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땐 보통 촉각과 시각으로 인지하게 된다. 피부에 닿는 바람과 공기의 온도차로, 혹은 새순이 올라오고 개화하는 식물들의 계절맞이 축포를 보며. 하지만 내가 계절을 느끼는 감각 중 가장 예민한 감각은 코 끝의 감각이라 할 수 있다. 으르렁대며 포효하던 추위가 잦아드는가 싶을 때,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바람이 있다. 해가 내리쬐지도, 공기가 포근하지도 않지만 코끝에 걸린 바람에선 선명한 봄 냄새가 난다. 겨울바람의 비릿함과는 태생이 다르다. 이를테면 습도를 머금은 생기랄까. 가벼운 풋내가 난다. 한 해에 순차적으로 겪게 되는 네 번의 계절이 있다. 중위도 지방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지리적 베네핏. 매년 기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 반짝 지나가버리긴 해도.. 해가 바뀔 때마다 성실하게 순서를 지켜 돌아오는 첫 번째 계절, ‘봄’. 어쩜 이름마저 예쁘다. 가만히 있다가도 심장이 뛰고 엔도르핀이 샘솟는 시기는 단연코 봄이라 할 수 있다. 흩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동막골 광년이처럼 뱅글뱅글 돌기라도 하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 책상에 앉아 펜이라도 뱅글뱅글 돌려본다. 그동안 맞이한 서른몇 번의 봄. 미세먼지로 희끗해지긴 했지만, 인생에서 가장 선연하게 기억될 올해의 봄 냄새. 그리고 가족. 얼마 전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평소에 전화 통화는커녕 안부도 잘 묻지 않는 보통의 남매지간이자 하나뿐인 혈육. 오빠였다. 재미도 없고 은근한 꼰대 기질까지 품고 있는, 멋대가리라곤 없는 과묵한 경상도 남자. 마누라한테 꽉 잡혀사는 마누라 바보. 애 둘에 토끼 같은 마누라를 먹여살리느라 불철주야 일하는 짠내 나는 워킹머신.. 내가 지니고 있는 오빠의 이미지는 대략 이랬다. 태생이 과묵하고 무뚝뚝한 아빠의 유전자를 컨트롤 씨 브이로 물려받은 오빠와는 어릴 때부터 대화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오빠가 결혼을 하고 아기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왕래가 잦아지는.. 뻔한 전개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시간 반 거리의 지역에 살지만 대게는 명절에만 만났다. 그런 오빠에게 밤 11시를 넘긴 시각에 전화가 올 리가 만무했다. 술을 좀 드셨나.. 아니나 다를까, 술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서 출렁대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혀가 꼬이다 못해 곡예하듯 휘청거리는 모양새로 단전부터 끌어올린 잔소리를 토해내고 있다.…