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다 죽을 수도 있어요_포항 조방 낙지[박주영]

2017년 8월의 어느 날.

휴가 중 나는 포항에 들렸다.
성인이 된 이후부터 20대의 젊은 시절을
온전히 보냈던 도시라 그런지 제2의 고향과도 같다.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있듯이 포항에도 유명한 음식들이 많다.
과메기, 물회, 죽도시장의 각종 해산물들, 대게 등
말만 들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이 음식들을 뒤로하고
나는 다른 음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음식은 “조방낙지” 나는 원래 조방 낙지가 포항이 원조인 도시인 줄 알았다.
하지만, 포스팅을 위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조방낙지는 *일제 강점기 때 지금의 부산 자유시장 자리에 있던
조선방직 인근의 낙지 집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 근로자들이 하루의 피로를 얼큰한 낙지볶음으로 달랬다고 하는데,
이후 이 일대에 낙지 거리가 형성되면서 부산의 명물이 된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아무튼 나는 이 미끈미끈하고, 흐물거리며 다리가 많은
오징어 같은 종류의 해산물을 좋아한다.
때문에 낙지도 예외일 수 없다.
그리고 조방낙지는 내가 포항이라는 도시를 떠올릴 때
큰 키워드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추억이 깃든 음식이다.

서론이 길었다. 서론은 뒤로하고 바로 본론 아닌 결론부터 가자면, 무조건 맛있다!
결론을 말했으니 어떻게 이런 결론이 도출되었는지 본론을 잠깐 살펴보자.

포항은 크게 북구와 남 구로 나누어져 있고,
북구에서도 육거리라는(거리가 진짜 6개이다.) 곳이 있는데,
이 중 중앙 실개천을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골목으로 들어서면
유독 노란색 간판을 달고 있는 집이 눈에 띈다.
포항에서도 유명한 조방낙지 본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간판부터 노란색이다.
예사롭지 않다.
맛집 냄새가 풀풀 난다.
간판에 써져있는 ‘조방낙지’ 위에는 당당히 ’30년 전통 원조’라는 단어가
처음 가보는 사람도 믿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깔끔하고, 조용한 분위기.
저 멀리 주인이 마치 직접 서예로 작성한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메뉴판이 반긴다.
심지어 궁성체이다.
창업주가 얼마나 진지하게 고심하며 메뉴를 선정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주로 낙지전골이나 낙지볶음을 시킨다.
나는 당연히 낙지볶음을 시켰다.
매콤함을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볶음 요리니까 당연히 +우동 사리 추가.

정갈해 보이는 밑반찬들이 먼저 들어오고,
메인 메뉴인 낙지가 연보랏빛 자태를 뽐내며 서서히 들어온다.
‘곧, 빨개지겠지..’ 온갖 맛있는 상상을 하며, 천천히 버너를 켠다.
그리고 기다린다.
정확히 1초에 4번씩 끓는 기포가 발생할 때쯤에 불을 서서히 줄이고,
낚지 다리와 우동 면을 동시에 집어들고, 앞접시에 조심스레 올린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줄기의 생각

‘사랑이다.’

호호 불며 달콤 매콤한 낚지의 불향을 마치 봄날의 민들레 씨앗이 흩날리듯 입안 곳곳에 퍼뜨린다.
쉴 새 없이 빨라지는 윗니와 아랫니의 조우.
마치 슈퍼카의 4행정 사이클보다 빠르다.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9XSW068YJbg&w=854&h=480]

화투를 소재로 한 어느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유감이지만 틀렸다.
조방낙지 앞에서 손보다 빠른건 입이다.

낙지를 담기위해서 손이 움직일 때 이미 입은 낙지를
위로 보내고 난 후 심심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접에 놓여있는 밥 공기 위에 그대로 떠온 조방낙지와 액기스 국물,
야채를 한번에 담고 썩썩 비빈다. 그리고 한 술 크게 떠서 입에 담는다.

약간 맵지만 코를 기분좋게 만드는 불향.
원래는 5가지 맛을 느낄 수 있지만,
그 순간만큼 일심동체되어 조방낙지 맛만 느낄 수 있도록 변형된 혀.
이미 밥상앞에 조방낙지 빼고 모든 것이 아웃 오브 안중인 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보글부글보글부글.

그냥 이대로 죽어야 한다.

먹고 죽자 라는 말이 이해가 1도 되지 않았는데,
이 음식앞에서는 이해가 된다.
뭘 할 수가 없다.

한 차례의 조방낙지 사태가 지나간 후,
조금 전 죽고 싶었던 마음을 추스리며, 다음 계획을 조심스레 세워본다.

철저한 한국인이다. 볶음 요리를 먹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이겠는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음 단계는 이미 정해져있다.
아마 한반도 건국 당시부터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운명이다.

바로 볶음밥.
남은 국물과 야채를 좀더 추가한후,
자글자글하게 끓이고 밥 두덩이를 넣고, 사브작 사브작 볶기 시작한다.
솔직히 이때는 맛도 맛이지만, 소리가 한번 더 나를 죽인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소리였다.

밥알들이 그릇에 붙는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날 때 쯤
맛을 본다는 핑계로 한 술 크게 떠서 입에 넣어본다.
그리고 잘 모르겠다는 거짓말을 하며, 상대방을 안심시킨 후 한 술 더 떠서 입에 넣는다.
고개를 두 번 갸우뚱 하고,
세번 째 숟가락을 볶음밥에 가져다 대는 순간 상대는 알아챈다.
첫판부터 장난질이냐고. 그렇다. 함께한 일행은 빙다리 핫바지가 아니였다.
그래서 사이좋게 이등분으로 나눈 후,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는다.

결론은 조방낙지는 죽음이며 동시에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