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해가 지기 전에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 사회는 꼭 누군가가 죽어야만 바꾸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한빛 PD, 그의 동생이 한 말이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로 일하던 이한빛 PD는 작년 1월 CJ E&M에 입사한지 9개월이 된 작년 10월에 자신이 참여했던 드라마의 종영 바로 다음 날 스스로 숨을 끊었다.

사건 발생 후 6개월 동안 유가족은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며 CJ와 문제를 마무리 지으려 했지만, CJ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며 진전이 없을 거란 생각에 올 4월부터 이한빛 PD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한빛 PD의 사망사건으로 조직된 대책위원회는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1인 시위를 진행하며 본격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조명 받은 것은 방송업계의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침해당하고 있는 노동인권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이다. 이한빛 PD가 남긴 유서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팠다”며 “하루 20시간이 넘는 노동으로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떠미는 삶을 이어가기가 어려웠다”고 적혀 있어 사건 후 외면 받고 있던 드라마 현장 내 노동 실태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유가족이 운동을 이어 나가려는 방향 또한 “진정한 사과와 드라마 제작환경의 개선”이다.

이런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항상 누군가가 죽어 왔고, 우리는 그제서야 잘못된 것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규탄 집회에서 백남기라는 한 명의 농민을 잃었고, 이미 그 전의 메르스 사태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실패한 것을 목격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생활환경을 알기 위해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건이 일어나야 했고, 억압받는 여성 인권이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해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나야 했고,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을 되새기기 위해 환풍기 아래로 십여명의 사람이 추락해야 했다. 이 사회의 학습이라는 것은 항상 비참한 희생을 동반해 왔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회장 마윈은 말한다. “지붕은 해가 떠 있을 때 고쳐야 하는 것”이라고. 정말 그래야만 하지만, 해가 떠 있을 때 지붕을 고치는 건 왜 이리도 지지부진한 걸까. 그렇다고 비가 온 뒤 지붕을 뚝딱 고치는 것도 아니다.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씨는 “안타까운 것은 죽었는데도 바꾸려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며 우려를 내비쳤다. 많은 사람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이번해에 일어난 스텔라 데이지 호 사고로 세월호 이후 개선된 점이 없다는 국민 여론이 파다하게 퍼졌다.

얼마 전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았다. 침몰 선박 인양 후 처음 맞이하는 4월 16일이기에 국민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애도의 인사를 전했다. 3년, 인양까지 3년이 걸렸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개선 사항이 진행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사항이며, 이한빛 PD의 죽음으로 드라마 현장의 노동자 처우 또한 얼마나 나아질 지는 모르는 일이다. 지겹다고 하는 것보다 기억에서 잊혀지는 게 더 무서운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많은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 사회는 학습하고 또 성장하기 위해 연대와 노력을 보여주어야 할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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