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옷’_ Bottom_ ② 바지, 종류도 가지가지 2편

③ Slacks

약 7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모델 배정남이 ‘메카닉 팬츠’ 라는 이름으로 면 소재의 슬랙스를 선보인 이후로 슬랙스는 정장 바지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영역을 차지하는 바지 종류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원래 슬랙스는 ‘느슨하다’는 뜻의 형용사인 슬랙(slack)에서 따온 명칭이다. 1930년대에 입기 시작한 여유 있는 헐렁한 바지나 군대용 작업바지를 슬랙스라 불렀다.

얼핏 보기엔 정장 바지 같은 소재이지만 요즘은 슬림 핏, 와이드 핏 등등 다양한 핏으로 제작되어 일상복으로 애용된다. 기본 슬랙스에 흰 셔츠만 입어도 코디의 80%는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보니, 봄, 여름마다 일명 ‘모나미 룩’으로 불리는 검은 슬랙스에 흰 셔츠 차림의 남성들이 길거리에 즐비하다.

소재는 주로 폴리 혼방이 많다. 면, 울, 레이온 등등의 소재와 폴리 소재를 혼방한다. 상대적으로 울 혼방이 형태적 안정성이 좋고 쾌적하기 때문에 가격이 높고 질이 좋은 편이다. 단, 울이 섞여 있으면 물세탁이 불가능하다는 관리의 불편함은 있다. 면, 레이온 혼방은 물세탁이 가능하지만 울 혼방에 비해 주름이 잘 가고, 광택감이 저렴해 보인다는 단점이 있다.

한 겨울에 입는 두터운 모직 소재가 아니고서야, 슬랙스는 대부분 두께가 굉장히 얇은 편이다. 그래서 꼭 고려해야하는 측면이 바로 신축성인데, 슬랙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류의 바지에서 신축성은 보다 편안한 착용감을 위한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신축성의 정도는 제품의 소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스판’ 이라고 표기하는 온라인 쇼핑몰도 있긴 하지만 정확하게는 ‘폴리우레탄’ 이라고 표기된 내용을 확인해보면 된다. 폴리우레탄 함유량이2%~3% 정도라면, 앉았다 일어나기나 계단 오르기 등의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으면서도 탄탄한 느낌을 주는 바지라고 볼 수 있다. 간혹 5% 이상의 폴리우레탄 함유량을 보이는 바지들도 있는데, 이 경우 거의 트레이닝복에 버금가는 신축성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다른 곳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심지어, 폴리우레탄이 12%나 함유된 미친 신축성의 바지도 있다. 바로 생비스의 Z208 시리즈 바지들처럼.

블랙, 차콜 그레이, 네이비의 기본 색상 슬랙스를 구비해둔다면 데이트 룩, 비즈니스 캐주얼룩으로 손색없을 것이다. 정장처럼 진중한 느낌이 아니라 세련되고 젊은 느낌의 바지이기 때문에, 길이는 발목을 시원하게 드러내는 9부 길이까지도 좋다. 허벅지가 꽉 끼는 슬랙스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으니,(다시 말하지만, 원래 슬랙스는 ‘느슨하다’는 뜻의 형용사인 슬랙(slack)에서 따온 명칭이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허벅지 라인을 중점에 두고 사이즈를 고르는 것이 좋다. 이런 슬랙스만 몇 벌 갖고 있어도, 코디가 쉬워진다. 투박한 운동화보다는 스니커즈, 너무 딱딱한 구두보다는 로퍼나 드라이빙 슈즈로. 상의는 너무 화려한 그래픽 티셔츠나 철 지난 체크 셔츠만 아니면 오케이! 깔끔한 손목시계에 지적인 안경까지 더한다면 금상첨화!

④ Linen

여름철 가장 애용되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린넨일 것이다. ‘마’ 원단으로 짜인 직물을 통칭하는 린넨은 통기성이 우수하고 성긴 조직에 비해 내구성이 좋다. 그래서일까, 의복용 섬유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집트의 미라가 입고 있는 포의도 이 린넨 소재라고 한다!)

린넨 바지는 원단 특성상 표면이 고르지 않아 면, 데님 등에 비해 피부에 닿는 면적이 적어서 쾌적한 착용감을 느낄 수 있다. 또 느슨하게 짜인 조직 덕분에 태생적으로 바람이 잘 통해서 여름용 바지로 각광받는다. 매끈하게 다려진 치노 팬츠나 슬랙스와는 달리, 구겨지면 구겨진 대로 내츄럴한 멋을 낼 수 있는 바지이기 때문에, 관리하기에도 수월하다. 물세탁도 가능하고(당연히 냉수로!) 건조도 빠르다.

다만 코디하기에는 은근히 어려운 면이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바로 린넨의 장점인 내츄럴함이 코디의 걸림돌이 된다. 이게 말이 좋아 ‘내츄럴’이지, 함부로 막 입었다간 한 여름에 동네 점빵 앞 평상에서 수박 잡수시는 할아버지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린넨 바지를 입었다면, 가능한 상의를 일반 면 소재로 된 것을 입는 것이 좋다. 물론, 외모가 너무 수려하고 귀티가 난다면 무엇을 걸친다고 한들 문제가 되겠냐마는, 적어도 나는 위아래 린넨 코디를 소화하기 힘들었다. 또, 이런 특성 때문에, 격식을 차리는 포멀한 복장으로는 적절하지 않고, 편안하고 여유로운 느낌의 캐주얼한 룩으로 입는 것이 좋다.

린넨은 조직의 특성상 이미 어느 정도의 신축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에 반해 복원력은 굉장히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입다보면 무릎 발사와 엉덩이 처짐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것마저 멋으로 승화시키는 분들도 물론 있지만, 만약 이런 것들이 걱정된다면 린넨 바지 중에서도 앞서 언급한 ‘폴리우레탄’이 함유된 것을 고르면 된다. 2%~3%만 폴리우레탄이 섞여 있어도 그렇지 않은 린넨 바지에 비해 조금 더 고급스러운 느낌과 더불어 형태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편안한 룩으로는 연한 베이지나 카키색 린넨 바지에 흰 면 티셔츠, 가죽 소재의 샌들을 신으면 좋다. 포인트로 팔찌나 발찌 하나만 해도 멋스럽다. 여름이니까 바지의 길이는 9부-10길이로, 슬림한 것보단 적당한 레귤러 핏이 좋겠다. 세련된 룩으로는 블루, 그린의 비비드한 원색의 린넨 바지에 흰 셔츠, 그리고 흰 스니커즈 정도면 딱이다. 머리는 포마드로 깔끔하게 넘겨주면, 섹시한 느낌마저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