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의 갯수가 일의 갯수를 넘어설 때

언젠가 들었던 말.

‘취미의 세계가 없는 사람은 사업이 빈한하다’

희안한 말이었다. 내가 아는 사업가의 정의라면 모름지기 눈뜨고 있을때, 심지어는 잠을 잘때도 사업 생각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취미라니.그런데 쓸 시간이 있나?

이후에 그 생각은 끝을 보지 못했던 듯 하다. 좀 아쉽다. 그때 그 질문의 끝장을 봤더라면 나의 삶은 지금쯤 좀 더 풍요로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취미란 무언가? 시키지 않아도 필요한 장비를 사고 시키지 않아도 즐겁게 하고 할때마다 엔돌핀이 솟고 뭐 이런거 아니던가.

취미라고 거창하게 말해서 그렇지 알고보면 실은 노는 것 아닌가. 즐겁게 노는 것. 그런데 이후에 생각해보니 내가 알기에 죽도록 일만 하는 사람은 큰 사업가는 못되었던 것 같다. 다양한 사업의 영역을 넘나들었던 진정 큰 사업가들은 인생과 사업에 향기가 났다. 그건 아마도 그가 사업처럼 즐기는 취미의 영역에서 온 듯하다. 그래서 ‘취미의 세계’를 말한 사람은 사업을 크게 키웠던 것일까? 모두에서의 말을 한 사람은 한국 최고의 사업가이자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이다.

한 주를 정리할 때 주로 엑셀을 쓴다. 그리고 그 엑셀을 쓸때 정해놓은 룰이 있다. 예를 들면 모든 것을 포함하게 쓰는 것이다.

세상의 사람을 구분할때, 남자, 여자라고 쓰면 그외는 없다. 이러면 제대로 쓴 것이다. 나이를 말할때도, 10대이하, 10대에서 40대, 40대 이상 이라고 하면 예외인 사람은 없다. 이것도 제대로 쓴 것이다.

이 공식을 나에게 적용해보니 갑자기 무언가 빠진 것을 알게됐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적어봤더니, 해야할 일, 휴식, 잠, 즐거운 것. 이렇게 구성된다는 것을 알게됐다. 휴식이고 잠이야 정해진 것이니 그렇다치고, 나는 즐거운 것의 컬럼에 가서 갑자기 멍해졌다.

일의 리스트는 천만가지인데 즐거운 것의 리스트에서는 갑자기 쓸 말이 없었다. 영화보기, 술마시기, 그리고 음.. 그리고 엉… 한참을 생각해야 추가로 몇가지가 떠올랐다. 그마저도 시원찮았다. 자전거타기, 등산 정도를 겨우 적어넣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의 삶은 그저 수많은 일의 가짓수로 채워져 있었다. 일을 빼면 나는 뭘할까? 살아온 많은 시간 동안 해야할 의무들과 해야만 하는 강제들이 나의 시간의 주인이 되어 온 것이 아닐까?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이런 현상을 보고 한국 사람은 놀줄을 모른다고 꼬집은 적이 있다. 노는 것 즐거운 것을 잘 안하니 그것의 리스트가 빈한하고 그러니 자연히 일만 하고, 의무와 스트레스, 책임으로 인생이 가득차니 인생이 재미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런 경향들이 사회적으로 발전하여 한국인들은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들을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한다. 저 분은 이런 거, 저런 거를 싫어해. 정말 귀신 같이 안다. 그런데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은 것으로 인생이 행복해지지 않는다. 인생은 좋아하는 것들을 함으로서 행복해진다. 진정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의 갯수를 적어보라. 그 갯수의 길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의 길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일만으로 구성된 사람이 온전하게 인생을 살아가리라고 믿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 인간은 원래 놀도록 만들어졌다. 원시시대에는 수렵과 채집을 하여 먹을 것만 있으면 춤추고 벽화를 그리고 놀았다. 우리가 일과 노동으로 하루를 채우게 된 건 계급사회, 국가가 만들어지고,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였다.

이제 신 수렵시대, 신 채집시대다. 그런데 지금 채집하는 것은 나무열매나 곤충이 아니다. 정보이자, 아이디어이자, 새로운 통찰이다. 4차혁명으로 상징되는 이 격변 속에서는 다양하게 놀고 즐겁게 일하는 사람들이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고 세상을 바꾸는 시대다.

다시 한번 적어보자. 일의 갯수가 즐거움의 갯수를 얼마나 넘어서는지. 그리고 즐거움의 갯수를 억지로 라도 적어보자. 즐거움의 갯수가 즐거움의 질이 충분할 때 삶은 의무가 아니라 창조의 욕구로 가득 찬다. 그것이 알 수 없는 미지의 미래에서 살아남은 방법 중의 하나일지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