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성공론 – 미세먼지로부터

미세먼지는 너무 미세해서,

2주 전, 여자 친구와 함께 망미동에 있는 테라로사 카페에 간 적이 있다. 점심 식사 직후였고, 유난히 춥지 않은 날이었다. 우리는 겨우내 입고 다니던 롱패딩 대신, 간만에 코트를 꺼내 입고 택시에 올랐다. 우리는 날이 참 좋다, 하늘이 맑다, 하며 한껏 부풀어 있었는데 과묵하게 운전하시던 택시 기사 분이 한 마디 거드셨다. “저, 앞에 저거 안 보이요? 오늘 미세먼지가 엄청 많다카든데..” 그 말을 듣고 전면 유리 너머 먼 하늘을 보니, 푸른 산등성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희뿌연 하늘만 떠있었다. 택시에 오르기 전, 상쾌하다며 마신 그 공기에 저런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것이다.

조금만 멀리 봤으면 단번에 알아챌 일을 모르고 허튼 소릴 한 게 민망해서, 테라로사 카페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조용히 창밖의 미세먼지를 째려봤다. 째려보면서, 문득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세먼지는 정말 너무 미세해서 가장 가까운 눈앞의 것은 보이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너무 작아서 멀어져야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미세먼지의 그 미세함이란, 무리를 이뤄 거대해질 만큼 먼 거리에서만 겨우 가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속적으로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결국 오감의 존재다.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느끼고, 해석한다. 해서, 내 감각이 지각하지 못하면 그 미세먼지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미세먼지를 알아채지 못한다. 무슨 냄새가 난다거나, 목이 칼칼하다거나, 눈이 따갑다거나 하면 또 몰라도. 며칠 전 택시에 올라탔던 나도, 내 눈으로 희뿌연 하늘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세먼지를 알아챘으니까.

그날 테라로사에서 커피를 마시고, 그 옆 YES 24에서 책을 읽고, 한참을 머물다 나온 여자 친구가 “‘미세먼지’라고 하니까, 경각심이 안 드는 것 같아. 그냥 이름은 좀 더 세게 하면 어떨까? 예를 들면, ‘중금속 가루’ 라든가.”라고 말했다. 이것 역시, 이름에서 연상되는 감각을 극대화해서 경각심을 높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인간은 오감의 존재. 개인적으로는 육감이나 직감, 혹인 영적인 어떤 에너지 같은 걸 믿는 편이지만 우선 확실한 건 오감이다. 너무 미세해서 느껴지지도 않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너무 미세해서 멀리서만 볼 수 있는 미세먼지의 하루를 겪고서, 나는 자기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하는 가장 간단한 원리 하나를 깨달았다.

왼손이 한 일을 온몸이 알도록

간단하다. 당신이 한 일을, 당신이 알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단, 감각적으로 놓치지 않도록. 하나도 빼먹지 않고 계속해서 인지할 수 있도록. 머리로 기억하려고만 하지 말고, 별 생각 없이 살아도 계속 상기할 수 있도록. 가장 쉬운 성공의 방법이 메모하는 습관이라는 진부한 이야기가 새삼 어떤 잠언처럼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메모하는 것도 좋고, 녹음을 해두는 것도 좋다. 사진을 찍어 기록하는 것도 좋다. 어떤 방법이든, 당신이 무슨 일을 했다면 그 사실을 쉴 틈 없이 계속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노력이나 의지가 아무리 태산 같아도, 그로 인한 매일, 매일의 변화는 미세먼지만큼이나 미약하고 느린 경우가 많다. 요즘의 내 생활을 두고 빗대어보자면, 운동으로 몸이 변하는 일이 그렇다. 정말 말 그대로 ‘죽어라’ 운동하고, 식단 조절을 하고, 닭 가슴살을 먹어도, 3개월 동안 내 근육량은 겨우 1kg 조금 더 늘었을 뿐이다. 아니, 그동안 내가 먹은 닭 가슴살만 해도 20kg은 넘을 텐데, 하는 분한 기분도 들었다. 몸도 딱히 많이 변하진 않은 것 같다. 동기 부여가 팍팍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미세먼지 사건(?) 이후로는 마음을 고쳐먹고, 결과가 아닌 과정의 매순간을 내가 섬세하게 느끼고 인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매일 중량과 세트를 확인하고, 이전의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노력했다.(물론 대부분은 실패다.) 부끄러운 몸이지만, 사진을 찍어 기록했고, 하루 일과의 마지막엔 오늘 먹은 것들을 정리했다. 효과는 놀라웠다. 갑자기 몸이 막 좋아졌다거나 하는, 그런 사기성 짙은 놀라움은 아니었다. 매일, 매일의 노력이 지치지 않게 되었다. 뭔가, 내가 해내고 있다는 뿌듯함이 지속될 수 있었고, 당장 몸이 성장하지 않더라도 만족스러운 하루의 마무리만으로도 동기 부여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기분 탓일 거다, 분명.) 겨우 열흘 만에 몸이 좋아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매일 찍은 사진을 차례로 보니 아주 미세하게(그래서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몸이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사실이 아니라 기분 탓이면 또 어떤가. 어쨌든 나는 덕분에 나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계속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고로, 내가 한 일을 내가 온전히 느끼고, 아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ps.
마스크 쓸 사람들을 위한 팁.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쓸 거라면, 보통 ‘황사마스크’라고 부르는 ‘보건용 마스크’를 써야 한다. 부직포로 만든 보건용 마스크는 정전기를 일으켜 미세먼지를 잡는 방식으로 단순 공기 차단, 필터링 효과를 강조하는 일반 마스크와 다르다. 특히 보건용 마스크에는 ‘KF 수치’와 ‘의약외품’ ‘보건용 마스크’라는 표시가 적혀 있어야 한다. 이런 표시 없이 앞면에 ‘황사 100% 차단’ 같은 홍보문구만 있다면, 허위 광고이니 거르자. 출퇴근이나 등하교 같은 일상생활을 위해서라면 KF80이면 충분하고, 야외에서 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KF94를 쓰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