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평창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던 지난 준비 기간에 비하면 사실 지금의 올림픽 진행상황은 정말 ‘성공’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선수들은 음식과 숙소에 만족하고 있고, 경기 진행은 잡음 없이 깔끔하고, 논란이 됐던 자원봉사자들의 처우와 군인들을 동원한 열악한 근무 여건은 늘 그렇듯 사후 약방문식으로 어떻게 수습이 되어가고 있다. (군인들의 경우에는 크게 주목을 못 받고 있어 개선의 여지조차 불투명하지만, 일단은 예외로 해 두자.)

나는 직업이 공연 예술인이기 때문에 역시나 관심을 가지고 봤던 것은 개회식이었다. 개회식 공연을 본 소감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잘 뽑혔다‘ 였다. 앞서도 말했지만 평창은 개최국 선정부터 개최하는 과정에 있어서 굉장한 혼란을 거쳐왔다. 일단 대통령도 한번 교체되었고(심지어 교체 자체도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이었다), 공연의 연출자는 그 대통령 교체의 과정에서 중요 참고인으로 구속이 되지를 않나… 사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연 개회식이 정상적으로 진행이 될수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그런 걱정에 비해서는 개회식 공연은 역시나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공연이었다. 그 어지러웠던 과정을 생각하면 이정도면 정말 없는 여건과 없는 예산에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잘 뽑아낸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건 없는 와중에 잘 뽑아낸 거지 사실 이 올림픽 개회식 공연이 한국 공연예술의 정수이자 정점이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아니오’ 라고 답할 수 있다. 총감독과 총연출을 맡은 송승환씨와 양정웅 연출의 실력을 의심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두 분 다 한국 공연 예술계에서 실력을 의심할수 없는 굉장히 뛰어난 예술인이다. 안타깝지만 시간과 예산이 가장 큰 문제였을 것이다. 아마 시간과 예산이 넉넉했다면 송승환 총감독에 양정웅 총연출이라는 조합은 더 좋은 공연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한편으로 솔직한 감상으로는 한국의 정체성이란게 과연 뭘까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 공연이었다.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던 것은 공식 마스코트보다는 역시 공연중에 나온 ‘인면조’, 그리고 숙소 앞 거대한 골무 같은 것을 뒤집어 쓴 나체의 남성상인 속칭 ‘모루겟소요’, 그리고 공연 중에 나온 드론 오륜기 였다. 막상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을 쭉 나열하면 한국이란 나라는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혼종’의 나라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중국적인 색채에, 지난 세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고구려’를 뜬금없이 주목해 컨셉으로 잡은 것도 조금은 붕 뜬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인면조’ 라는 상징이 과연,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것으로 공연에 나온 것으로 적절했는지는 의문이었다. 뜻이 긍정적이고 사람들이 열광한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의미를 띠기는 하겠지만, 한국 = 인면조, 라고 연결지을 수 있을것인지 모르겠다.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모루겟소요 역시 사실 인면조의 인기 요인과 같을 텐데 이것이 도대체 뭔지 정체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드론 오륜기도 아이디어와 컨셉은 좋았지만 과연? 드론 최강국은 명실공히 중국이고 한국은 드론 산업에서는 후발도 한참 후발주자인데다, IT로 한국이 끗발을 날렸던 것도 이미 10년전 옛날인 마당에(아직도 액티브X를 쓰는 나라에서 IT 강국이란 말은 조금 낯뜨겁지 않을까), 드론을 동시에 다중으로 조종하는 기술은 인텔의 드론 슈팅스타를 통해서 가능했다. 이 와중 무엇을 한국과 연결지을 수 있을까? KT는 5G 기술이 이런 다중 조종을 가능하게 했다고 하지만 과연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것도 순진한 일이다.

이렇듯 올림픽의 한가운데에서 보았던 것은 한국이란 정말 딱히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뒤죽박죽의 혼종이란 것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비빔밥 같은 것이랄까. 이게 썩 나쁘다고 볼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게만 보고 안심해도 되는 걸까.

얼마 전 중국 관련 뉴스를 보다가 재밌는 말을 발견했다. 바로 ‘독각수 각축전’ 이다. 중국의 경제계에서 핫한 키워드로 떠오른 말인데, 바로 실리콘 밸리의 유니콘 기업의 중국식 표현이었다. 창업 10년이내이고, 기업가치가 1조원대인, 비상장 기업. 바로 이 기업을 독각수라 부른다.

우리는 중국의 거대 기업이라고 하면 흔히 말하는 BAT, 즉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를 떠올리지만, 이제 이 BAT도 옛말이란다. 이제 시장에서 주목하는 독각수는 TMD, 인데 차례로 모바일 뉴스앱인 터우탸오, 음식배달 서비스와 인공지능을 통한 공동구매를 지원하는 어플인 메이퇀, 택시에서 렌탈까지 차량공유 서비스를 지원하는 디디추싱까지를 말한다.

단순히 중국 기업을 소개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당연하지만 그렇다면 한국에는 이런 독각수들이 있는가? 라는 지점이다.

중국에는 현재 이 독각수들이 58개에 달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창업 10년 이내의, 기업가치가 1조원대인, 비상장기업을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쿠팡과 옐로 모바일 딱 2곳이 꼽혔다.

전세계에서 가장 청년 실업률이 심한 축에 드는 한국이고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지만, 이정도면 아무리 경제 규모가 차이가 나서 직접 비교는 힘들다고는 해도, 우리가 중국을 무시할 입장이 전혀 아니란 것은 알수가 있다. 우리랑 사정이 조금은 비슷한 나라가 어디 없나 주변을 살펴보려고 해도 절망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일본이 아무리 잃어버린 10년이 20년이 되고 30년이 되어가며 장기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고 해도, 한때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시절에 닦아놓은 기반은 어디 가지를 않았다. 일본은 현재 청년실업률이 최저점을 찍고 있다. 기업에서는 사람이 없어서 정말 청년들을 ‘모셔가려고’ 안달들이 났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에서 가장 우울한 것은 역시 한국의 청년들이다.

중국은 일찌감치 IT 강국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마침내 이룩해내는 중이다. 비록 폐쇄적인 인터넷 문화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현재 중국에서는 신용카드도 사라지고 스마트폰의 인터넷 결제 시스템만으로도 모든 생활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노점상에서도 스마트폰으로만 결제를 받는다니 말 다했다. 공유경제는 너무 활성화되어서 이제는 폐해가 나타날 정도가 되었다.

일본은 오래된 기업들과 탄탄한 제조업, 그리고 아시아에서 가장 수준 높은 디자인 예술, 그리고 철학 수준이 기반이 되어 불황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고 있다. 일본의 제품들이 아무리 세계에서는 한물 간 취급을 받는다고는 해도, 여전히 눈길을 확 끌게 만드는 것은 일본의 제품들이다. 닌텐도에서는 지난 세월 게임의 역사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임기들을 연달아 발매했다. 닌텐도 위와 DS로 돌풍을 일으켰던 그들은 이번엔 작년 올해 최고의 전자제품으로 선정된 ‘스위치’와 거기에 DIY로 게임기와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스위치 라보’까지 선보이며 전세계인들을 사로잡았다. 한국에서도 없어서 못파는 제품중 하나이다. 굳이 게임기로 가지 않더라도 전자제품 회사인 ‘발뮤다’는 그 특유의 미려한 디자인과 고급진 제품성능으로 수많은 중국산 짝퉁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그들의 제품은 아직까지도 베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특히 공기청정기는 이제 짝퉁이 더 유명해진 수준이고, 캠핑을 가서 비오는 날 먹은 토스트 맛을 잊지 못해 그 맛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발뮤다의 토스터기기에, 밥 짓는 장인의 밥맛을 그대로 재현해냈다는 발뮤다의 밥솥 ‘고항’ 까지, 정말 특유의 철학과 예술적 디자인, 그리고 탄탄한 기계의 성능으로 제품을 내는 족족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발뮤다의 ‘고항’은 가격도 고가에다가 심지어 밥 짓는데만 1시간이 넘게 걸리고 보온 기능조차 없지만 ‘최고의 밥맛’ 이라는 흉내낼 수 없는 가치를 어필하며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중국과 일본, 그 가운데에 어디에 서 있을까?

경제 규모로는 당연히 비교가 되지 않고, 그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요즘 한국의 기업들, 한국의 제품들은 명확하게 어떤 컨셉인지가 가늠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기업과 제품들이 완전히 새로운 것을 제시하여 시장을 선도한 지는 이미 오래됐고, 그렇다고 밖에서 다들 잘하는 걸 기가막힌 타이밍에 제대로 수입해오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전처럼 짝퉁을 잘만드냐 하면 그 자리는 진작 중국에게 물려줬다.

비빔밥도 먹을 수 있는 걸 비벼놔야 비빔밥이라고 하지, 레고블럭과 반도체와 숙주나물을 비벼놓으면 이건 먹을수도 없고 조립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인면조를 보며 들었던 생각이 딱 그러했다. 한국은 지금 새로운 혼종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구나. 일본과 미국만 따라가고 또 따라하면 됐던 명확한 짝퉁 컨셉의 시대에, 우리는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높은 경제발전을 했다. 하지만 이제 어느정도 수준에 올라서서 그런 행보로는 더 이상 먹고살수가 없게 되었을 때, IT가 우리를 먹여살릴 줄 알았건만 그 IT 강국의 지위마저도 이제는 여러나라에 뺏기고 말았다. 현재 한국이 IT 관련 핫이슈인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이런것들에 대해서 단 하나도 선도하는 게 없는 걸 보면 미래가 상당히 암울해 보이는 처지이다. (비록 대기업들과 국가 차원에서 열심히 따라가고는 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또 암울해만 있기에는 세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비록 인면조가 정체불명의 혼종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게 그렇게 인기가 있을 줄은 개회식 공연을 하는 중에도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어찌 보면 한국의 혼종성은 이제 2010년대 말인 지금에 와서야 이제 막 데뷔한 걸지도 모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느 특정한 분야에서 확실한 컨셉으로 밀고나가는 건 어려울지 몰라도, 두루두루 잘하는 것들을 모아서 뭔가 엉성하게 꿰더라도 꿰기는 꿴 혼종의 얼굴, 인면조의 모습으로 날개를 펴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그리고 그게 한국이라는 국가가 현재 나아가는 방향이라면, 한국의 기업들도 역시 참고해 봄직한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