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텔게우스의 서한

베텔게우스의 서한

 

 요즘 과학자들이 밤낮으로 관측 하며 주목하고 있는 별이 있다.

 그야말로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서로 번갈아 가며 빈틈없이 이 별을 지켜 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구 여기저기에서 하나의 별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몽글해진다. 그런데 왜 우주의 저 수많은 별 중 하필 이 별일까?

 

 이 별의 이름은 바로 베텔게우스다.

 천문학에 관심이 없다면 다소 생소할지도 모르는 ‘베텔게우스’를 많은 이가 지켜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초신성 폭발 현상을 포착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베텔게우스는 명확한 붕괴 징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가까운 시일 내 폭발할 것은 틀림없지만,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예측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항시 관측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두가 밤하늘을 함께 바라보는 이 낭만적인 그림은 사실 베텔게우스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다.  

 

 수명을 다 한 별이 핵융합반응을 멈추면서 중력에 의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 현상을 초신성폭발이라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빛과 열이 뿜어져 나오기에 한동안은 낮에 마치 두 개의 태양이 떠있는 듯 보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어두워져 결국 베텔게우스가 빛나던 자리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어둠밖에 없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소식을 흥미롭게 접하게 된 데엔 이유가 있다. 본래 천체현상에 관심이 많기는 하지만, 그 전에 베텔게우스에 대해 알았던 것은 아니다. 초신성 폭발에 관한 뉴스도 우연히 과학기사에서 읽었을 뿐 ‘아 어느 먼 곳의 별이 사라지는 구나.’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천문학이란 워낙 넓고 먼 범위의 물질을 다루기 때문에 당연히 나와 관계없는 먼 일일 거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기억 뒤로 넘기고 살아가던 중, 어느 우연한 자리에서 베텔게우스의 이름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아주 낯설고 생소한 곳에서 중요한 약속이 생겼다. 일을 그르치면 앞으로 커리어가 위태로울 정도로 신중하고 긴장되는 자리였다. 예정된 시간을 기다리면서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주변을 기웃거리던 중 버려진 종이 더미에 별자리판이 있는 게 보였다.

 

 난 평소 별자리를 보며 귀가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겨울철인 요즘은 매일 밤 오리온자리를 보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서울은 빛공해가 심해서 별이 잘 보이는 도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리온 자리는 밝은 별로 이루어져 있는데다 모양이 구분하기 쉬워서 관측하기 쉬운 별자리였다. 지치고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터덜터덜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 보면 언제나 오리온 자리가 내가 걷는 방향에 떠올라 있는 게 좋았다. 길잡이처럼 안심이 되었다. 옛날 사람들이 별을 보며 위치를 짐작했다는 느낌을 알 것 같았다.

 별자리판을 본 것도 내가 좋아하는 오리온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리온자리의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의 이름이 바로 베텔게우스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얼마 전에 보고 그냥 잊었던 별에 관한 소식이 내가 좋아하는 별자리의 이야기였던 데다, 이제 곧 사라질 별이었던 것이다. 매일 내 밤을 비추던 별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 동시에 그것의 종말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틀림없이 터진다. 그건 정말 기묘한 느낌이었다.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면 버려진 별자리판을 보게 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별자리판을 보지 않았다면 이미 전에 읽었던 뉴스가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혀 모른채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오리온자리의 한 부분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을 터이다. 어, 어떻게 된거지. 별이 사라지다니. 하고.

 우연들은 때로 놀라운 연결성을 지닌다.

 

 오랜 세월 한 자리에서 뜨겁게 자신을 태우던 항성이 이제 그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여 죽기를 앞두고 있고, 나는 가늠할 수 없이 긴 세월을 살아온 별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내 삶은 베텔게우스에 비하면 찰나나 다름 없지만, 그래도 베텔게우스 보다 오래 남아 그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 본다. 게다가 베텔게우스와 지구의 거리가 640광년이니 내 눈에 보이는 시점에서 이미 640년 전에 별은 죽었던 셈이다. 이 이상한 시간의 섭리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현재로 하늘을 보고 있다.

 

 중요한 일정을 그럭저럭 마치고 다시 지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밤 하늘을 올려다보니 여전히 오리온자리가 빛나고 있었다. 그 중 베텔게우스가 가장 반짝거렸다.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이제 곧 사라진다니. 저 자리가 비어 버린다니. 그럼 오리온자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저 부분이 좋았는데. 울적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쉽게 설명하지 못할 느낌이 들었다. 매일 보던 모습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그날 이후 밤 하늘을 바라 보는 기분은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지금은 하루 하루가 모두 깊고 신비롭다. 늘 있어 줄 것이라 생각했던 어떤 아름다운 존재가 손 닿지도 못할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일을 맞이 하는 이런 기분이란.

 하루가 다르게 더 심하게 빛이 일렁이는 것으로 보아 초신성 폭발이 정말 머지않은 것 같다.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결국 터져버리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것까진 아직도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또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기분으로 하늘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어쨌든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내가 좋아했던 별자리의 모습은 곧 마지막이다. 당연했던 하늘이 변한다.

 

 정확히 언제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서로 반드시 이별한다. 이건 만고의 진리지만 늘 괴로운 일이다. 베텔게우스가 이 섭섭한 마지막에 몇가지 우연을 겹쳐 이별을 고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매일 밤 서로 지켜 봐서 좋았다고, 그런데 나는 이제 간다고, 너무 놀라거나 섭섭해하진 말라고. 지나치게 내 위주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한다고 누구한테 폐 끼치는 건 아니니 조금쯤은 멋대로 해석하고 싶다.

   

 그동안 빛나줘서 고맙고, 곧 인사하자. 안녕 베텔게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