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한 음식 이야기 – 간장게장편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컬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스며드는 것, 안도현

이 시를 읽고서 나는 한동안 간장게장을 먹을 수 없었다. 꽃게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할까. 그저 지나가다 붙잡혀 자신이 살고 있던 바닷물보다 더 진한 염도의 물 속에 갇혀버릴 줄 누가 알았을까.

내가 간장게장을 처음 맛본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전역 후 외국에서 1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무렵, 날씨가 제법 쌀쌀했던 가을쯤으로 기억한다. 집에 돌아왔더니 엄마가 간장게장이라며 잠금 앤 잠금통을 한껏 열어 나에게 자랑하셨다. 당신이 담그신건 아니었고 어디선가 받아오셨는데 그 출처가 세월이 지나 잘 기억나진 않는다. 어쨌든 족히 50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난생 처음보는 간장게장인데다가 북한이 남침을 해도 1년은 족히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전쟁물자를 방불케하는 양에 상당히 놀랬던 기억이 난다.

그 날 저녁, 간장게장 파티가 벌어졌다. 엄마는 게딱지를 직접 다 따시고 보기 좋게 열댓마리를 큰 접시위에 올려 놓으셨다. 국물은 따로 종지 같은 곳에 담아 밥과 비벼 먹을 수 있게 해놓으셨다. 대망의 첫 시식, 내 입에 들어왔던 간장게장의 첫맛은

“우웩, 엄청 짜다.”

였다.

생각지도 못한 염분의 공습에 혀가 마비되는 듯 했다. 엄마는 맛을 보더니 이 정도는 기본이라고 하셨는데 나에겐 그냥 소금물 한바가지를 입 안에다가 퍼부은 느낌이랄까. 이전에 간장게장을 먹어본 일이 없었으니 비교할 대상도 없었다. 그래도 엄마의 정성을 무시할 수 없어 게딱지에 밥까지 비비가며 꾸역꾸역 삼켰다.

그런데 다 먹고 난 후에 느낌도 그리 좋진 않았다. 뭔가 입안이 까슬까슬하고 입천장이 뻑뻑한 느낌이 들었다. 약간의 떫은 듯한 느낌을 좀처럼 지울 수가 없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런 느낌이 싫어 간장게장을 먹지 않는 이도 많다고 한다. 어쨌든 나는 이 텁텁하고 떫은 느낌을 좀체 견딜 수 없어서, 그날 엄마에게 무척이나 짜증을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저 전쟁비축식량같은 간장게장을 언제 다 먹냐며 비아냥 대기까지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굉장히 머쓱해했다. 당연히 음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먹는 이의 표정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나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잠깐 집 밖으로 나가셨다. 내가 너무 철딱서니 없이 굴었나 싶은 생각에 다소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때까지도 내 마음 속에서는 뭔가가 씩씩대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엄마가 슈퍼마켓에서 사이다 2병을 사오셨다. 입안이 텁텁하거나 떫을 때 사이다를 마시면 훨씬 나아질거라 하셨다. 스무살을 훌쩍 넘은 아들의 치기를 달래주려 그 쌀쌀한 가을 바람을 해치고서 하지 않아도 될 수고를 하셨던 것이다.

“사이다 먹으면 좀 나아질꺼야. 간장게장 만들때 떫은 맛 없애려고 사이다를 넣기도 한대.”

철 없던 시절, 반찬투정을 할 나이는 훨씬 지났지만 본의 아니게 반찬 투정을 해버렸던 그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붉어진다. 앞서 소개했던 시를 읽고서, 내가 간장게장을 한동안 못먹었던 것은 단순히 꽃게의 억울함과 엄마꽃게에 대한 감동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시를 읽을때, 간장에 빠진 꽃게엄마의 마지막 말과 사이다 먹으면 좀 나을꺼라는 엄마의 말이 유난히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아이들과 간장게장을 먹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땐 아마 내 엄마이자 내 아이들의 할머니를 추억하며 이 이야기를 해줄테지만, 이 이야기를 하며 몰려올 슬픔과 미안함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 한쪽이 찡하게 아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