌀밥 따위 없어도 될 만큼 호화로운 식단이 아닐 수 없다. ‘메인 디시’라고 부를 만한 것만 3,4가지는 됐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편안한 설을 본가에서 보내고, 오늘(17일)은 부산의 내 방에서 아침을 맞았다. 간만에 늦잠도 자고(원래도 출근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게으름을 잔뜩 피웠다. 점심 때 여자 친구를 만나 뭘 먹을까, 남천동 일대를 걷다가 발견한 돌솥밥 정식 집. 그 이름하여 ‘친정 엄마’였다. 때마침 여자 친구는 돌솥밥이 먹고 싶었고, 나는 아직 집밥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 바로 가게로 들어갔다. 설 연휴라 한산한 식당에 자리 잡고 앉아 돌솥밥 정식과 소불고기뚝배기를 주문하고, TV에서 한창 방송 중인 피겨스케이팅 남자 프리 종목을 보고 있었다.

정식이란 바로 이런 것.

곧 하나씩, 하나씩 접시가 나오기 시작했다. 에피타이저로 나온 건 새콤한 드레싱에 버무려진 샐러드와 잡채, 그리고 ‘윤식당 2’에서 팔 것 같은 김치전. 전반적으로 간이 삼삼하고 조미료 맛이 거의 없어서 좋았다. 다만 그 3접시를 다 먹고 나서 본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려서 한껏 돋운 입맛이 허기를 부추겼다. 기다림 끝에 정체를 드러낸 정식의 메뉴는 무려 13접시의 반찬과 2개의 뚝배기였다. 배추 겉절이, 총각김치, 어묵 볶음, 간장 게장, 유자 단호박찜, 무절임, 오징어 젓갈, 가자미 구이, 쌈(다시마, 양배추, 봄동), 3색 나물, 감자 조림, 우엉 볶음, 연근 볶음, 시래기 된장찌개, 김치찌개. 에피타이저 3접시를 포함하면 1인 정식에 16접시의 반찬이 나온 셈이다. 거기다 밥은 밤과 콩이 올라간 돌솥밥…! 소불고기뚝배기를 주문한 나는 여자 친구 덕분에 정식의 모든 메뉴를 맛보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 가게에 들어와서 정식 가격이 1만원인 것을 보고 조금 비싸다고 생각했었다. 주변 음식점 시세를 볼 때, 한 8,000원 정도를 예상했기도 했고 또 정식이라는 게 반찬 가짓수에 비해 허울뿐인 반찬이 많으니까. 더군다나 나처럼 입이 짧은(날 것을 일체 먹지 못하고, 해산물 대부분을 먹지 않는다.)사람에겐 더더욱 정식의 밑반찬들이 무용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 곳 ‘친정 엄마’의 정식은 좀 달랐다. 일단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반찬이 없었고(예를 들면 삶은 메추리알이라든가.) 하나같이 삼삼한 간이 좋았으며(심지어 그 흔한 김치도 깊은 맛이 있었다.) 플레이팅도 신경 쓴 티가 났다. 혹시 가게 이름이 ‘친정 엄마’가 아니라 ‘시어머니’였으면 맛이 좀 덜했을까. 뭐 어쩔 수 없이 아들로 태어난 나에겐 그리 큰 영향은 없었을 것 같다.

아무튼, 하나같이 맛있고 정갈했다. 반찬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밥을 아껴 먹을 정도로. 밥을 퍼낸 돌솥에 미리 부어둔 숭늉으로 입가심 할 때의 그 개운함이란. 마지막으로 나온 식혜마저도 달착지근하고 맛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라던데, 의심이 클 때 들이닥친 감동이 더 컸다. 밥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등 뒤에선 스페인 선수 페르난데스가 Mitch Leigh의 ‘The Man of La Mancha’의 음악에 맞춰 환상적인 무대를 이끌고 있었다. 그 음악이 내 만족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정식’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식후 아쉬움의 여부’가 정식을 결정한다.

평소 나는 일본식 음식점을 애용해왔다. 라멘을 어마어마하게 좋아하기도 하고, 덮밥(특히 규동)도 좋아했다. 일단 한 그릇에 깔끔하고 정갈하게 담겨 나오는 그 자태가 좋았고, 대체로 간이 좀 센 것이 내 입맛에 잘 맞아서였다. 주로 혼밥하는 내가 한상 거하게 차려놓고 먹는 것도 모양새가 웃긴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집 앞의 단골 가게는 내가 들어가면 자동으로 ‘규동, 계란은 익혀서’ 주문이 가능할 정도다. 그런데, 그렇게 라멘이나 덮밥을 먹을 때마다 음식의 맛은 만족하면서도 식사 후에 밀려드는 아쉬움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건 양이 적거나, 맛이 없어서는 아니었고 뭔가 허전한 느낌, 허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래서 자꾸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커피 같은 군것질거리를 찾아 먹었다.

그동안은 그 허기의 정체를 모른 채로 지냈는데, 오늘 ‘친정 엄마’에서 제대로 된 정식을 먹으면서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라멘이라든가 덮밥은 맛과 식감의 다양성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일본식 음식뿐만 아니라 국밥이나 비빔밥 등등의 한 그릇 음식이 모두 동일했다. 밥, 고기, 김치, 단무지, 고추 정도의 맛과 식감뿐인 음식들, 게다가 그걸 한데 섞어 한입에 씹고 맛보고 삼키는 음식들. 그런 음식들은 맛있고 정갈할 수는 있으나, 다양한 식감과 맛을 전달해주지는 못했다.

‘친정 엄마’에서 정식을 먹는 내내, 단 하나의 맛과 식감도 같지 않았다. 총각김치와 겉절이는 매콤새콤, 아삭아삭했다. 시래기 된장국의 시래기는 푹 익어서 국수처럼 흡입하고 수프처럼 부드럽게 씹혔다. 우엉 볶음과 연근 볶음은 말랑하면서도 꾸덕한 식감이 인상적이었고, 가자미 구이는 잘 구워진 껍질 덕에 쫀득쫀득했다. 평소의 내가 한 이틀은 먹어야 맛볼 수 있을 법한 다양한 식감과 맛을 한 끼에 모두 맛보는 동안, 나는 전혀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다. 당연히 식후에도 뭔가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 정식이란 이런 것이구나. 정식과 정식이 아닌 것의 차이는 ‘식후 아쉬움의 여부’에 달린 게 아닐까. 식사를 하고 나서 더 이상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정식을 먹은 거 아닐까. 식혜까지 마셨을 땐, 페르난데스의 무대는 끝이 나고 사람들의 박수 갈채소리가 들렸다. 내 속의 위장들도 그 비슷한 심정이었다. 페르난데스는 결국 동메달을 땄지만, ‘친정 엄마’의 정식에는 금메달을 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집밥’은 ‘정식’의 다른 이름

원래 쓰려고 구상해 둔 칼럼을 제쳐두고, 바로 이 글을 먼저 쓸 만큼 만족스러운 점심을, 아니 ‘정식’을 먹고 퍼뜩 든 생각은 사실 모든 ‘집밥’은 ‘정식’의 다른 이름이지 않을까, 하는 거였다. 가족의 밥상을 차려내는 그 누군가의 마음이 ‘간소함’이나 ‘정갈함’이기만 했을 리가 없으니까. 기왕이면 없는 살림이라도 김치에 고기 반찬 하나쯤은, 국이나 찌개 하나쯤은 꼭 올리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는 자식의 반찬 투정을 알면서도 나물이나 연근, 콩 같은 반찬들을 하나씩 끼워 넣고서 끼니때마다 그걸 먹여보려고 입씨름도 했을 것이다. 거한 한상은 아니어도 부족하지 않은 한상을 차려보려고, 거창한 삶은 아니어도 무너지지 않는 삶을 지탱하려고 밥 짓는 그 누군가는 골똘한 살림을 이끌었을 것이다.

나는 아들이라 ‘친정 엄마’라는 표현을 쓸 일은 없지만, ‘친정 엄마’라는 이름의 가게에서 돌솥밥 정식을 먹고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우리 엄마가 지어낸 그 푸짐한 집밥의 밥상을, 한 가정 살림의 축소판인 그 밥상을. 저 혼자 먹는 식사는 남은 밥에 남은 반찬에 남은 찌개로 대충 때우던 엄마가, 가족을 위한 식사는 그렇게도 정성들였던 그 이유를. 내가 오늘 점심에 먹었던 정식, 또는 수십 년간 먹어온 집밥의 그 풍요로움의 배면에는 반찬 가짓수만큼의 고민과 애정이 담겨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