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디에서 왜 오는 건지 모르는 것에 대한 위력은 대단하다.”

 

살다보면 ‘의지’와 ‘계획’으로도 되지 않는 것이 많다는 걸 알게된다. 물론, ‘의지’와 ‘계획’은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의지’와 ‘계획’을 제대로 가지고 실행한다면 아마 무슨 일이든 다 해낼 것이다. 못할 일이 없어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실제로 우리는 그것들을 가지고 뭔가 성공을 한 체험이 몇 가지씩은 될 것이다.

하지만 ‘의지’와 ‘계획’을 다 가지고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발걸음을 멈칫 할 때가 있다. 바로 무기력감이 나타났을 때다. 해내고자 하는 마음은 굴뚝같고 이미 계획도 다 세워 놓았는데, 어쩐지 실행이 되지 않는 상태. 아니, 실행을 하더라도 이게 맞나 싶고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들지 않는 느낌. 무기력감이 무서운 것은 예고하지 않고 갑자기 찾아온다는데 있다.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것이 어디서, 왜 소위 말해 ‘왜때문에’ 오는 것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에 한 번 빠져들면 자기비하는 물론, 이런 것 하나 해내지 못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며 자학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악순환은 시작된다. 될대로 되라며 ‘의지’도 ‘계획’도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솔직히, 앞서 ‘의지’와 ‘계획’으로 이루었던 성공 체험보다, 무기력감으로 초심을 잃고 많은 기회를 잃어버린 경험이 더 많지 않은가? 딱 한 가지 질문으로도 그것을 가늠할 수 있다. 혹시, 운동과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장을 끊은 경험이 있다면, 과연 얼마나 출석을 했었는지 돌아보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사람도 있겠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다. 전자는 희박하고, 후자가 대부분이라고 한다면 비약일까? 보다 더 사실이라는 것에 확신이 가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리고 많이 나가지 못한 것에 머물지 않고, 아마도 자책과 자학 그리고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분명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무기력감은 자리를 잡아갔을 것이 뻔하다.

 

“‘무기력’은 ‘열정’의 반대말일까?”

 

흔히 우리는 무기력한 사람이나 자신을 보면, ‘열정’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 두가지 의미는 반대적인 의미로 상당히 잘 어울린다. 누구라도 어느 한 가지 단어를 생각하면, 나머지 한 단어는 반대적인 의미로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물론, 그렇기도 하다. 우리가 빨간색을 떠올리면 그 반대로 파란색을 떠 올리듯이, 지금까지 쌓아온 교육과 경험 그리고 가치에 따라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무기력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 자신이 ‘의지’와 ‘계획’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가지고 있음에도 무기력할 수 있다. ‘열정’은 어떠한가?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해내는 사람은 ‘의지’나 ‘계획’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둘이 없어도 어떤 일에 충분히 ‘열정’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헬스장을 끊어 놓고, 또는 매일 퇴근 후 30분간 달리기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 후 지키지 못한 건 ‘의지’와 ‘계획’의 부재 때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계획에도 없던 시간에 우연히 집어든 책에 ‘열정적’으로 빠졌을 때는 오히려 아무런 의지와 계획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니 그 둘을 오로지 반대되는 개념으로 대립 시킬 수 있을까? 어쩌면 ‘무기력’이든, ‘열정’이든 그것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왜 오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반대되는 개념일 수도 있지만 엇비슷한 동질감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무기력’이 나쁘기만 할까? ‘열정’은 좋기만 할까?”

 

그러니 이쯤 되면 우리는 그 둘을 선과 악으로 갈라 대립을 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돌아볼 수 있다. 어떤 하나의 존재나 개념을 선과 악으로 규정하고 나면, 우리는 그것들을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무기력할 때, 우리는 왜 무기력할까? 왜 그 무기력은 쥐도새도 모르게 다가와서 나를 괴롭힐까. 계획한 모든 것을 그르치고, 그렇게 원하던 시간이 생겨도 결심했던 어떤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가. 아주 약오르다. 괘씸하고, 처절하다. 나를 원망하고 끝나면 될 것을 그러기엔 뭔가 분하다. 그러니 ‘무기력’도 신의 창조물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악’으로 규정 하기 전에 한 번 찬찬히 보자. 그러면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만 시선을 달리해 보자. 어쩌면 ‘무기력’은 우리에게 아래와 같은 신호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첫째, 조금은 쉬어야 한다는 뜻

 

아마, 합리화 하기에 가장 좋은 이유일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돌아봐야 한다. 무기력하다는 건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이야기이고, 어쩌면 그만큼 바쁘게 살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그러니, 한 번 돌아보자.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 스스로를 좀 더 채찍질해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은지. 물론, 아무것도 한게 없는데 그럼에도 무기력하다고 자책감이 들 수도 있겠다. 게으른 것과 무기력한 것은 구분해야 한다. 그건 누가 알려줄 수가 없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러니 당신은 지금 그저 게으른 것인가? 아니면 무기력한 것인가? 게으른 자는 ‘의지’도 ‘계획’도 없다. 나는 지금 ‘의지’와 ‘계획’이 있음에도 힘들어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의지’와 ‘계획’을 돌아봐야 한다는 뜻

 

계속해서 이루지 못하는 ‘계획’에 슬퍼한 적이 있지 않은가? 한 번 결심을 하면 끝을 봐야 한다는 성격이나 생각 때문에 현실적이지 않은 목표를 두고 자신을 초라해 하고 있진 않은가? ‘의지’와 ‘계획’이 있음에도 무기력함을 느끼는 대부분의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의지’야 생각으로도 충분하다. 무언가를 하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의지’는 일어난다.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잘 따랐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무기력감이 든다면 돌아봐야 한다. 계획이 잘 세워져 있는지. 나의 생활 패턴에 맞고 합리적인 것인지. ‘계획’은 나를 괴롭히려고 만드는 잣대가 아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는 계단과 같다. 그러니 무기력감이 왔다면 이러한 것을 돌아봐야 한다는 신호란걸 외면하지 말자. 무기력해하지만 말고.

 

셋째, 삶의 ‘목적’을 반추해야 하는 때

 

두 번째에서 우리는 ‘목표’에 대한 개념을 살펴봤다. 그런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목적’이다. 목적은 방향을 기본으로 한다. 더불어 해야 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하고싶거나 해야 하는 이유라고 해도 좋다. 이것을 이뤄내기 위한 것이 바로 ‘목표’다. 즉, ‘의지’와 ‘계획’을 가지고 하나하나 실행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러니 ‘계획’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 우리는 삶의 ‘목적’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그토록 ‘의지’를 가지고 ‘계획’을 세우려 한 것들. 실행하여 이루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이처럼 아등바등하고 있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열심히 산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는다. 왜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지에 대한 ‘목적’이 필요하다. 어쩌면 목적 없는 열정 보다는, 자신의 목적을 돌아볼 수 있는 무기력감이 더 값어치 있는지 모른다.

 

“무기력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러니, 무기력하다고 무기력해하기만 하지는 말자.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왜’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그러니까 나는 무기력하지 않다는 생각에 도취되어서 그 방향과 목적을 잃으면 안된다. 내가 무기력해졌다면 그것에 압도되지 말자. 사실, 우리 자신을 압도 하는 것은 무기력함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자 자책이다. 무기력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한 번 귀기울여보자. 의지와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도 무기력함이 왔을 땐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들을 돌아보고 재정비한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무기력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분명 있다. 무엇을 위해, 왜 하는지 모르고 달려온 열정을 발견한다면 아마 가장 값진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아니, 자신의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어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저 무기력하다고 자책하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의 모든 것엔 의미가 있으니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어디에서 오지 않는다. 항상 주위에 있다.”

 

첫 문장을 ‘어디에서, 왜 오는지 모르는 것에 대한 위력’으로 시작했더랬다. 다시 생각해보면 ‘무기력’이든 ‘열정’이든, 사실 그것들이 어디서 오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디에서 갑자기 오지 않는다. 항상 우리 주위에 있으며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이러면 안되는데’라는 생각은 무기력해졌을 때 나타나는 표상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도 무기력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몸과 마음, 영혼을 스스로 망가뜨린다. 그래서 거듭말하지만 그것에 압도되지 말자는 것이다. 그것에 압도되지 않고 받아들이면 편안해진다. 아, 내가 이렇구나. 내가 이런 상황이구나. 내 계획과 목표, 그리고 인생의 목적을 살펴봐야겠구나.

생각보다, 무기력할 때 배우거나 경험하는 것들이 꽤 많다. 그냥 무기력할 동안은 기분이 좋지 않으니 시간을 그냥저냥 보내기 때문에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다. 삶에는 숨어 있는 의미가 참 많다. 숨은 그림 찾기와도 같다. 그것도 아주 어려운. 그냥 누군가 그림을 만들어 숨겨 놓은 것도 있겠지만, 내가 숨은 그림의 대상물을 만들고 찾아내는 것도 재미다.

우리네 숙명이다. 숨은 그림, 아니 숨은 의미 찾기를 평생 해야 하는 것. 그리고 무기력감과 열정을 무한 반복으로 경험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

 

다시, 무기력하다고 무의미하지 않고 열정적이라고 마냥 옳지는 않다. 그리고 그 두 가지의 것이 항상 대립되거나 상반되지 않는다. 이것을 마음에 새겨두고 나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지금 당장 무기력감이 조금이라도 감지 된다면 위에서 언급되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자. 사실,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요즘 너무 무기력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쉽게 충고하기 위해 3자의 입장에서 간단히 써내려가는 글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가차 없이 내던지고 있는 말일지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다. 그러니 좀 더 진실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돌아봐야 하는 것은, 과연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가.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왜 하는 건가? 그것들을 알지도 못한 채 무조건 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 더 소중한 것들을 잃지는 않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인 것이다.

 

알고보면 무기력이란 녀석 참 열정적이다.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그 부지런함이 가히 그렇다. 우리가 절망하고 자책하고 쓰러지는 속도와 강도를 보면 알지 않는가. 무기력마저도 이렇게 열심히 그리고 잘 해내는 마당에, 우리는 그것보다 더 이유있는 열정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아무리봐도 그것은 무기력 덕분이다.

 

무기력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해하기 보단, 왜 왔는지에 생각해보자.

신발끈을 질끈 메고 나가 단 얼마라도 뛰어보는 것도 좋겠다. 아니면 지금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크게 심호흡을 하거나, 팔을 올려 스트레칭이라도 해보자. 움직이는 행동은 무언가를 결심하고 무기력의 이유를 돌아보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