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만나요

정신줄을 놓고 산다는 말이, 어쩐지 참 매력적이다.

‘놓고 산다’라는 말이 왠지 주체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것처럼. ‘정신줄’을 놓고 산다는 것이 영 어감이 그래서 그렇지, 뭐라도 주체적으로 이끄는 삶이라면 얼마나 보람될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장 자체는 주체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착각이다. 우리는 흔히 그러하지 않은 현실을 비꼬아 표현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강력한 반어법인 셈이다. 흔히 정신줄은 ‘놓여’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난 일주일간의 바쁜 일정을 돌아보자. 어땠을까. 지치고 바쁜 일상 속에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정신줄을 놓게 된다. 그러기에 실수도 많이 하고, 친구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기도 하고, 정해진 날짜에 내야 하는 공과금을 과태료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과감히(?) 패스하기도 한다. 부모님께 전화하고자 했던 다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나마 쪼개어 남은 여가 시간에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려 했던 결심들도 잊히기 마련이다.

 

나는 언제 어디서 만날까.

그렇게 요란스러운 시간을 지나면 주말이 기다리고 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두 아이의 아빠로서. 주말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물론, 이것이 싫지 않다.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하고 행복 겹다. 어두웠던 과거를 그 이상으로 밝게 비춰주는 것 같아, 지난날 겪은 운명의 장난에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로. 하지만 존재하는 무엇으로서, 마음 한 편의 허전함은 여전하다. 주중엔 업무와 사람들과의 관계로 요란하고, 주말은 주말대로 가족과의 소란스러운 행복 속에서 나를 찾고 싶은 것이다. 놓여진 정신줄엔 아마 나의 일부 또는 전체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때로는 ‘나’를 놔야 내 인생이 굴러가는 경우도 있다는 건, 어른으로서의 깨달음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만나고 싶다. 잠시 내려놓았던 나 자신을 찾고 싶다. 언제가 좋을지, 어디가 좋을지 한참을 고민한다. 그러한 것과 그러하지 않은 것이 만나는 그 접점은 언제나 존재한다. 남한과 북한도 DMZ를 공유한다. 주중과 주말을 구분하는 접점은 금요일이다. 그래서 난, 항상 약속을 잡는다. 매주 금요일 밤. 나를 만나러 가는 날.

 

금요일 밤, 나와의 데이트

금요일도 엄연히 주중에 속한다. 금요일이라고 회식이 없으리란 법이 없고, 야근이 일부러 비껴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금요일 밤은 아무래도 좋다. 금요일 밤 12시 전이라면, 단 5분 10분도 좋다. 그 시간이 지나면 가장으로서 아빠로서의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에, 놓쳐서는 안 되는 소중한 시간. 가장 좋은 시간은 금요일 밤 9시부터 자정까지. 젊었을 때라면 북적이는 어느 곳에 찾아가 ‘불금’을 즐겼겠지만, 이제는 오롯이 나를 마주하고 싶은 욕망이 더욱 크다.

노트에 펜을 들어 굴린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들을 그저 막힘 없이 쓴다. 아무 주제도, 문맥도 없다. 마음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끄적인다. 그리고 바라본다. 아, 내가 이런 걸 갖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싶어 하는구나. 이루고자 하는구나. 어울리지도 않는 클래식 음악을 틀고 5분 동안 눈을 감아 본다. 평안하다. 이런 게 행복인가 싶을 정도로. 원래 행복은 순간이다. 짧게 스쳐 지나간다. 그러니 이 5분 간의 호사는 꽤 큰 행복의 조각이다. 때로는 머릿속에 꽉찬 소재들을 몇 가지 풀어내어 글을 쓰기도 한다. 막힘 없이 술술 써질 땐 기분 최고다. 그러지 못할 때도 그 답답함은 ‘나’와의 대화로 귀결되어 나쁘지 않다.

 

나는 나를 잘 모른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심리학을 전공으로 했었어도, 모르면 더 몰랐지 알아낸게 없다. 어쩌면 내가 나를 잘 알고 있다는 오만함에서 오는 형벌일지도. 그러고보니, 나에게 스스로 귀기울여 본 적이 별로 없다. 배고프다고 밥 먹고, 졸리다고 자고, 심심하다고 게임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것들이 나에게 귀기울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면 속에 있는 나를 느끼고 발견하는 것.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 여기 있는 것을 느끼는 것. 숨 쉬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이러한 것들이 나를 조금이라도 알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주중과 주말을 나누어 놓은 것은, 어쩌면 절대자의 배려가 아닌가 싶다. 나누어 놓은 그 접점에서 무어라도 생각해보라는. 끝 없이 이어지는 연속적인 시간 안에서 사람은 무엇을 돌아보거나,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기회를 못가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사실, 나약한 우리네는 정말로 그러하기 때문에. 그래서 난, 금요일 밤에 나에게 귀기울여 본다. 살면서 몇 번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영 걸린다. 나에게서 오는 목소리는 때로 신기하다. 반갑고 벅차다. 금요일 밤, 나와의 데이트가 항상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