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이며 유동적인 팀 장악력

스포츠에서 팀이 부진하면 감독 교체 여론 먼저 조성된다. 왜? 경기를 뛰는 건 선수들인데? 감독 교체로 팀이 부진을 벗어났다면 감독은 과연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감독마다 개성과 철학은 다르지만 성과를 이룩하는 감독들에겐 분명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압도적인 팀 장악력.

비단 스포츠뿐 아니라 일정 이상 인원이 합을 맞추어야 하는 모든 조직에는 장악력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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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악은 억압과 통제로 구성원을 틀에 가두는 강제와 다르다. 장악력 있는 리더는 구성원의 개성과 창의성을 존중한다. 리더가 제시하는 비전이 팀을 관통하는 철학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 때, 리더는 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는 말은 개인 위에 조직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 속에서 같은 목표로 뭉쳐야 여럿이 속한 조직이 한 명의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다. 이런 팀의 리더는 머리도 몸도 아닌, 정신 그 자체가 된다.

물론, 전략과 전술은 스포츠 경기를 보는 이유다. 의외로 이는 팀 성적 향상에 절대적 요인까지는 아닐지도 모른다. 정신력과 동기부여가 퍼포먼스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해선 안 된다. 전술은 실현 가능한 선수 역량이 기반되어야 하는데, 제 능력을 어디까지 발휘하느냐는 어느 정도 개인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선수가 100% 이상을 헌신하고 싶은 팀이 아니라면 능력을 아끼며 몸을 사릴 수도 있다. 감독이 아무리 기막힌 전략을 세워도 전력(戰力)들이 전력(全力)으로 호응하지 않는다면, 승리를 거머쥐긴 어렵다.

특히, 하프타임을 제외하고 경기 중 작전타임이 따로 없는 축구에서는 이런 현상이 도드라진다. 감독의 팀 장악력이 미미한 팀에게선 경기 시작부터 패배의 기운이 풍긴다. 반면, 선수 장악이 확실한 팀은 불리한 경기 흐름 속에서도 어쩐지 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떻게든, 욱여넣어서라도, 1점 차의 위태한 리드를 기를 쓰고 지키는 승리. 소위 ‘꾸역승’ 잘 하는 팀은 동기부여가 확고하다. 이런 팀이 결국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장악력은 리더의 카리스마로부터 형성된다. 팀 장악력 뛰어난 감독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저마다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 냉철하거나, 분석적이거나, 인간적이거나, 열정적이거나. 지도방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관건은 얼마나 팀과 선수들의 사정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공감을 얻느냐에 달렸다. 진심을 전하고, 진심을 얻었을 때, 선수는 물론 스텝들까지 자율적으로 감독에게 장악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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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무리뉴 감독은 첼시에서만 리그 3회 우승을 포함, 총 8회의 우승을 일군, 첼시 부흥의 역사 중심에 선 인물이다. 이런 무리뉴도 강압적이고 독단적인 성격 탓에, 2015-2016 시즌 장악력을 잃기 시작하자 전년도 우승팀을 강등권까지 몰고 가 결국 경질에 이른다. 이후, 소방수로 임시 부임한 히딩크는 팀을 중위권으로 복귀시키는 데 성공한다. 급박하게 전술에 변화를 주었다기보다 혼란한 팀 상황에서 침착하게 선수들을 진정시킨 결과였다.

같은 해, 레스터 시티는 만년 강등권팀에서 갑작스레 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레스터 동화라 불리는 기적을 썼다. 리그 개막 전 도박사들은 레스터의 우승 확률을 0.02%로 책정했을 만큼 기대와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빅클럽에서 주전에 들지 못했던 자원들과 4부 리거 출신 골잡이, 잠재력은 있지만 아직 만개하지 못한 젊은 재능들. 스타라고는 단 한 명도 없이 전년도까지 강등을 걱정하던 팀은 2015-2016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주 순위표 제일 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 중심에는 포용의 리더십 라니에리 감독이 있었다. 레스터가 우승하던 시즌의 라니에리는 덕장의 면모로 팀을 훌륭히 이끌었는데, 아이러니 한 건 바로 다음 해 동기부여에 실패해 팀 장악력을 잃고 선수들의 태업 논란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팀 성적이 곤두박질친 건 당연했고 우승 이듬해 경질 수순을 밟았다.

최고 수준의 팀에게는 그에 걸 맞는 성과가 필요하다. 별들의 집합소 레알마드리드는 감독의 무덤으로 유명하다. 조금만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경질되기 일쑤인데, 이적료 레코드 신기록을 수시로 달성하는 갈락티코 정책 특성상 선수들의 자존심이 높고, 이런 팀을 장악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으로서 경력은 미비한 지단이 이런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기반에는 선수 시절 엄청난 업적을 이룩하며 독보적 스타일로 거의 모든 축구선수들의 존경을 샀던 배경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호날두마저 압도하는 아우라를 가진 감독은 현재 지단 말고 없을지도 모르겠다. 감독의 네임밸류가 무엇보다 강력한 장악력이 된 경우다.

한때, 아스날은 리그 무패 우승을 자랑했고 바르셀로나는 트레블의 영광을 누렸다. 벵거 감독이 다시 아스날을 우승으로 이끄는 건 어려워 보인다. 성적이 하락하며 장악력을 잃었는지, 장악력을 잃으며 성적이 하락했는지는 몰라도 아스날의 결속력은 예전만 못하다. 엔리케가 MSN이 아니었다면 트레블은 커녕 리그컵 우승 하나도 장담 못한다는 박한 평가를 받는 건 현저히 부족한 장악력 때문이다.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는 메시보다 팀 조직력이 눈에 띄는 팀이었지만, 엔리케 지도 아래에서 MSN 의존도가 높아진 건 사실이다. 이처럼 위대한 업적을 이룬 팀들의 능력 있는 감독들도 한 번 장악력을 잃기 시작하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은퇴한 퍼거슨 감독은 오랜 기간 부침 없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정상권에 머물게 한 인물로, 거의 전무후무한 기록들을 세웠고 비교 대상 없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퍼거슨은 무리뉴보다 분석적이지도, 펩보다 영리하지도, 클롭보다 열정적이거나, 라니에리보다 따뜻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지단처럼 유명했던 선수는 더욱 아니다. 그렇지만 퍼거슨 시절 맨유는 리그에서 거의 원탑의 독보적인 팀이었고 세계적으로도 챔피언스리그 우승권에 매번 언급되는 강팀이었다. 퍼거슨의 진정한 능력은, 엄청난 팀 장악력이었다. 아무리 슈퍼스타라도 팀 기강을 헤치면 가차 없었다. 하지만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에게는 따뜻한 동네 영감님 같은 면모도 보였다. 데이비드 베컴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스타플레이어를 미련 없이 떠나 보내고도 공백 없이 양질의 경기력을 유지했다. 선수 스타일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알았으며, 선수가 몰랐던 잠재력을 일깨워 새로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왔다. 헤어드라이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독설로 유명했지만, 자신의 선수들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았다. 박지성이 QPR로 이적할 때, 무릎을 신경 쓰느라 출전 기회를 적게 주어 미안하다고, 세계 정상급 기량의 미드필더였음을 치하하며 직접 써서 편지를 건네 준 일화가 있을 만큼 배려 깊은 사람이었다. 퍼거슨의 지도에 반기를 든 선수는 종종 있었을지언정 맨유를 거쳐간 1 군중 그를 존경하지 않는 선수는 없었다.

때론 장악력 만으로 성과를 내기도 한다. 강등권 팀들이 감독을 교체할 때 보는 주요 능력이 바로 장악력이다. 전략, 전술의 귀재라 불리는 최상급 감독들은 하위권팀에 잘 오지 않는다. 대신, 캐릭터가 남다른 감독을 선임하면 동기부여만으로도 팀을 중위권 수준까지 이끌 수 있다. 샘 앨러다이스는 고집불통 독단적 감독이지만 중위권 성적 내는 능력만은 독보적이다. 장기적 플랜에는 적합하지 않아도 강등을 막고 반등을 노리는 데에는 탁월한 선택이다. 주로 불 같은 성격의 외골수 성향 감독들 중 이런 타입이 많다. 소통이 잘 되지 않기에 장악력은 금방 힘을 잃지만 선임 이후 반짝 성과를 내는 데에는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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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타입의 감독이 있고, 각 팀의 목표에 걸맞은 성향의 감독을 적절한 시기에 선임했을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다만, 퍼거슨을 제외하면 장악력을 잃지 않고 아주 오랜 기간 팀을 이끌며 상위권에 머무는 감독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 팀에 대한 한 사람의 장악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기 마련이다. 선수들도 성장하고, 함께 이룬 성과가 많아질수록 동기부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는 특별히 큰 사건이 없더라도 감독을 교체해주는 게 좋을 때도 있다. 감독은 새로운 팀을 이끌고, 새사람들과 새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간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목표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겠지만,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함께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동기 부여를 가질 수 있다.

장악력은 감독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역량이고 때론 거의 모든 것이지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결과를 바꾸는 키가 되는 동시에 결과를 고착시키는 굴레가 될 수도 있다. 장악하되 목적 달성 후에는 변화를 꾀해야 오래도록 상위 클래스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한 팀을 떠났던 감독이 다른 팀을 맡다가 나중에 다시 처음 팀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색깔이 다양한 양질의 팀들이 많아야 리그가 성장한다. 리그가 성장해야 더 많은 재능이 모인다. 회사 내 작은 팀 하나하나는 빅리그 구단들과 같다. 팀 단위 리더는 감독이다. 팀마다 이루어야 하는 성과가 있는 만큼 리더는 확실한 동기부여를 통해 팀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리더에겐 장악력이 필요하다. 조직 결속이 엉성해졌다거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면 리더가 장악력을 잃은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팀원들을 면밀히 살펴 모든 구성원의 능력을 만개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축구 감독이 선수들에게 축구 더 잘할 수 있도록 멘탈과 역할을 잡아주는 사람이라면, 팀장은 팀원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일을 잘 시켜야 하는 사람이다. 직접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달하여 팀이 잘 굴러가도록 해야 한다. 업무 처리의 에이스는 팀원 중에서 발굴해야 하고, 성과는 팀원 손에서 이루어짐이 옳다. 골을 넣는 건 결국 필드 위의 선수이듯.

그리고 팀에겐 주기적 변화가 필요하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아는 것. 그곳에서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이룩해야 하는지 아는 것. 장악의 기본은 상황에 대한 면밀한 파악이다.

자, 반등을 노려보자. 뭐가 되었든 전보다는 나은 성과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