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결심을 할 때

지금은 결심을 할 때

 

 

문제가 그 자체로 말끔히 풀리지 않는 것은 우연들 때문이다.

문제가 풀리는 것은 결심을 할 때다.

-메이브 빈치, <그 겨울의 일주일>

 

 

 이 구절이 근래 읽은 말 중 가장 와닿았다.

 문제가 풀리는 것은 해결방안이 찾아왔을 때도 아니고 운이 따를 때도 아니고 귀인을 만났을 때도 아니다.

 바로 ‘결심을 할 때’다.

 풀린 것처럼 보이지만 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문제들은 대게 우연들도 점철된 회피성 해결을 기본으로 한다.

 얼핏 개선된 것 같은데 막상 근원적인 부분은 그대로라 언제든 다시 문제로 이어지고 마는 어리석은 반복 말이다.

 반면 결심은 사람을 진짜 미래로 데려간다.

 지금 처한 문제를 타개할 진짜 방법을 생각하게 하고, 실천하게 한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확고한 ‘이렇게 하겠다’는 결심이 서면 그 결심을 이루기 위한 최적의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그 고민의 결과물은 제법 확실한 효과를 낸다.

 단순히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된다’, ‘노력이 최고’라는 느낌과는 다르다.

 마음만 먹는다는 건 사실 아무것도 노력의 방안을 고민하지 않는 행위다. 그저 바랄 뿐이다.

 허공을 도는 기도는 결코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결심을 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할 마음을 먹고 있기 때문에 막연하지 않은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그게 참 중요한 것 같다.

 결심이 어려운 건 대부분의 해결책이 일정의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결심을 미룰수록 고통의 크기는 커지는데,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두려움을 이기는 일이 쉽지 않다. 우리가 않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은 근원적으로 여기에 원인이 있다.

 두려움을 이길 준비가 되어 있는가? 결심에 따른 고통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 두가지에 예스를 외칠 수 있다면 사실상 나머지는 시간의 문제다.

 그래, 잘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는 얘기다.

 왜 ‘정답’은 언제나 이렇게 단순하고 명료해서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걸까.

 이걸 해내는 게 어려우니까 힘든 건데. 누가 몰라서 이러고 있냐, 하고 따지고 싶어지지만 결심이 만들어내는 파워를 모르지 않아 입을 다물게 된다.

 수렁같은 문제 속에 갇혀서 힘겨울 때도 결국은 결심만이 수렁의 깊이를 알게 하는 것을.

 강인한 마음으로 결심을 한다 해도 우리에게 항상 꽃 빛 미래만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결심의 성질은 ‘마주하는 용기’를 내포한다. 문제를 똑바로 보면 해결책이 보이기도 하지만 피하고 싶었던 진짜 고통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옳다는 이유로 반드시 결심을 해야만 하는 걸까?

 난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피하는 게 나을 때도 있다. 고통을 감내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분명하다.

 더 나은지 아닌지는 몰라도 어쨌든 문제가 풀리는 것은 결심을 했을 때라는 것. 그렇기에 저 구절이 와닿았던 것이다. 약 오르기도 하지만 말이다.

 지금 어느 때보다 결심이 필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저 말이 가시처럼 박힌 것인지도 모르겠다.

 건강하고 싶으면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공부 잘 하고 싶으면 예습 복습 철저히 하고 수업 잘 들으라는 말처럼 뻔하고 당연한 얘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니. 누군가 기 막힌 지름길이나 비기를 전수해주면 좋으련만.

 되지도 않는 생각에 헛웃음을 짓다 보면 또 그렇게 스며들듯 무심한 용기가 샘솟기도 한다.

 그럼 어디 잘 해볼까나. 우연들은 접어두고.

 지금이 바로, 결심을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