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다녀가는 순간

머피와 샐리, 그리고 줄리

‘머피의 법칙’, ‘샐리의 법칙’ 아마 ‘질량 보존의 법칙’만큼이나 다들 아는 법칙 시리즈일 것이다.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하는 머피의 법칙과 ‘운 좋은 일들의 연속!’ 인 샐리의 법칙. 사실 과학의 지극히 논리적인 여러 법칙들을 떠올려보면, 겨우 ‘머피’나 ‘샐리’에게 ‘법칙’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그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일반적으로, 또 보편적으로 겪는다는(또는 겪는다고 오해한다는) 점만은 분명한 것 같다. 특히 머피의 법칙은 실제로 과학적이거나 심리적인 논거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사례도 많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면, ‘잼을 바른 토스트는 왜 하필 잼이 바른 쪽으로 떨어지는가?’ 같은 것. 그거야 당연히 잼이 바른 쪽이 더 무거우니까.

그런데 머피도 아니고 샐리도 아닌,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좋아하는, ‘줄리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다. 이건 조금 더 현실적이고 희망적인 법칙인데,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던 것은 어떻게든 이루어진다는 의미’라고 한다. 내가 이 법칙을 머피나 샐리보다 더 선호하는 이유는, 철저하게 외부 요인인 ‘운’에 의해서 일어나는 법칙이 아니라 간절함이나 노력 같은 인간 내부적인 ‘의지’가 관여하는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래, 이 정도면 법칙이라고 해줄 수 있겠어.’라는 내 멋대로의 판단이랄까.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나 론다 번의 「시크릿」같은 책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박前대통령의 유명한 문장도 있기는 했구나. ‘간절히 바라면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휴…

통제 불능의 세계

머피와 샐리, 그리고 줄리. 이 외에도 수많은 법칙이나 심리적 현상들이 존재하고, 또 그것을 믿는 것은 우리가 ‘통제 불능의 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리 꼼꼼히 살피고 노력해도, 우리의 삶을 완전히 통제하고 예측할 수 없는 존재다. 우리의 삶? 세계? 뭐 그런 거창한 말도 필요 없다. 사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완전히 알 거나 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노래도 있잖나.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내가 벌써 10년째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는데도, 몸무게가 꾸준히 늘어온 것만 봐도 우리는 정말 ‘통제 불능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통제 불능’이라는 건, 즉 우리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우리네 인생에는 ‘운’이 작용한다는 거다. 내가 의도치 않은 기회나 위기가 노크도 하지 않고 불쑥, 불쑥 찾아오는 일. 착하고 정직하게만 살아온 사람이 억울하게 생을 마감하고,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고도 배부르고 등 따시게 잘만 사는 사람들. 그래서 한편으론 억울하고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모든 일들. 나는 그것이 ‘통제 불능의 세계’를 증명하는 가슴 아픈 증거라고 생각한다. 조금 비약하자면,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신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이 통제 불능의 세계에서 모든 걸(심지어 운까지도) 통제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대상. 그에게 기도하면서 소망하고 희망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해달라고. 노력에는 보상이 따르고, 죄에는 벌이 따르게 해달라고. 어질러진 세계의 질서를 바로 잡아달라고.

잠깐, 신이 다녀가는 순간

나는 종교가 없지만, 영적인 어떤 존재는 믿는다. 특정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 나의 이런 생각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나는 그저, 이 세계가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신성한 신이든, 잡귀나 악귀 같은 귀신이든, 심지어 외계인이든, 우리 감각 밖의 존재에 대해서 긍정하고 있다. 글쎄, 아직까진 그런 것들을 믿어서 손해 본 일은 없는 것 같다.

방영 종료한 지 1년이 다 됐는데도, 여전히 여운이 강력한 드라마 ‘도깨비’는 그런 점에서 내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우선은 도깨비나 저승사자가 너무 잘생겨서 놀랐고(그러니까 공유와 이동욱의 외모에도 놀랐지만, 도깨비와 저승사자 역으로 그런 외모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놀랐다.) 지극히 문어체인 대사를 말로 읊는데, 어색하기보다는 아름다워서 놀랐다. 덕화(육성재 분), 김비서(조우진 분)의 깨알 같은 연기도 좋았다. 도깨비의 여러 장면 중에서도 나는 특히, 덕화에게서 신이 떠나가는 클럽 장면을 정말 좋아한다. 자신을 찾아온 도깨비와 저승사자에게 덕화는, 아니 덕화에게 잠시 머물고 있던 神이 전에 없던 ‘엄진근’한 모습으로 말한다.

神 (feat. 유덕화)

“신은 여전히 듣고 있지 않으니, 투덜대기에.
기억을 지운 신의 뜻이 있겠지, 넘겨짚기에.
늘 듣고 있었다. 죽음을 탄원하기에 기회도 줬다. 헌데, 왜 아직 살아있는 것이지?
기억을 지운 적 없다. 스스로 기억을 지운 선택을 했을 뿐.
그럼에도 신의 계획 같기도, 실수 같기도 한가?

신은 그저 질문하는 자일 뿐.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

이 아이와의 작별인사도, 그대들이.
그럼 난 이만.”

이후 신은 흰 나비의 형상으로 사라지고, 덕화는 기절한 후 다시 깨방정 떠는 철딱서니로 돌아온다. 나는 이 장면에서 ‘신은 그저 질문하는 자일 뿐.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라는 대사를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나는 ‘운명’을 ‘결론’으로 받아들였는가. 주어진 운명을 살아가는 일을, 결론이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오해했는가. 왜 나는 신을, 질문에 대한 답을 던져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존재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가.

‘덕화 神(?)’의 대사를 듣고 난 후, 다시 줄리를 떠올려 본다. 간절히 바라는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 우리 모두의 줄리는 과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기만 했을까. 그저 바라기만 했는데, 통제 불능의 이 세계가 친절하게도 줄리에게 그것을 선물한 걸까. 아니면, 마음씨 좋은 신께서 후하게 베풀어주신 걸까. 나는 감히, 줄리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건 바로 니가 해낸 거라고. 니 운명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낸 결과라고. 우리 모두의 줄리에게, 넌 할 수 있다고. 한 번도 뵌 적 없는 신께서, 지금 흐뭇해하고 계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