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이란

무릇, ‘시작’이란 단어는

두려움과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시작’은 ‘끝’ 또는 ‘무(無)’를 전제로 한다.

즉, 끝이 있어 시작을 하는 경우 또는 없는 상태에서 말 그대로 시작하는 경우다.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은 누구나 남다르다. 특히, 익숙한 것을 떠나 맞이하는 환경의 변화는 자의적인 것과 타의적인 것으로 나뉠 수 있을 텐데, 그 긴장감은 후자 쪽에서 더하다. 오랜 인생은 아니지만, 뒤를 돌아보아 ‘시작’이란 순간을 떠올렸을 때 쉬웠던 기억보다는 그렇지 않은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낯섦의 연속, 미숙함, 초라해지는 모습, 자존감을 지키려는 노력 그리고 외로움. 요즘 내가 맞이한 ‘타의적인 환경변화’가 이런 생각을 들게 했다.

베테랑에서 초보자로의 회귀

익숙한 것, 그래서 어떤 일을 자동적으로 자연스럽게 효율적으로 진행해 나가는 것을 굳이 ‘베테랑’이라고 표현을 하자면, 지금 나는 베테랑에서 초보자로 회귀했다. 십수 년의 직장 생활을 해왔지만 ‘시작’ 앞에서 초라해지는 모습은 어쩔 수 없다. 4년 간의 해외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본사 생활. 부임 전에 몸담았던 부서로 돌아와 그 낯섦이 덜하지만, 어쩐지 세월의 선물로 잊어버린 업무를 다시금 알아가며 초보자의 길을 걷는다. 물론, 처음부터 시작하는 초보자보다는 그 알아가는 과정이 조금은 더 순탄하겠다. 반대로 직급이 어느 정도 올라간 후의 ‘시작’은 조금은 서럽고도 외롭다. 익숙했던 것에서, 내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던 것에서 발령(타의적이라는 것의 다른 의미)을 받아 ‘배치’된 곳이기에.

 

초보자의 다른 말은 초심자

하지만 초보자가 마냥 두렵고 초라한 것은 아니다. 초보자의 특권은, 바로 ‘초심’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아주 중요한 것. 익숙한 것에 빠져 들면 우리는 대게 매너리즘에 빠진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정도의 차이는 분명 있다. 얼마 전을 돌아보면 새로운 모험보다는 안전한 선택, 쌓아온 경험에 의거한 신속한 의사 결정이 주된 행동방식이었다. 가끔 초심을 돌아보긴 했으나, 4년 전 다짐했던 초심은 사라지진 않았지만 이미 많이 변한 뒤였다. 그나마 다행, 인턴 친구들이나 후배들을 보면 항상 해주는 말이 ‘초심은 변할 순 있어도 잃지는 말라’였다. 물론, 후배들에게 해주는 이 말은 나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쩐지 초심이 변하면서, 왠지 그 초심을 꾸역꾸역 붙잡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다시 초보자가 되어 ‘초심’을 상기하는 것은 낯설지만 반가운 일이다.

초라해하지 말자.

초심은 다짐될 것이고, 가능성은 열릴 것이다.

모든 ‘시작’앞에 선 우리 젊음들. 그것이 무(無)에서의 ‘시작’이든, 아니면 어떤 끝맺음에서 비롯된 ‘시작’이든. 우리, 두려움보다는 ‘초심’을 다시금 세울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해보자. 연애든 일이든, 아니면 각자 개인의 프로젝트든 간에. 그러면 보일 것이다. 시작 앞에 초라한 내게 펼쳐진 징검다리 하나하나.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는 길. 초라한 나를 부정하지 말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자존심은 잠시 상할 수 있지만, 명확한 목적과 목표 그리고 초심이 있다면 자존감에 해를 가하진 못할 것이기에.

그리고 시야를 돌려 배려해보자. 내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다시 시작하게 되는 사람들. 그들의 어려움을 나의 경험에 빗대어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먼저 온 자가 나중 되고, 나중 온 자가 먼저 되면서 우리의 삶은 돌아간다. 더불어, 내가 그들에게 배려하고 조언을 줌으로써 깨닫는 것도 많다. 익숙해졌을 때 간과하게 될지 모르는 초심을 돌아보며. 우리는 누군가에게 배려하고 조언을 줄 때 배우는 경우가다. 그리고 그 스스로의 깨달음에서 오는 울림은 누군가에게 주입식으로 받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사실, 내가 우리 젊음들과 함께 고민하려는 이유도 바로 이거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조언을 주는 것, 그것은 곧 나 자신에게 고하는 영롱한 울림이기 때문에. 그래서 난 오늘도, 초심을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의 초라함은 받아들이며, 이 느낌과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며 조언을 주려 한다.

결국, 우리 젊음들을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몸부림.

‘시작’이란 말과 상황은 결국 이렇게 나를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