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이동국과 최혜진을 보면서

이동국과 최혜진을 보면서

최혜진 선수가 드디어 아마추어 딱지를 떼고 프로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스폰서도 역대 신인 최다 금액으로 계약했다. 인터뷰에서 뱉는 말도 또랑또랑하고 외모도 이쁘다. 거기에 아직 18세라는 미성년자 신분. 언론과 팬들 그리고 골프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편 비슷한 시기 축구에서는 이동국 선수가 불혹의 나이에 다시 대표팀에 발탁되어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동국 선수는 최종예선 2경기에서 한번은 교체 한번은 선발로 나가 크게 인상적인 활약은 하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그의 명예로운 대표팀 은퇴를 바랬던 입장에서 갑작스런 발탁과 불운까지 겹친 미미한 활약이 못내 아쉬웠다. 냉정하게 이동국 선수를 다시 대표팀에서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더 그 아쉬움은 컸다.

갑자기 최혜진 선수 얘기를 하다 다른 종목의 이동국 선수를 이야기하는 것은 한가지 공통점 때문이다. 이동국 선수가 지금은 불혹이지만 그의 19세 시절 월드컵 무대 데뷔전은 최혜진 선수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더 국민적인 센세이셔널을 일으켰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어린 나이의 나, 그리고 지금처럼 국제화 정보화가 덜 되어있던 시기에 대다수의 무지한 국민들은 아시아 예선을 위풍당당하게 통과한 한국이 브라질과도 대등하게 한판 붙을 수 있을거란 크나큰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본선에서 대한민국은 멕시코, 네덜란드에 연이어 복날 개맞듯 두드려 맞으며 굴욕적인 참패를 당했다. 예선에서 아시아 팀들을 거의 가지고 놀듯했던 한국 대표팀은 본선에서는 거꾸로 이렇다 할 저항한번 못한채 무력감을 느껴야했다. 비로소 세계의 벽, 진정한 강팀이란 무엇인지를 깨닳은 국민들의 실망감과 충격은 대단했다.

특히나 네덜란드와의 경기가 그랬는데 5대0으로 이겼으면 이겼지 져본 걸 본적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그 경기는 정말 ‘참교육’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경기에서조차 희망은 있었다. 바로 앞서 말한 이동국 선수였다. 19세의 나이, 갓 프로에 데뷔했던 풋풋한 신인의 겁 없는 슛팅. 비록 그 슛은 아쉽게 골대 위를 빗겨나갔으나 경기 중 위협적인 장면이라곤 그거 하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 이동국이라는 10대 신인 슈퍼스타라는 희망을 본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10대의 슈퍼스타라는 게 한 스포츠 종목에서 얼마나 나오기 힘든 것인지. 심지어 고종수라는 라이벌까지 있었으니 그땐 더 배불러서 몰랐다. 20여년이 흘러서 그시절 그만큼의 임팩트와 재능을 보여주는 10대의 슈퍼스타 신인은 나오지 않고, 심지어 악재와 관리 부족으로 나락에까지 빠졌던 그 선수가, 불혹이 가까워 대표팀에 다시 차출되는 상황을 그때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최혜진 선수의 프로 데뷔를 보며, 나 역시 찬사를 보냈다. 누구보다도 이 10대 슈퍼스타 신인이 잘되어 골프의 대중화와 폭발적 인기를 다시 견인했으면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LPGA 우승자를 너무도 많이 배출하는, 그리고 젊고 이쁜 스타를 너무 많이 보유한 한국 여자 골프계가 이 10대 슈퍼스타 신인의 가치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언론의 관심은 온통 스폰서를 얼마에 계약할지에 가장 집중되어 있었고, 10대의 슈퍼스타라는 게 스포츠 종목에 얼마나 벼락같은 축복인지, 이게 얼마나 나오기 힘든 일인지를 모른채 키우고 보호하기보단 소비하기에 바빠 보였다.

이동국이 그랬다. 그는 소비되기에 바빴고, 악재가 겹치고 부상과 관리 부족, 잘나갈땐 띄워주고 못나갈땐 씹어대는 언론, 끝없는 슬럼프 등을 겪으며 추락속에 가까스로 부활했다. 최혜진의 등장이 지금은 그저 신기하고 소비하기 좋을진 모르지만, 정말 모르는 거다. 10대에 이렇게 찬란한 재능을 보이는 스타가 계속 나오리란 보장은 전혀 없다. 최혜진 이후 10년, 아니 어쩌면 20년동안 더 이상 10대에 이런 재능을 보일 선수는 안 나올수도 있다. 지금의 최혜진 선수에게는 과도한 소비도 좋지만 키워주고 보호하려는 관심 역시 동시에 필요하다.

최혜진 선수의 롱런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