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적당히 무지해야 하는 이유

‘무식’이라는 말을 우리는 그다지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면 언뜻 한번 돌려만 생각해보아도 소위 이런 ‘무식(?) 성향’의 저돌적 사람 중에 꽤 성공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창회에서 늘상 나오는 말이 ‘학교다닐때 쟤 나보다 공부 못했는데’다. 세상에 모든 곳에 똑똑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곳에서는 유식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무식하다. 따라서 한 사람이 전적으로 무식하다 유식하다의 단정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아예 ‘진취적으로 무지’한 것이 필요하다고 소리 높여 주장한 사람이 있다. 일반인이 아니고 이론가이자 실천행동가인 학자로 유명한 알버트 허쉬만이다. 그는 유태인으로 1915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났고 나치에게 온갖 고초와 고난을 겪으면서 살아남았다. 그는 이 지옥같은 시간을 거치면서 삶의 통찰하는 깊은 지혜를 얻었다고 종종 말했다고 한다.

그가 주창한 것이 ‘진취적 무지론’이다. 그는 2차대전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수용소에 갇힌 포로들을 탈출 시켰다.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그가 탈출 시킨 포로중에 ‘폭력의 세기’를 써서 세계적인 철학자로 인정받은 한나 아렌트도 있었다. 허쉬만은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살아남은 사람중에 하나의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의도된 또는 의식적인 무지함이었다. 예를 들어 수용소를 탈출하여 살아남을 확률은 낮다. 그런데 대부분의 포로들은 이런 확률에 위축될 뿐더러 더 심한 것은 탈출해서 잡히면 받을 고문을 두려워해 탈출을 시도하지도 않고 죽어갔던 것이다. 허쉬만은 이러한 성향들들을 살피면서 이 이론을 개발도상국가에 적용시켰다.  자원도 없고 자본도 없고 도무지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 이를 극복해내는 것은 반드시 해내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 ‘진취적 무지’라고 설명한 것이다.

현재 열위에 있는 국가나 개인은 실패에 대해 더 아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대해 오히려 무지함으로써 기적을 이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것은 사업가들에게도 적용된다. 너무도 잘 알면 오히려 사고를 못친다.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가 되면 적당히 무지한 것이 바로 사업의 비결일 수 있다. 우리는 항상 확률을 따진다. 하지만 성공한 사업가는 그러한 것에 오히려 무지하다.

“나는 일을 할때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1%도 끼워넣지 않는다. 무조건 될거라는 생각 80%와 되게하겠다라는 생각 20%만 한다”  기업가 정주영이 한말이다.  사람은 죽기 전에 이미 생각이 죽는다. 실패를 상상하고 두려워하기보다는 차라리 무지한 것이 낫다. 때로는 똑똑보다 무지한 것이 더 필요한 이유다.

예술을 길고 시간은 빠르다 우리의 심장은 튼튼튼하고 용감하나 싸맨 북소리처럼 둔탄하고 무덤을 향한 장송곡을 치고 있느니

이 넓고 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의 노영안에 말없이 쫒기는 짐승이 되지 말고 당당히 싸우는 영웅이 되라

– 롱펠로우 ‘인생찬가’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