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은 몇 번째 꿈을 꾸고 있습니까

오늘 당신은 몇 번째 꿈을 꾸고 있습니까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자라면서 쉴새없이 바뀐다.

 나 역시 자라는 동안 한 서른 번 쯤은 바뀌었던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나’는 화가도 되었다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되었다가 투어가이드도 되었다가 작곡가도 되었다가 한의사도 되었다가 과학자도 되었다. 어떤 것은 이루어지기도 했고 어떤 것은 한달도 못가 마음 속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서른 개의 장래희망이 있다면 그 중 최초의 장래희망도 있었을 것이다. 그 첫 번째는 지금도 내 책장에 꽂혀있는 초등학교 1학년 일기장에 적혀 있다.

꾹꾹 눌러 쓴 글씨로, ‘아동문학가’ 라고 말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려주면 “실험하다가 왜 갑자기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거죠?”라고 묻던 사람들은 대부분 만족스러워하며 질문을 그친다. ‘아동문학가’와 내가 어릴때 헤어졌다가 재회한 첫사랑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실 아동문학가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절실하고 귀중한 꿈’, 같은 것은 전혀 아니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일기장을 펼쳐볼 때까지 기억 속에도 없고 단어조차 잊어버린, 그런 스쳐간 일이었을 뿐이다. 화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처럼 그냥 있었다가 사라진 장래희망 중 하나랄까.

 그래도 ‘첫 꿈’이란 말은 설레는 구석이 있으니(게다가 증거품도 소지 중이니) 앞으로도 요긴하게 써먹을 테지만.

 

 그러니까 하여간 ‘왜 글을 쓰기 시작했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는다.

 공무원이 되겠다고 했으면 아무도 ‘왜’냐고 묻지 않았을 텐데 하필 글쓰기를 택해서 곤란하게 됐다. ‘예술 따위에 길이 있겠냐, 정신 차려라.’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꿈을 택하다니, 용감하고 멋있네요.’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작가가 특히 더 가난한 직업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난 특별히 거창한 ‘예술’ 같은 걸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용기있게 꿈을 찾아가는 열혈 만화 캐릭터 같은 인물도 아니다. 그저 남들처럼, 굶지 않기 위해서 돈을 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작가라고 하면 고독하게 꿈을 쫒고 문학적 고뇌에 차서 현실을 좌시하는 그런 인물상을 상상하는 것일까?(혹은 기대하거나)

 

 나는 있는 그대로 질문에 답해왔지만 그러면 사람들은 자꾸 더 캐물었다. 뭔가 특별한 사연을 원하는 듯하다. 연구실을 때려치고 갑자기 글을 배울만한 그런 ‘운명적 사건’. 솔직함이 먹히지 않는 대화에서 나는 다양한 답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어느날 연구실에 있는데 딱! 번개를 맞은 것처럼 깨달음이 왔어요. 아 나는 글을 쓸 사람이다!! 하고요.”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리고 우울하기만 했는데 동화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 모든 걸 떨쳐낼 수 있었어요. 뭐라고 할까…. 그래, 동화의 세계에 구원받은 거죠.”

“멀어지려고 해도 자꾸 머릿속에 이야기가 떠올라요. 계속 계속 영감이 찾아오고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겠더라고요. 전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상상에 답할 뿐입니다.”

 

등등……

 진짜 이런 사람도 어딘가에 있을까? 안타깝게도 난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누구나 뭔가를 쓸 수 있다. 그중에 별 관심 없는 사람, 관심은 있는데 쓰지는 않는 사람, 관심도 있고 쓰기도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는 마지막에 해당했다. 돈을 버는 여러가지 방법 중 할 수 있는 한가지를 택한 것이다. 진짜 운명적 만남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까? 

 

 ‘꿈’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가’로 치환된 세상은 아쉽다. 혹은 일종의 낭만 취급 받는 시대도 안타깝다. 직업은 어디까지나 직업일 뿐이고 꿈과 막연한 로망은 다르다. 만약 꿈이 원하는 직업을 뜻한다면 직업을 이미 가진 사람들은 꿈의 자리를 비워둔채 남은 긴 삶을 살아야 한다.

 자라서도 우린 누구나 꿈이 필요하다. 단순히 직업을 갖는 것, 집을 사는 것, 아프지 않는 것 이외에. 살아가면서 당연히 있어야 해서 갖고 싶은 것 말고, 유용성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루고 싶은 진짜 자신만의 꿈. 향해 걸을 수 있는 지점. 그런 것 말이다.

 

 어릴 땐 허구한 날 어른들이 묻는 게 ‘넌 꿈이 뭐니?’ 였는데 정작 어른이 되면 더이상 꿈을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전원주택을 짓는 것 말고 건강하게 늙는 것 말고 우리에게 계속 꿈이 허용되면 좋겠다. 그래서 서른 번이 끝이 아니라 꿈은 죽을 때까지 갱신되어야 한다. 마흔 번째 꿈, 쉰 번째 꿈, 백 번째 꿈…. 어떤 것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또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라지거나 바뀔 수도 있다. 모두 괜찮다. 어린 우리의 꿈이 계속 바뀌어도 괜찮았던 것처럼.

 그래도 계속 마음이 미래로 가는 것, 그게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