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옷’_ Bottom_ ③ 짧을수록 길어 보인다? 바지 길이 Tip!

알뜰한 어머니들이 으레 그러셨듯이, 나의 어머니도 내가 어릴 적엔 항상 내 신체 사이즈보다 큰 옷을 사오셨다. 키가 금방 자라다보니, 지금 몸에 딱 맞는 옷을 사면 한 철 입고 못 입는, 엄청난 ‘낭비(?!)’를 하게 되니까. 그런 어머니의 깊은 속뜻을 헤아리다 보면, 겨우 174cm에서 멈춰버린 내 키가 죄송스럽기만 하다. 더 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전 이미 늦었어요…

아무튼, 그렇게 한두 사이즈 큰 옷을 사서 입다보면 어느 순간엔 길이만 짧아지는 불상사가 생기게 된다. 그렇게 알뜰히 살림을 하시던 어머니이지만, 유독 짧은 티셔츠, 짧은 바지만은 용납하지 않으셨다. 티셔츠가 짧은 거야 뭐, 요즘에도 남자가 크롭 티나 배꼽 티를 입고 다니진 않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바지는 조금 짧으면 짧은 대로 입어도 될 것 같은데, 어머니는 항상 ‘어딘가 모자란 아이 같아 보인다.’ 며 기장이 짧아진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셨다.

그로부터 수십 년(!) 세월이 흘러, 지금은 정 반대의 패션 공식이 자리 잡았다. 연로하신 어르신이나 과감한 패션을 즐기는 모델들이 아니고서야 발등을 덮는 바지를 입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적어도 신발을 덮지는 않고, 조금 과하게는 발목을 시원하게 드러내는 바지도 흔하다. 다행히 어머니도 그런 변화에 적응하셔서, 요즘 젊은이들처럼 밑단을 ‘롤업’ 하신다.

바지 길이는 별다른 수선이나 노력 없이 다리 길이를 보정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한 가지 역설적인 것은, (어느 정도 기준에서) 바지 길이가 짧아질수록 다리는 더 길어 보인다는 것! 오늘은 T.P.O에 맞는 바지 길이의 종류와 그 효과에 대해 알아보자!

① 격식을 차려야 할 때.

너무 짧아서 흰 발목과 듬성듬성 보이는 털들이 드러나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지 밑단이 두 겹, 세 겹으로 주름지거나 바닥에 밑단이 끌릴 정도가 되어서도 안 된다. 군대에서 정복을 맞출 때, 에스콰이어 군용 단화의 뒷굽 절반 정도에 밑단을 맞춰 길이를 수선하곤 했는데, 격식을 차리기에는 딱 이 정도 길이가 좋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는, 바지 밑단이 구두의 발등을 아주 살포시 덮으면서 한 겹 정도의 주름이 생기는 정도의 길이다.

요즘은 웬만한 정장 브랜드에서도 이 길이보다는 짧게 수선을 추천하는 편이지만, 아직까지도 면접, 결혼식 예복, 턱시도, 장례식 복장과 같이 격식 있는 자리에서 입어야 할 바지는 이 정도의 길이가 가장 보편적이고 적절하다. 이어지는 이번 칼럼 이후 이어지는 ‘밑단 편’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격식을 차려야 할 때에는 밑단의 단면 폭이 17.5~18cm 정도가 되도록 하면 진중하고 깔끔한 인상을 줄 수 있다.

② 세련된 비즈니스 캐쥬얼 룩을 원할 때.

바지 길이의 간단한 공식은, 옷차림이 가볍고 캐주얼할수록 길이는 점점 짧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격식을 차려야 할 때보다는 조금 더 짧아도 괜찮다는 건데, 그 기준은 발목의 복숭아 뼈다. 복숭아 뼈를 기준으로 복숭아 뼈의 절반 정도를 가리는 길이가 좋다. 앞에서 보았을 때, 바지의 밑단이 신발에 닿을락 말락, 하는 정도이다. 신발을 거의 가리지 않기 때문에 답답한 느낌이 없고, 자리에 앉거나 계단을 오를 때가 아니면 발목이 지나치게 드러나지도 않기 때문에 비즈니스 룩으로도 문제없다.

슬랙스나 정장 바지는 길이에 맞게 수선을 하는 것이 좋고, 치노 팬츠나 데님 팬츠는 두세 번 롤업해서 길이를 맞춰도 좋다. 3번 이상 접어 올리게 되면 밑단이 너무 뭉툭해지거나 바지 밑단의 뒤 기장이 말려 올라가게 되니, 두세 번만 접어 올리자. 롤업을 하는 방법이나 두께는 다양하지만 비즈니스 캐주얼 룩에서는 보통 원래의 바지 밑단 폭만큼만 접어 올리면 딱 좋다. 봄, 여름엔 페이크 삭스를 신고 발목을 시원하게 드러내고 가을, 겨울엔 멋진 양말로 센스를 드러내기에도 좋은 길이다.

③ 시원하고 경쾌하게, 캐주얼 룩을 원할 때

자, 이제 말 안 해도 눈치 채셨을 거다. 맞다, 복숭아 뼈를 기준으로 그 위로 – 즉, 복숭아 뼈가 완전히 드러날 정도의 바지 길이가 좋다. 특히 봄, 여름엔 시각적으로도 시원한 느낌을 전해준다. (물론 복숭아 뼈 각질 제거는 필수다!)

이 정도 길이의 바지는 몸에 딱 붙는 슬림 핏이나 스키니 핏이면 진짜 사촌동생 바지 훔쳐 입은 꼴이 되기 십상이다.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이 여유로운 핏의 바지가 좋다. 일자에 가까운 레귤러 핏도 깔끔해 보이고, 무릎부터 발목까지 좁아드는 테이퍼드 핏, 세미 배기 핏도 트렌디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길이가 짧아 신발을 온전히 드러내기 때문에 신발 자랑하기에도 좋다. (물론 자랑할 신발이 있다면..)

④ 반바지는 다리 길이의 ‘반’보다 짧아야 한다.

여름이면 반바지도 많이 입게 된다. 보통 ‘반바지’ 하면 진짜 다리 길이의 ‘반’, 그러니까 대략 무릎을 딱 덮거나 무릎의 중간 정도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정도 길이의 반바지가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 길이는 흡사 긴 양말에 등산용 샌들을 신은 80년대 미국 아재의 느낌만 풍기고, 심지어 다리를 더 짧아 보이게 만든다. 반바지도 긴 바지와 마찬가지로 조금 더 짧아질수록 당신의 다리는 더 길어 보인다.

여유 있는 낙낙한 핏이면서, 무릎을 기준으로 3~5cm 정도 위에 위치하는 길이의 반바지가 최상이다. 반바지는 절대 몸에 꽉 끼거나 붙지 않아야 한다! 조금 짧은 듯한 길이를 세련되게 중화시켜주는 것이 바로 부담스럽지 않은 낙낙한 핏이기 때문이다. 데님 소재의 반바지라면, 무릎까지 오는 바지를 두세 번 롤업해서 길이를 조절해도 멋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