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따 해변에서의 마지막 날. 그와 나눴던 마지막 대화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대화 내내 왼손에 쥐고 있던 빈땅 맥주와 약간의 술 냄새, 그리고 꾸따 해변의 석양까지.

그와의 첫 만남은 바뀐 호텔을 찾지 못해 꽤나 고생했던 날이다. 그날 오전 두 가지 약속이 있었는데
그 탓에 모두 지키지 못했다. 그 외 몇 가지 스트레스가 날 괴롭혔고 매우 절망적 기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뒤늦게 호텔을 찾았고 17kg 두개의 캐리어에 담긴 짐을 풀었다. 이왕 약속에 늦었으니 밥이라도 먹자고 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들러 한국 라면을 먹었다. 발리의 미고랭과 나시고랭을 찬양하던 우리가 라면을 찾은 이유는 익숙한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라면은 타국에서 가장 간편하게 찾을 수 있는 익숙함이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꾸따 해변을 찾았다. 꾸따 해변은 석양과 서핑이 유명한 곳이다. 우린 그곳에서 찰리와 만나기로 약속했다. 찰리는 서핑을 가르치고 보드를 대여하는 발리 현지인이다. 하지만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났기 때문에 찰리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대신 바리가 우릴 맞았다.

깨진 앞니빨에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 호리호리한 몸매의 바리는 찰리의 배다른 형이라 자신을 소개했다. 급작스런 가족사에 고백에 당황했으나 아무렇지 않게 말했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반응했다.

“응 그러냐고 반갑다고.”

찰리 대신 바리에게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 은영 씨와 함께 서핑을 배웠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미 바리를 알고 있었단다. 그에게 서핑을 배우기 위해 혼자 이곳에 왔다고 했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만 해도 나오는 유명한 서퍼 바리를 우리만 몰랐던 것이다.  바리는 한국에서 배웠던 것과 다르게 모든 걸 천천히 가르쳤다. 천천히 일어나 자세를 잡고 파도를 타라고. 빨리 일어나 자세를 잡아라고 했던 한국의 그것과는 다른 가르침이었다.

바리가 서핑을 하는 모습

그의 가르침은 한국에서 배웠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8박 10일간의 일정 중 절반 이상을 꾸따에서 보냈다. 그곳에 머무는 내내 촬영을 위해 해변에 갔고 바리를 만났다.
영어가 서툴러 외국인 모델 섭외에 어려움을 겪던 우리에게, 낯선 이방인에 불과했던 우리에게 바리는 대신 외국인에게 말을 걸거나 모델을 하기에 괜찮을 법한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발리에서 보낸 대부분 여전히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에 대한 기억마저 좋게 남아있진 않다.
무작정 화를 냈던 사누르의 선착장 중개인, 5분 거리를 20분으로 만드는 마법의 택시기사, 야한 농담을 하다못해 퇴폐업소에 데려간 황당한 우버기사, 그리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찰리마저 마지막 날 우리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모든 것이 좋았으나 사람에 대한 기억만큼은 실망스러운 것으로 남아있다.

수많은 발리인이 끊임없이 대마초를 권했던 장소

꾸따 해변에서의 마지막 날. 예정된 촬영을 모두 마쳤고 해도 떨어졌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걸 이미 알고 있던 바리가 먼저 우리가 있는 곳을 찾았다. 진의까지 알 수 없으나 아쉬워하는 표정이었고 실제 눈빛이 그러했다. 빈땅 맥주를 많이 마셨는지 약간의 술 냄새마저 풍기었다. 마지막으로 바리가 내게 말하길, 영어로 대화했고 정확히 이해했다는 가정하에, 꾸따 해변의 현지인은 진정한 서퍼가 아니다. 그들에게 서핑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 실제 서핑을 좋아하지도 제대로 가르칠 수도 없다고 했다. 비록 짧은 기간 머물렀으나 내가 보기에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또다시 발리에 오거든 서핑을 배우고 싶거든 꼭 다시 본인을 찾아오라고 했다. 그땐 지금 보다 더 오래, 제대로 배워가라고. 빨리빨리가 아니라 천천히.

그땐 지금보다 더 오래, 제대로. 빨리 빨리가 아니라 천천히.

그러겠노라고 손가락만 안 걸었지 사나이대 사나이로서 약속했다.
악수와 간단한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마쳤다. 여전히 그의 왼손엔 빈땅 맥주가 들려있었고 꾸따 해변은 석양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발리 현지에서 구매한 꾸따 해변의 석양, 그리고 고양이 그림

그리고 원래의 일상이 있던 한국에 돌아왔다. 그곳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꾸따 해변이 그려진 그림과 함께.
한국에 돌아온 뒤 더 자주, 더 열심히 서핑을 했다. 큰 파도를 자유롭게 타던 바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군대 얘기하듯 발리에 대해 떠들었다. 그곳에 가면 꾸따 해변의 너무나 아름다운 석양이 있고 한국 맥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죽여주는 맛의 빈땅 맥주가 있고 서핑하기 좋은 파도가 있고 그리고 진짜 서퍼 바리가 그곳에 있다고.

꾸따에도 없고 발리에도 없고, 인도네시아 그 어디에도 더 이상 그는 없다.

하지만 바리는 더 이상 그곳에 없다. 발리에서 만난 또 다른 친구 아리로부터 그의 소식을 들었다. 믿을 수도, 믿고 싶지도 않았다. 이유가 궁금했으나 끝내 묻지 않았다. 그들의 가까운 친구들이 그랬듯 우리 역시 바리를 가슴속에 묻기로 했다.

그곳에 가면 여전히 아름다운 석양과

시원한 빈땅 맥주, 서핑하기 좋은 파도가 있을 것이다.

여전히 발리의 모든 것이 그립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또다시 발리로 떠나고 싶다.  언젠가 다시, 분명히 발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때의 난 꾸따 해변의 스타벅스 맞은편에 위치한, 몇 개 안되는 서핑 보드와 의자가 놓여진, 그리고 해진 파라솔이 있는 바리가 있던 그곳을 다시 찾을 것이다. 보드 위에서 마음껏 파도를 즐길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일어나 파도를 즐길 것이다. 그리고 바리를 기억할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진심과 노력, 서퍼로서의 태도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와의 마지막 대화, 대화 내내 왼손에 쥐고 있던 빈땅 맥주와 약간의 술 냄새, 그리고 꾸따 해변의 석양까지 말이다.

내가 발리를 잊지 않는 한 바리 역시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