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요리는 어떻게 세계화를 이루어냈나

요리사의 가장 상위계층에는 프랑스 요리를 베이스로 한 셰프들이 대다수 포진해 있다. 상업화된 대부분의 프랑스 요리는 왕가의 음식이었고, 그리스, 벨기에, 영국 등의 유럽 왕가들 또한 프랑스 요리를 선호했다. 귀족과 부자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왕가의 음식을 먹는 다는 것 자체를 하나의 명예쯤으로 여겼다.

근대사회까지도 프랑스 요리를 먹는 다는 것은 요리의 문명화를 체험하는 것과 동일시 되었다. 프랑스의 역사가이자 내무부 장관이었던 프랑수아 기조는 1828년 사람들이 꽉 들어찬 소르본 공개강좌에서 ‘프랑스는 지금까지 유럽 문명의 중심이었다’ 는 자부심을 대놓고 드러낸다. 그들이 인식하기로 프랑스는 뛰어난 음식과 사교의 나라였던 반면, 독일과 영국은 야만적인 나라였다. 노동자를 전면으로 드러내놓고, 노동자들의 음식을 대중화 시키는 나라야 말로 그들 입장에선 아마 미개해 보였을 지도 모른다. 프랑스 요리 옹호자들은 프랑스 요리야 말로 유럽의 요리문화를 통째로 계승한 종갓집이라 여겼다.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중세를 지나 요리문화의 가장 찬란한 정점을 이루는 것이 프랑스 요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프랑스 요리는 단순히 유럽 음식 문화의 장남으로서의 전통에만 머물러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그들의 교묘한 상술과 다양한 저변의 확대로 인해 부흥기를 맞았다.

프랑스 와인을 예로 들어보자. 와인은 프랑스에 아주 중요한 수출품 중 하나였다. 19세기 말, 과학과 기술의 발전 덕분에 와인의 생산량과 그 품질이 급격하게 향상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프랑스 와인이 우수한 이유가 포도를 재배하는 토양(떼루아)과 과학 기술과는 정반대인 귀족적인 전통성에 있다고 여겼다.

‘샤토’ 라는 단어를 쓰는 일류 보르도 와인은 단 하나, 마르고산 뿐이었다. ‘샤토’ 는 ‘성(城)’ 이라는 뜻인데, 이는 앞서 말한 프랑스 와인의 귀족성을 대변해주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마르고 산 와인에만 샤토(성)을 그려넣고 팔았다. 그런데 후에 기계식 생산을 도입한 많은 프랑스 포도원의 소유주들은 커다란 농가 위에 고딕식 탑을 세우고 이를 샤토(성)라고 부르면서, 새로운 천연색 석판인쇄 기술을 이용하여 그 모습을 와인 병 라벨에 새겨 넣기 시작했다. 20세기에 이르르자 보르도 지방의 대부분의 생산업자들은 ‘샤토’ 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 이는 곧 치즈 제조업자들에게도 이 전략을 전수했다. 최신 기술을 이용하여 생산한 와인을 오랜 전통의 수제 기법으로 만들었다고 선전했던 것은 20세기 후반에 일반화된 식품산업의 전략보다 훨씬 더 앞섰던 것이다.

프랑스 요리는 또한 외교무대에서 많은 빛을 발했다. 순차적으로 대접되는 코스 요리가 외교에서도 적합했기 때문에 많은 외교 무대에서 프랑스 요리가 대접되었다. 1889년, 일본의 왕이 도쿄의 새로운 유럽식 왕궁에서 만찬을 열 때도 제공되었던 음식이 바로 프랑스 요리였다.

프랑스 요리는 레스토랑의 주방 표준화도 이끌어냈다. 쉽게 말해, 부엌을 하나의 제대로 된 노동의 현장, 분업화의 현장으로 만들어 각 분야의 전문가들 집합소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셰프라는 말 자체가, 프랑스어이지만 셰프는 일종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은 역할이었다. 한 팀에 한 가지 음식을 배정하던 관행을 벗어나 각각의 팀이 특정한 단위를 담당하도록 했다. 예컨대 소스를 만들고, 고기를 조리하고, 마지막으로 요리를 완성하는 단위를 따로따로 두었던 것이다. 팀의 우두머리인 주방장은 부주방장에게 지시를 내리고, 부주방장은 코미라고 하는 견습 요리사를 감독했다. 코미는 잡일을 했고, 그 보다 서열이 낮은 주방 보조들은 접시를 닦거나 청소를 했다. 이는 프랑스 주방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졌던 체계화였고 후에 이것은 전 세계 레스토랑 주방의 표준이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프랑스 요리는 음식을 설명하고 가르치는 일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요리책이 쏟아져 나오고 다양한 프랑스 요리 연구서적이 발간되었다. 신흥 브루주아들은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매너와 미식의 생활을 따라잡기 위해 이러한 책에 열광했다. 1887년 일본은 신하들에게 프랑스 만찬 때 옷을 입는 법과 식사 예절을 가르치기도 했다.

프랑스 요리는 신비한 매력이 있었다. 유럽 바깥에서는 프랑스 색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지역적인 맛에 적응했다. 반면 그 지역의 요리는 보다 고급 요리처럼 바뀌었다. 프랑스 요리의 퓨전화는 놀랍도록 적응력이 우수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19세기 멕시코에서는 ‘프랑스 요리가 우리의 주방을 침략했다’ 며 경고하기도 했다.

프랑스 요리의 세계화는 단순히 그 전통적 우수성과 우월함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화란 전통만 우겨넣는다고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때론 여우같이 교묘한 전략과 공격적인 홍보, 그리고 수많은 요리사들의 피땀나는 노력과 개선이 만들어 낸 합작품 같은 것이다. 한식의 세계화 또한 더 이상 궁중과 사대부의 전통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