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라면 핑크!

여자가 남자 옷 입으면 ‘보이쉬’하다며 스타일의 하나로 인정받지만, 남자가 여자 옷 입으면 변태 취급받기 딱 좋다. 비단옷의 형태뿐 아니라 소재나 색에 있어서도 남성에게 인색하긴 마찬가지다. 이러다 보니 남자들 스타일이 다 거기서 거기다. 시도 가능한 스타일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패션에 있어서는 남성이 설 자리가 별로 없다.

 

그래서일까? 점차 남녀 성 역할의 고정관념이 허물어지는 최근 추세에 따라, 남성 패션계에는 ‘젠더리스’가 트렌드로 떠올랐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남성의 연약함을 굳이 숨길 필요 없다’며 남성 패션에 시스루를 접목시켰다. 기존 관습과 남성성의 고정관념을 탈피해 스타일의 경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시도다. 그래서, 걸리쉬가 아닌 젠더리스. 남자들이 오버 니삭스를 신고 탱크톱 브라를 입겠다는 건 아니니까.

 

우선, 2017년도 남성 패션 잇템은 반바지다. 기존에 남자들이 많이 입던 박스형 반바지가 아닌,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길이 반바지. 여기 품이 넉넉한 티셔츠나 트렌치코트를 코디하면 시크한 느낌이 나고, 깔끔한 셔츠와 함께 입으면 클래식한 느낌이 난다. 많은 남성 패션 브랜드들이 2017S/S 컬렉션에서 이처럼 짧은 반바지를 중심으로 시원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심지어 엠포리오 아르마니는 짧은 반바지에 긴 양말 패션을 선보였다. 아재 패션이 최신 트렌드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시스루 스타일도 등장했다. 속이 훤히 비치는 니트에 셔츠를 레이어드 하여 그야말로 젠더리스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얇은 면이나 실크로 만들어진 시스루 아이템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기존 남성복과 어우러졌다. 셔츠나 슈트, 조끼 등과 조합해 과하지 않게 활용된 시스루는 도리어 남성적이라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핑크는 진작부터 인기 있는 코드지만, 점차 그 열기를 더 해가는 추세다. 핑크 톤도 다양해져서 강렬한 원색부터 은은한 다운 톤까지 다채로운 컬러 배리에이션을 갖추었다. 핑크 슈트와 블랙 팬츠. 핫핑크 팬츠와 네이비 셔츠. 핑크는 이제 젠더리스라고 따로 칭할 것도 없이 보편화된 남성 패션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요즘은 어린이 집에서도 파랑은 남자색, 분홍은 여자 색 같은 스테레오 타입을 가르치지 않는다. 남녀평등으로 가는 시대에 패션도 보다 열린 사고로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다소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남성이 파격을 시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작은 시도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패션의 변화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경직된 사회 문화라던지, 남성 권위주의 같은 것들. 나는 어릴 적 변신 소녀가 나오는 TV 만화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하는데, 고추 안 떨어지고 수염 슝슝 난 아저씨로 잘만 컸다. 근육 빵빵 형님들이 핑크 피케셔츠 각 잡아 딱 입어주면 얼마나 멋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