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님, 좀 편하면 안 데님?

멋 부리다 얼어 죽어도 멋

유행이나 멋이라는 거, 때때로 사람을 참 비합리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바지를 조금 내려 입거나 올려 입는 게 유행이라면 그러려니 하지만, 엉덩이가 다 보일 만큼 바지를 내려 입는 건 -멋의 유무를 떠나서- 일단 굉장히 불편할 거다. 팬티 고르는 것도 신중해야 될 테고.

또 10여 년 전, 내가 학생일 때 우리 동네에선 거의 타이즈나 다름없는 수준의 교복 바지가 유행이었다. 지금에 와서 스키니 핏이 대중화된 걸 보면, 시대를 앞선 패션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엔 교복 소재에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던 시절이라 신축성이라곤 전혀 없는 교복바지를 타이즈처럼 입는 건 ‘저는 꼿꼿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팔자 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는 선언을 하는 셈이었다.

왜 데님은 빳빳해야 하는가

내가 대학생이 된 후로는 아주 빳빳한, 그래서 겨울엔 저 혼자 서있을 수도 있는, 그런 생지 데님 바지를 사서 며칠을 밤낮으로 입으며 ‘길을 들이는’ 게 유행이었다. 덕분에 땀이라도 차면 팬티며 사타구니에 푸르뎅뎅한 데님 물이 배기도 했지만, ‘입을수록 더 편해지고 내 몸에 꼭 맞는 워싱이 생기니까’라는 자기 위안을 했더랬다. 물론 지금도 이런 맛에 생지 데님 바지를 사 입는 사람들도 몇몇 있지만, 그 때엔 그게 좀 유행처럼 번졌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렇게 지나간 유행을 돌이켜 보면 참 미련스러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아니, 솔직한 말로, 빳빳한 생지 데님 바지에다 대고 무슨 ‘헤리티지’니 ‘전통’ 이니 하는 말을 갖다 붙이며 마케팅을 한다지만 결국 생산자는 복잡한 소재 고민이나 별도의 워싱을 하지 않아도 되고, 소비자만 이상한 유행에 심취해 사타구니가 푸르뎅뎅해지는 그런 바지 아닌가. 계단을 2칸씩 오르기도 힘들 만큼 불편한 그 바지를, 나는 무엇하러 그리 아꼈던가.

데님, 좀 편하면 안 데님?

이제는 그 시절보다 살도 꽤 쪘고, 또 보다 더 실용주의자가 된 덕에 데님 바지를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바로 핏과 신축성이다. 핏이야 옷을 고를 때 기본적으로 봐야하는 요소지만, 특히 데님은 신축성이 없거나 좋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핏이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다. 폴리우레탄이 2% 정도만 들어가도 생지 데님보다는 훨씬 활동이 편하다. 4~5%정도 들어가거나, 사방 스판 소재가 섞여있다면 청춘 만화에나 나오는 ‘청바지에 흰 티 입고 멋지게 농구 한 게임’ 도 가능하다. 더 이상 불편하고 미련한 멋을 쫓을 필요가 없다.

얼마 전에 대학 후배들과 만나 술 한 잔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더니, 날 보고 아재라고 했다. 빳빳한 데님 바지 때문에 무릎 뒤 오금이 쓸리고 땀이 차서 수시로 바지 종아리 부분을 당겨 내리는 그 후배를 보며, 나는 그냥 합리적인 아재가 되기로 했다. 아니, 데님의 불편함, 빳빳함이 무슨 불가침의 영역도 아니고, 데님이 좀 편하면 안 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