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학

기다린다는 말, 좋게 들리진 않는다. 늦은 약속 시각에 전철역에 서서 만나는 무력한 기다림, 젊은 연인들이 군 복무로 견뎌야만 하는 애틋한 기다림, 겨우겨우 찾아간 골목 식당에서 의도치 않게 마주한 손님 대기 줄 뒤에서의 불안한 기다림, 우린 기다려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답답한 게 기다림, 도움 안 되는 게 기다림, 달갑지 않은 게 기다림이라 생각한다. 키 크고 잘생긴 도깨비가 900년 도깨비 신부를 기다리는 모습에 남녀노소 함께해준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무엇 하나 지체되는 건 용서할 수 없는 세상이다. 통신사 광고에서도 “타 회사보다 속도가 빠르다”는 말을 하고 빠른 업데이트, 빠른 커피 로스팅, 빠른 도로, 빠른 빠른 빠른 노래도 부른다.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선 연락 수단도 없이 약속 장소로 가서 몇 시간 기다리는 게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이더니 아무래도 그건 모르겠고 약속 시각에 늦으면 바람맞았다 토라질까 걱정부터 앞선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넘치는 것은 미치지 못한 것만 못한 법. 기다림에 대한 싫증이 과해지면 조급함이 된다.

조급함은 이 시대의 화두다. 이성을 잃은 교육열, 불법적 재산 축적, 사행성 도박, 청년들의 좌절감, 온갖 부정적인 의미의 사회적 단어들, 이 모든 건 조급함의 요구로 생겨난 것들이다. 정치는 물론 경제, 문화, 비즈니스,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 곳곳에까지 우리의 조급한 태도는 문제를 일으킨다.

줄탁동기(崪啄同機)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너무 급하게 대하지 말고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봉오리에 충분한 양분과 햇빛이 든다 한들 때가 오지 않고선 꽃이 피지 않는다. 그때까지 참고선 노력하며 기다릴 뿐. 쉽게 자만에 빠질 때가 있다. 왜 잘되지 않는지, 나는 이것보다 충분히 잘하는 사람이고 또 잘 될 사람인데. 우린 대부분 때가 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해 조급해지는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더 잘하라고, 앞에 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라고 누군가가 부추기는 목소리를 자꾸 들려준다. 그것은 이제 누구의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때를 기다리는 것은 하나의 문학이다. 모든 성장 과정의 공통 요소이다. 갓난아기에게 근력을 기대할 수 없는 법이고, 다 큰 사람에게 옹알이를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과도기의 고통 없는 성장을 기대할 수 없고 또 자잘한 갈등들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 법이다. 클라이맥스까지 오르는 길에 꼼꼼함을 놓쳐선 안 되고 단단한 준비 후의 정상은 무엇보다 달콤하다. 그 후의 여운을 만끽하고 또 다른 정상을 찾아 나서야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기다려보라. 기다리고 기다리면 반드시 꽃필 거라 믿고, 지금 할 일에 충실해 보라. 만개하는 꽃봉오리를 상상하며 천천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