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고백

고백하건데 나는 시를 잘 모른다. 사실 어느정도는 혐오하기까지 한다. 실제로 과거에는 아주 격하게 혐오하기도 했다. 시 따위가 다 무어냐 싶은 생각을 늘 하고 살았다. 이런 혐오는 사실 어느정도는 문학에 대한 혐오에 기반했고, 이 혐오는 문학을 하는 인간들에 대한 혐오에서 기반했다.

나는 실기 시험도 보지 않고 학생을 뽑는 지방 대학의 문예창작학과를 다녔고, 그곳에서는 정말 눈 뜨고 보기 힘든 온갖 추태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퇴하기까지의 2년은 오로지 술, 오로지 가혹행위, 오로지 이상한 선후배 문화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어느정도 문학의 존재의미는 프로 스포츠에서 팬의 존재와도 연결시킬 수 있다고 늘 생각했다. 어느 프로야구 감독의 말마따나 스포츠 선수들이 ‘볼펜 한자루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의미하고 무생산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돈을 벌어 먹고 사는 건 팬들이 있기 때문이고, 작가들 역시 생산해내는 것은 스포츠보다도 더 실체성이 없어보이는 것이지만 그것 역시 그것을 읽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의미있는 것이다.

내가 유독 시를 혐오했던 것은 시를 쓰는 인간들이 ‘오로지 시를 쓰는 것’ 하나에만 몰두하고 나머지는 인생에서 지워버린듯이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단순히 지워버린듯이 행동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들은 시를 쓰는 것 이외의 행동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며 무례하게 살아갔다. 자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술 먹자고 강압적으로 보채대서 아침마다 토하게 만드는 인간들은 꼭 시를 쓰는 인간들이었고, 후배 여자들에게 손을 대서 구설수에 오르는 인간들은 꼭 시를 쓰는 인간들이었고, 세상 제일 무식한 것도 시를 쓰는 인간들, 세상 제일 무례한 것도 시를 쓰는 인간들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시를 쓰는 인간들이 그놈의 ‘등단’이란 걸 한번 한 적이 없다는 게 더 나의 혐오에 불을 붙였다. 시를 쓴다고 온갖 폼은 다 잡고 사는 인간들이 정작 유의미한 시는 한 번도 써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작 ‘등단’을 못하는 건 오히려 괜찮았다. 1년에 신문사별로 딱 1명에서 2명 뽑는 그놈의 신춘문예 등단을 아무나 해대면 그건 또 정상이겠는가. 애초에 신춘문예 제도 자체가 비정상중의 비정상인 21세기 과거시험인 마당에. 내가 가장 혐오스러웠던 것은 이 시를 쓰는 인간들은 결국 내가 가장 혐오하는 테크를 타게 되는데, 그건 바로 ‘삶의 모든 걸 포기하고 오직 인생의 목표가 등단이 되는 등단 고시생’ 이 되는 것이었다.

다른 기술을 하는 노동자들은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기술이라도 하나 남지, 그놈의 시만 써대는 등단 고시생들은 시도 못 써, 머리에 든 것도 없어, 돈 벌어서 제 앞가림 하나도 못해, 술만 퍼마셔, 도무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자체를 찾을 수가 없어 보였다.

자연스레 나는 시를 혐오하고, 시를 멀리했다. 특히나 시를 쓰는 사람들은 더더욱. 게다가 이 등단 고시생의 단계에 이르면 이들의 지상 목표는 ‘좋은 시를 쓰는 것’ 따위가 아닌 그저 ‘등단해서 시인 대접좀 받으면서 공식적으로 으스대려는’ 것이 되기에, 이들의 존재나 이들이 쓰는 시는 이미 문학성과도 백만광년 쯤은 멀어지는 것이었다.

의미 탐구

난 그래서 시를 쓰는 심리 따위는 애초부터 궁금하지도 않았다. 시를 읽으면서 재미 따위도 애초부터 느끼지를 않았다. 그저 처음부터 학습한 혐오를 통해서 시에 대한 혐오를 마구 분출할 뿐이었다. 난 시를 멀리했고, 시를 읽지 않았으며, 시 이야기만 나오면 미간을 찌푸리고 손사레를 쳤다.

나는 시에 관한 수업도 모조리 제껴버리고 듣지 않았다. 1년 반정도는 성공적으로 피해다니던 이 시도는, 결국 2학년 2학기, 내가 군대를 갔다와서 학교를 자퇴하기로 결정하기로 함으로써 마지막 학기가 되어버렸던 그 해에 깨지게 되었다.

하필이면 학과에서 가장 수업이 힘들고 어렵다는 깐깐한 여교수님의 수업이었고, 수업은 시의 이론에 대한 수업이 절반, 그리고 나머지는 직접 발제한 논문 형식의 프린트물을 발표하고 첨삭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이 시 수업에 시를 쓰는 인간들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나온다 하더라도 자거나 졸기 일쑤였고, 혹은 출석 체크만 한 채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주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때는 정해진 프린트를 내거나 시험을 보지 않았고, 시험지에는 즉석에서 지은 자작시를 휘갈겨 쓰고 나갔다. 난 그렇게 해도 점수를 받는 그들이 신기할 뿐이었다.

나의 시 혐오 때문에 나는 시 수업이 재미 없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수업은 재밌었다. 수업이 힘들고 어렵다는 평은 되려 그만큼 제대로된 수업이라는 반증이었으며, 교수님이 깐깐하다는 평은 그만큼 디테일하고 강의에 정성을 들인다는 반증이었다. 난 고전 시에서부터 현대시까지 주로 형식에 대해서 공부를 했고, 가장 흥미로웠던 것도 시의 형식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재밌어 했던 부분은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군사 정권 때 정부를 비판하거나 자유를 노래하는 시들은 주로 어려운 형식으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았었고, 이는 검열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나는 황지우의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와 사랑에 빠졌다. 황지우의 이 시집은 온통 패러디로 가득했는데 길가 벽보에 붙은 포스터, 신문 광고란 등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와 ‘이게 시인가?’ 하는 의문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포스터와 신문 광고란의 중간중간에 섞인 ‘실종자를 찾습니다’, ‘간첩 신고’, 등의 짧은 대목들에 들어간 상징성과 시대비판은 가끔 나를 소름끼치게 했다.

내가 시를 보고 뭔가 ‘멋있다’ 고 생각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시’ 라는 게 뭔가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편견들보다도 훨씬, 더 뭔가 생산적인 무언가를 위해 노력했던 결과물이었다는 게 오히려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헌책방에 가면 누군가가 한때는 읽고, 밤새 품고, 또 한때는 연인에게 선물로, 또 한때는 밤새 그것을 베껴 쓰는 필사를 해댔을 시집들을 뒤적이며 구입했다.

그러나 고백하건데 그 시들 중에서 내가 좋아한 시는 없었다. 난 <노동의 새벽>,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입속의 검은 잎>,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등의 시집을 샀다.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은 5권을 사서 4권은 누군가에게 선물로 줬다. 그 중에서 외우는 시는 전무하다. 기억나는 시 조차 없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시는 그 시들 중에서 없었다. 나는 그저 매력을 느꼈으나, 제대로도 알지 못하고 자세히도 알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그것들을 끝내 이해하거나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했다.

내가 그 시 중에서 외우고자 했던 시는 딱 하나였는데 바로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에 수록 된 그 유명한 ‘빈 집’ 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로 시작하는 이 시는 정작 기형도는 자기가 쓴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지 않는 시였다고 했다. 너무 통속적이고, 너무 유행가적이며, 너무 사랑시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작 나는 그래서 그 시를 좋아했고, 군대에 가기 전 그 시를 외워서 들어가려고 했으나 끝내 실패했고, 결국 나는 어느 새벽 훈련소 나무 관물대에 머리를 박고 기형도의 ‘빈 집’을 외워서 써보려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5연에서 막혀버렸다.

나는 지금도 그 시를 외울수가 없음이다.

시 쓰는 밤

어느 날 나는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인터뷰를 우연히 신문에서 보게 되었다. 난 신춘문예에 별다른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기에 신년을 맞아 하필 신문을 보는데, 하필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인터뷰를 보게 된 것도 우연이라면 우연이었다. 난 신춘문예에도 ‘시조’ 라는 분야가 있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시조부문에는 장르의 특성상 나이가 많은 시조 시인들이 많이 응모했었다. 그 등단자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시조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사람들은 시조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한문으로 정확한 규칙에 의거해서 지은 시가 형식에서도 완벽하고 운율에서도 완벽하며 의미에서도 완벽할 때 느끼는 쾌감은 다른 사람들은 아마 알지 못할 것’ 이라고 했다.

형식과 음악성과 의미에서조차 완전히 들어맞을 때의 쾌감.

나는 그 이야기에 꽂혀서 한시가 시조, 오래된 한자 문화권의 시들을 언젠가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연이 닿는 일은 꽤나 오랫동안 없었고, 나는 재작년 무렵에서야 류시화 시인이 엮은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줄의 시를 읽다> 라는 책을 접했다. 평소 관심있던 한자 기반의 시 형식 중 하나인 일본의 ‘하이쿠’ 선집이었다. 류시화 시인이 직접 번역했고, 시에 대한 해석도 첨부한 알찬 시선집이었다.

하이쿠는 일본의 전통 시 형식이었기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는 시였다. 거의 기록 말살형에 처해지는 느낌처럼 일본의 시 형식에 대해서는 알길이 없었기에, 나는 이 책의 존재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나는 책장을 넘기며 만나는 시 하나하나에 감동하고, 마음을 움직였다.

‘모 심는 여자, 아기 우는 쪽으로, 모가 기운다’ – 무더운 여름 우는 아이가 있는 집쪽이 신경쓰여 끝내 모심기 줄이 흐트러지고마는 여인의 마음과 풍경을 잔잔히 그려보았다.

‘아내로 삼고 싶은 사람 많아라, 꽃구경 할 때’ – 벚꽃 만발한 공원의 풍경과 행복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행복한 모습의 사람을 보는 행복한 나까지 동시에 인지되는 짧은 행복의 한 순간.

‘붉은색 바른 입술도 잊어버린 샘물이어라’ – 한여름 무더위에도 곱게 화장하고 기모노를 제대로 차려입은 여인이 결국 조롱박에 샘물을 떠 마시는 순간, 그 조롱박에 담기는 붉은 입술과 그것을 목덜미 너머로 훔쳐보는 듯한 섹슈얼리티의 한 순간.

지금도 이 시들은 외울 수 있다. 그래서 하이쿠가 더 좋았다. 짧아서도 좋았지만, 짧은 와중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담기고, 무엇보다 언제든 외워서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 시 하나를 발견했다.

‘모두 거짓말이었다며 봄은 떠나가 버렸다.’

이 시 만은 시인의 이름조차도 같이 외우고 있다. 다네다 산토카.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나도 하이쿠를 써봐야겠다, 지금 당장, 이라고 생각했다.

‘꽃이 내게로 쏟아졌나, 내가 꽃에게 넘어졌나.’

‘개구리 목청껏 운다 언 눈을 찢고’

‘읽던 시집너머 팔이 굽은 남자가 구걸해온다’

그렇게 하나씩 혼자 써제끼던 하이쿠 쓰기는 요즘도 계속되고 있다. 내가 시를 쓰게 되기까지, 시를 처음 접하고난 후부터 그렇게 10년 가까이가 걸렸다. 오랜 시간 시는 내게로 왔고, 나도 시에게로 오래 걸려 다가갔다. 시를 혐오하고, 시를 읽던 밤을 지나, 이제는 시를 쓰는 밤으로 나아왔다.

이 부끄러운 고백들을 굳이 쓰는 이유는, 당신에게도 어느순간 다가올 시가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어느 순간 오래 걸려 걸어가 마침내 당도할 시가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당신과 시 사이에는 아무것도 있어서는 안된다. 특히 시를 쓰는 인간들을 멀리하기 바란다. 당신과 시 사이에 그것들을 놓지 말지어다. 당신과 시가 맞닿은 그 순간에는, 오직 당신과 시 둘만 있음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