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와 고사리

큰아버지께서는 고사리를 드시지 않았다. 큰집에 제사가 있을때면 제사상에 늘 올라오는 진한 갈색의 고사리를 절대 드시지 않았다. 물론 평소에도 고사리를 드시지 않았는데, 가족 그 누구도 그 이유를 물어본적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머리에서 아직 파르라니 빛을 내고 있던 갓 제대했던 큰 사촌형이 제사상에 올라온 고사리를 보며 했던 말이 기억난다.

“고사리는 음지 식물이라 남자가 많이 먹으면 안좋대.”

아마 군대에서 지금으로 치면 가짜뉴스 같은 것을 듣고서 동생들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성인이면서도 예비역 군인아저씨가 그렇게 말했으니 순진했던 동생들은 모두들 그렇게 믿었었다. 그리고 아마, 큰아버지께서 고사리를 드시지 않던 이유를 큰형의 말에 빗대어 이해했으리라.

그리고 몇년 뒤, 큰아버지께서 위암으로 투병하실때 온 집안식구가 그를 붙잡으려 발버둥쳤다. 신이 있다면 처음에 그는 우리 가족의 편인 것 같았으나 점점 증세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버지께서 고사리가 먹고 싶다 하셨다. 잠시나마 어리둥절했던 일가친척 몇몇분이 고사리 나물을 마련해 드시게 하였으나 번번히 뱉으셨다. 속에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상한 것은 항상 그는 그 고사리가 중국산이라며 그릇을 물리셨다.

그랬다. 어린시절부터 온갖 농삿일로 작물들에 대해 깊은 내공이 있는 큰아버지께서는 그 모양새만 봐도 이것이 중국산인지, 국내산인지 아셨던 모양이다.

당시 큰아버지의 어머니, 즉 할머니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단순한 병으로 입원해있는 줄 아셨다.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라 가족들이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머니께서는 큰아버지가 고사리를 먹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듣고 허리춤에 고사리 주머니와 호미를 차고 온 가족과 함께 뒷산에서 고사리를 캐러 다니셨다.

한가득 고사리를 안고, 별다른 양념도 없이 제사상에 오르는 단순하고 조촐한 고사리 나물을 큰아버지께 드렸다. 국내산이어서인지, 아니면 할머니의 손길이 닿은 고사리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큰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이 잘 드셨다. 그렇게 두어번 고사리를 양껏 드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다.

일년 뒤, 그의 제삿날이었다. 큰아버지를 잃은 가족들의 슬픔이 가시기엔 너무도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가끔 잊었던 웃음과 미소들이 보였다. 슬픔과 함께, 온가족들을 더 단단하게 묶어주었던 그의 투병생활 덕분에 슬픈 눈을 하면서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사이에 태어난 조카가 낯선 어른들을 보며 울부짖기도 했다. 다만 조금은 더 화목해진 가족들 사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의 모습만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감옥같은 상심의 방안에서만 지낼 뿐이었다.

제삿상에 이런저런 음식을 올릴 때, 가족들 사이에 고민꺼리가 하나 생겼다. 고사리를 올려야할지 말아야할지로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가 평소에 고사리를 먹지 않았으니 굳이 안올려도 된다는 파와 그래도 제삿상 구색은 맞춰야 한다는 파로 나눠졌다. 전통에 그리 민감하지 않는 가족문화라 이런 논쟁이 가능했지만, 제삿상에서도 어느덧 조금씩 세대교체가 되어가는 우리들과 어른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다.

그러다 할머니께서 방 밖으로 나오시더니 한마디 하셨다.

“가가 어데, 고사리가 싫어서 안묵은게 아이라. 노상 내가 힘들게 고사리 따러 댕긴다고 싫어해서 안캤나.”

할머니의 붉은 침묵, 온 가족들의 숙연함이 큰집을 감쌌고, 곧 이어 제삿상에 고사리가 놓여졌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던가, 아들은 고사리가 싫다고 했다. 가족의 노고와 사연이 담긴 음식은 때론 먹기 힘들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