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학교에서 있었던 시간관리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대학생들에게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그들의 자기계발을 돕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강사님께선 주차별 플래너를 사용하는 방법,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방법,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 등등의 많은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셨지만 뚜렷하게 기억났던 건 그런 조언이 아니었다. 내게 영감을 준 건 강사님께서 지나가는 식으로 보여주신 “하고 싶은 일 리스트”였다.

투박한 엑셀 실력으로 정리된 그 리스트는 내가 가끔 적곤 하던 버킷 리스트와는 달랐다. 년도별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구체적으로 적어 정리한 그 리스트를 보고 나면 “불확실한 미래”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정도였다. 그것은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적었다기보다는 “했었던 일”을 적은 것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했다. 시간관리 강사로 일하고 싶다는 최종 목표를 위해 어떤 해엔 시험을 준비하고, 어떤 해엔 직접 강습을 해보고, 어떤 해엔 석사 학위를 따는 등등의 작은 목표를 단계적으로 차곡차곡 정리한 그 리스트는 시간이 지나 현실이 되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한 청년은 유능한 시간관리 강사로 내 앞에 서 계셨다.

하나의 최종 목표(goal)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세부적인 단계 목표로 설정하고 그것을 차례대로 해 나가는 건 일을 진행시키는 모든 맥락에서 하나의 공식이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할 때에도, 여름에 대비해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에도, 돈을 모으기로 결심했을 때에도, 우리의 삶을 앞으로 전진시키는 원리는 대개 이 공식을 통해 작동한다.

흔히 버킷 리스트는 단순히 하고 싶은 일들, 가고 싶은 곳들, 갖고 싶은 것들을 나열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의지가 현실성 있는 계획과 만나면 그것은 하나의 미래 설계도가 된다. 램프의 요정이 마법을 부리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원했던 일들이 뚝딱 이뤄지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시기나 방법과 같은 그것의 구체적인 정보와 함께 입력되면 그것은 우리의 잠재의식에 스케쥴링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해당 목표를 향한 행동들을 하나 둘씩 하게 되고, 점점 하나의 확실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의도적인 행위들과는 별개로 말이다. 잠재의식에 의해서도 일의 진전이 이뤄지는데, 철저한 계획을 통한 실천에는 얼마나 놀라운 결과가 따라오겠는가?

기업의 마케팅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이윤 창출”이라는 고정된 목표 아래 다양한 하위 목표들을 명분으로 한 많은 업무들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간을 대하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기엔 마케팅 목표들이 비약적인 경우가 많다. 중간에 빈 공간이 있다는 뜻인데, 이것이 잦거나 클수록 계획했던 목표와의 오차가 커지게 된다. 가령, “신제품의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목표를 위해 “SNS 홍보와 이벤트 프로모션을 진행한다”는 목표로 직접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자. 두 목표 사이엔 “기존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와의 연결을 시도하겠다”, “타 브랜드의 같은 카테고리 시장에서 새로운 차별화 요소를 어필하겠다”와 같은 다른 목표가 들어가기에 손색이 없다. 위의 설정된 두 목표 사이엔 구체적인 목표가 조금 부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검토할 땐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적은 것처럼 막연한 실행 계획보다는, “완료된 프로젝트”의 전례를 살펴보는 것처럼 상세한 절차와 그 절차를 통해 목표를 이뤄낼 수 있다는 믿음이 빠져 있지는 않은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이 작은 태도의 차이가 램프요정의 마법처럼, 십년 전 한 청년이 자신이 그린 그대로의 사람이 된 것처럼, 당신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