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라

군대에서 읽은 책은 인생에 깊은 자국을 남긴다. 고립된 환경, 답답한 마음에서 만나는 책, 그 안에 담긴 작가의 목소리는 울림이 유난히 선명하고 또렷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남성들이 군대 시절 인상깊게 읽은 책으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꼽는다. 자유를 억압당하고 죽어간 홀로코스트의 유대인들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군대 안에서 떠올려보면 책의 내용이 각인되는게 당연한가보다.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로 끌려가서 다른 곳에 수감된 가족들이 이미 죽임을 당한지도 모른채 우여곡절 끝에 세상 빛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맞딱뜨린 일들을 정신과 의사로서 새롭게 해석하면서 책을 쓴다. 지옥같이 고통스러운 곳을 걸어나오면서 빅터 프랭클이 뼛속 깊이 새긴 한 문장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인간은 삶을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삶에 대한 태도만큼은 바꿀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이 인생에 대한 태도를 얘기했다면, 에이미 커디는 몸의 자세를 말했다.  “Your body language shapes who you are”라는 주제로 한 TED강연에서 에이미 커디는 재밌는 주장을 한다.

평소에 우리가 취하는 자세가 우리의 몸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선생님들은 ‘어깨 펴고 당당하게’ 말하라는 조언을 하곤 한다. 이게 과학적으로 근거있는 말인 셈이다. 커디는 실험을 통해서   그룹은 주로 몸을 크게 만드는 자세를 취하고, 다른 그룹은 반대로 몸을 움츠리는 자세를 취하도록 했다. 이렇게 2분간 자세를 취하게 , 결과를 측정해보니 앞선 대상은 테스토스테론 20% 증가, 콜티솔 25% 감소했고 뒤의 그룹은 테스토스테론 10 감소, 콜티솔 15% 증가했다고 한다자신감 있는 자세를 취한 것만으로 몸에 영향을 준 것이다.

어떤 운동이든 시작하기 전에는 준비 운동을 해야 한다. 몸을 준비시켜야 운동할 때 근육이 놀라는 일이 없다.

운동 전에 올바른 몸가짐을 갖듯이, 대화할 때 취하는 자세가 자신감에 영향을 주듯이, 일에 대해서도 마음가짐을 바로 할 필요가 있다. 아무런 마음을 준비하지 못하면 무방비로 일에 치여 다칠 수 있다. 군대에서 내가 그랬다. 원하는 곳에 배치 받지 못하고 좌절하고 괴로워하며 몇 주를 보냈다. 그 상태로 맞딱뜨리는 일들은 마음이 무장해제된 나에게 포화처럼 날아왔다. 그렇게 얼마간은 예기치 못한 일들이 나에게 린치를 날렸고 속절없이 두들겨 맞았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마음을 무장하기 시작했다. ‘누군들 이등병 시절이 없었겠나’하는 생각을 갖고 병영생활을 대하는 마인드셋만큼은 ‘병장’처럼 가져보기로 했다. 처음 받게되는 일을 대할 때도, 숙달된 병장이 그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마음가짐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등병 시절의 모토는 ‘움직임은 이등병, 마음가짐은 병장’이 되었다. 결과는 어땠겠는가?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실수도 빈번했다. 혼나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한 가지 변한 건 있었다. 태도를 다르게 가지니, 마음이 무방비로 폭격당하진 않았다.

나중에서야 이런 ‘마음가짐’에도 전문가가 있다는 걸 알게됐다.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윌리엄 제임스는 19세기 말에 감정과 행동의 관계를 연구했다. 마음 상태가 제각각인  많은 사람들의 상태를 연구했다. 연구 끝에 그는 ‘~ 것처럼 행동하라(Act as if~)’방법론을 고안했다. 특정 상태를 원한다면 이미 그것을 이룬 것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언뜻 듣기에는 조삼모사처럼 장난스러운 말장난으로 보일 수도 있는 방법은 놀랍게도 다른 학자들에 의해 과학적으로 검증을 받기도 했다.  

피부과 전문의 에릭 핀치는 ‘~ 것처럼 행동하라 윌리엄 제임스의 방법을 제대로 활용해보고자 했다. 핀치는 사람들이 걱정할 때마다 이마에 주름을 만드는 것을 주목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이마에 주름 잡는 행동을 줄이면 우울한 마음도 줄어들거라는 가설을 세운다. 핀치는 2 이상 우울증에 시달리고 약으로도 우울증이 호전되지 않은 84명을 선별했다. 그리고 주름살을 만드는 신경 부위를 마취하기 위해서 이들 일부 환자의 해당 부위에 보톡스 주사를 놓았다. 보톡스 치료를 받아서 이마에 주름 짓는 것을 줄였던 실험 대상자의 27% 우울증이 거의 완치되었다

일과 삶에서 마주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부던히도 애쓰면서 군대 시절이 종종 떠오르는 이유가 있다. 상황을 무엇 하나도 바꿀 수 없었던 군대에서는 내 ‘마음가짐’ 한 가지에 대해선 집요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군대 밖의 세상은 자유가 많지만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신경 쓸 수가 없어서다. 그 때문이다. 일과 삶에 치여서 마음가짐, 태도를 만들지 못하고 무방비로 두들겨 맞다보니까 군대 시절이 자연스럽게 생각이 났다. 

‘My way’를 부른, 낮은 톤의 단단하고 단호한 목소리의 주인공 프랑크 시나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개를 들어라. 각도가 곧 태도다(Cock your hat – angles are attitudes)”

새겨볼 만 한 말이다. 물론, 계속해서 린치는 날아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